[사람in] 정재상 하동독립운동연구소장

"그분들이 했던 일에 비하면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만분지 일도 안 됩니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하평마을 그이가 사는 촌집에서 만난 정재상(45) 하동독립운동연구소장은 자신을 낮췄다. 일제강점기 목숨을 걸고 항일 무장투쟁을 벌인 의병에 견주면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보잘것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이가 아니었다면 의병은 역사에 묻혔을지도 모른다.

10여 년간 지리산 중심 항일의병 자료수집

정 소장이 이제까지 발굴한 의병은 500여 명이다. 이 중 70여 명은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을 추서 받는 등 온전한 평가와 더불어 새로운 사회적인 생명을 얻었다. 그이가 공을 들인 노력과 활동이 보잘것없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 소장은 지난 10여 년간 일제강점기 지리산을 중심으로 항일무장 투쟁을 벌인 의병활동에 주목했다. 그이는 "의병은 자기 목숨을 걸고 일제와 싸웠던 이들입니다. 이들은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후손도 없고 그러다 보니 역사에서 잊히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라고 말했다.

정 소장이 의병활동에 관심을 둔 것은 고향인 하동 출신 독립운동가를 발굴해야겠다는 마음에서였다. 그이는 지난 1995년 서른 살의 나이에 <하동신문>이라는 지역주간지를 창간해 발행·편집인을 지냈다. 당시 일제강점기 하동에서 활동했던 함양 출신 권석도 의병장이 이끈 부대의 주력이 하동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됐고 본격적으로 자료 수집·연구를 시작했다.

의병활동을 조사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100여 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기록이 많이 사라진 때문이다. 정 소장은 국가기록원 등을 다니며 지리산 일대에서 벌어진 의병활동을 중심으로 자료를 구했다. 하지만, 자료 해석도 쉽진 않았다. 일본어와 한자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이는 현재 아흔 살이 넘은 박만우 어르신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워했다.

의병 500여 명 발굴…70여 명에 건국훈장

   
 
"새벽 3∼4시까지 일을 할 때가 잦았습니다. 그땐 제가 신들린 것 같았습니다. 일제가 남긴 기록이지만, 기록 속 의병의 활동을 하나하나 해석하다 보면 의병 활약상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이런 말 하면 안되지만 솔직히 흥미진진했습니다." 정 소장은 고된 작업을 이겨낸 배경을 설명했다.

정 소장은 내년 3·1절이나 8·15 광복절께 발간할 가칭 '지리산 항일투쟁사'를 준비 중이다. 일제강점기 지리산을 중심으로 3개 도 17개 시·군에서 펼쳐진 의병 활약상을 체계적으로 담을 계획이다. 그이는 자료는 거의 정리한 상태여서 올해는 격전지 등 의병활동 현장을 사계절 누비며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정 소장은 "3·1 운동이나 해방 전후사를 연구한 학자는 많습니다. 그러나 총을 들고 싸운 의병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은 사학자는 전국에서도 드뭅니다. 경남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병 활동을 체계적으로 연구·정리한 기록은 아마 전국에서 첫 발간이 될 것입니다"라고 자부했다.

정 소장은 지난 10여년 간 사비를 털어 활동했다. 그이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둔 가장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생계를 어떻게 꾸렸을까. 정 소장의 전업은 가축 인공 수정사다. 하동협회장도 지냈단다. 또 양봉을 하고 있다. 해마다 5∼7월엔 사천 등 전국을 다니며 양봉을 하고 있다.

정 소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고향인 악양면 자신이 태어난 집에 되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농촌에 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동네 친구 3명이서 함께 마음을 먹었죠. 한 친구는 서울대 농대를 나와 고향에서 군의원을 하고 있고, 저는 대구대 농대를 나와 고향에 있고, 한 친구는 농업직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다들 농촌을 위해 살겠다는 뜻을 이루며 사는 셈입니다. 하하하."

'투쟁사' 발간 준비…최연소 하동군민상

정 소장은 올해 역대 최연소 하동군민상 수상자가 됐다. 그이는 하동지역 의병활동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판소리 동편제 5대 명창으로 알려진 유성준·이선유의 고향이 하동이란 것을 새롭게 발굴하는 등 하동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한 점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정 소장의 현재 꿈은 지리산을 무대로 펼쳐진 항일 의병활동을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 널리 알리는 것이란다. 그이는 의병활동이 이뤄진 지리산 인근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목숨을 걸고 싸웠던 항일 의병의 숭고한 뜻을 널리 계승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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