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in] 도청 이발관 김봉희 이용장

머리카락을 단정히도 빗어 넘긴 이분은 다름 아닌 이용사다. 그것도 '경남의 1호 이용장'. 이용장은 실무경력이 8년 이상 된 이용사 가운데 특정 이론시험과 실기를 통과해 국가가 보증한 이용 기능장을 일컫는다. 1호에 빛나는 '구력'은 다른 이용장이 배우러 올 만큼 경지에 다다랐다는 또 하나의 인증서다.

그런 김봉희(59) 씨가 경남도청 구내 이발관에 있다. 구내 이발관이라면 거리가 가까워 시간이 덜 걸린다는 '편의'를 제1무기로 삼은, 경쟁력 없이 온실처럼 보호받는다는 인상인데, '이용장 1호'는 그런 인상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김 씨가 창원시 내동 목련상가에서 20여 년 이발관을 운영하다가 도청 이발관으로 들어온 것이 지난 2000년. 이발관이나 미용실이나 '단골장사'인데, 이용사가 자주 바뀌면서 손님이 들쑥날쑥하자 이발관을 내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3개월만 하다가 안 되면 나와야지' 했는데 반응이 좋아 지금까지, 11년 넘게 자리를 지켜왔다. 10년이면 도지사가 3번 바뀌었는데?

"그럼요. 김혁규, 김태호, 김두관 지사 세 명 모시게 되네요. 이발관 입장에서는 안 좋아요. 지사가 자주 오면 직원들이 못 오잖아…. 그래도 김혁규 지사는 자주 오셨고, 김태호 지사는 가끔 오셨고, 김두관 지사 머리는 아직 못 만져드렸네요. 지금 지사님 주변 사람들이 이용장 1호라고 한 번 가보라고 권유를 많이 받았다던데, 임기 중에는 한 번 오시겠지요."

이발관 손님은 평등하다. 도지사도 만 원, 말단 직원도 만 원, 그러니 주인 입장에서는 도지사는 여러 다른 직원을 불편하게 하는 애꿎은 손님일 수 있다. 그러자 또 한 명의 이름이 거론됐다.

"당시에 도 자치행정국장할 때인가? 전수식(신용보증재단 이사장) 씨가 도청에 있을 때죠. 직원들에게 머리 자르고 샤워하는 데 시간 아끼지 말라고, 공무원이 깨끗하고 단정한 용모를 유지하는 것도 서비스라고 근무시간 중 이발관 이용을 사실상 허용했죠. 공무원은 프로 아닙니까? 프로는 자기에게 투자하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되죠. 깨끗하게 있으면 자신은 물론이고 도민에게도 좋습니다. 수다 떨고 담배 피우는 시간에 잠시라도 깔끔하게 머리 만지고 깨끗한 얼굴을 유지하는 게 일석이조, 일석삼조 아닙니까."

돌아보니 이발관에 널린 머리카락 하나 없다. 머리카락 묻힌 가위와 기계도 수납장 안에 있나 보다. 그 흔한 이발소 그림 대신 서예와 한국화 액자가, 표정없는 대기실 의자 대신에 폭신한 소파가 놓여 있다. "공무원들 한 달에 한 번 이발관 간다고 합니다. 왜 한 달이냐고 물으니 월급 때 맞춰서 온답디다. 이발관 자주 오시라는 말이 아니라,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시간과 돈, 애정을 자기 자신을 가꾸고 마음을 다잡는 데 쓰는 게 프로에 가깝다는 말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김 씨의 공무원론(?)에 뜻을 같이하는 단골 중에는 10∼20년씩 김 씨와 인연을 맺어온 사람이 많다. 도교육청에 근무한다는 한 단골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김 씨에게 머리를 맡겨 33년째 얼굴을 보고 있다고. 이렇게 오랜 시간 소소히 정을 붙이다 보니 단골 대소사도 함께하게 된다.

"제가 머리를 깎아준 공무원 중에 먼저 세상 뜬 사람 소식 들을 때는 가슴이 휑하죠. 건강했는데 암에 걸렸다거나 과로사했다거나 퇴직하고서 바로 돌아가신 분도 있고.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다가…."

때론 살갑게, 때론 무뚝뚝한 듯, 이용사도 한결같을 순 없지만 한 달에 1cm 자라는 머리카락 덕에 이곳 이발관을 찾는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고,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지는 공동체를 만든 김 씨의 '왼손'은 자원봉사에 바쁘다. 재능 기부 차원에서 이발 봉사를 다닌 곳만 해도 수백 군데. 오른손은 몰라야 한다고 이야기를 더 잇지 않는다.

기계보다는 가위를 고집하고, 손이 떨리기 전까지는 가위를 놓고 싶지 않다는 김봉희 씨는 이 시대 '달인'이고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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