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화 기자, 육군 39사단 신병 훈련 4주차 각개전투 동참

'훈련병 88번'.

육군 39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내 이름이다. 군모에는 '3088'번이 적힌 노란 종이가 붙어 있다. 3중대 소속 88번 훈련병이라는 뜻이다. 39사단 4개 중대 가운데 이번 신병 교육은 3개 중대에서 이뤄지고 있다. 내가 소속된 3중대에는 249명의 훈련병이 있다. 신병 교육을 담당하는 중대장이 "88번"을 불렀다. "충성"이라는 대답이 얼른 나오지 않는다. 30대 후반의 여성인 나에게 군대는 낯선 호칭에서 시작됐다.

8일 오전 6시. 동트기 전 새벽은 한밤처럼 어둡다. 군대에 가본 사람만 안다는 군복 바지를 묶는 고무링에 바지를 접어 넣고, 목이 긴 군화를 신었다. 군모까지 쓰니 얼추 군인 포스가 풍긴다. 제복의 힘일까. 어깨가 펴지고 절로 자세가 바로잡아진다. 총을 받았다. 신병 교육 중대장이 "총은 군인의 생명이다. 몸에서 절대 떼어놓지 말라"고 강조했다. 어깨가 무겁다.

본보 정봉화 기자가 8일 궂은 비를 맞으며 육군 39사단 신병훈련소에서 훈련병들과 함께 각개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중대장은 "여기는 일반인을 상대로 한 극기훈련 캠프나 병영체험이 아니라 실제 신병들이 훈련을 받는 것인 만큼 힘들면 바로 말하고 빠져라. 훈련에 지장을 주면 가차없이 빼버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오전 6시 30분. 동절기 기상 시각이다. 이번 주는 신병입소 4주차로 야외종합훈련이 있다.

신병교육은 현역은 5주, 특례병 등 보충역은 4주간 군사기본교육을 받는다. 야외종합훈련은 2박 4일(하룻밤은 야간 행군)간 야외에서 숙영(병영 밖에서 머물러 지내는 일)하면서 준비태세훈련, 종합각개전투, 야간사격, 수류탄 투척 훈련, 지속 행군 등을 한다.

첫 야영을 하고 일어난 훈련병들이 추위 때문에 밤잠을 설친 듯했다. 깔깔이(방한복)를 입고 군용침낭이 있다해도 얇은 군용텐트에서 야외취침을 하기엔 추운 날씨다. 훈련병들의 군모 옆에 빨간·노란딱지 등이 붙어있는 게 눈에 띈다. 호흡기나 심장질환·골절·동상 등이 있으니 훈련할 때 주의하라는 표시다. 일종의 환자 표시인 셈이다. 200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다보니 아침 식사를 마치는데도 오래 걸린다. 화장실도 개별적으로 다녀오는 게 아니라 10여 명이 무리지어 다녀온다.

   
 

나는 19조에 배치됐다. 한 조에 10명 씩이다. 이를테면 190번에서 199번까지가 19조인데, 밥먹을 때나 잠잘 때는 2~3명으로 나눠진다. 190번(김온)·191번(이동희)·192번(박수용) 조에 밥숟가락을 걸쳤다. 군대에는 젓가락이 없다. 셋은 21살 동갑내기인데, 같이 고생한 탓인지 한 달 전에 만난 사이지만 이들 사이에서 이미 끈끈한 동기애를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은 반합에 비닐팩을 씌워 음식을 담아준다. 설거지나 위생상 한결 나아진 듯하지만, 군대마다 이렇게 쓴다면 비닐팩 소모량이 만만찮아 보였다.

오전 9시. 본격적인 종합 각개전투 훈련이 시작됐다. 각개전투는 각개의 병사가 전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훈련이다. 훈련소에서 가장 힘든 훈련으로 알려져 있다.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각개전투 훈련에 들어갈 때쯤 부슬부슬 빗방울이 굵어졌다.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봄을 재촉하는 비라고 했겠지만, 훈련병에게는 반갑지 않은 비다.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라는 구호와 함께 훈련이 시작됐다. 각개전투 훈련의 기본은 포복이다. 땅바닥을 기어서 이동하는 전술인 포복은 낮은포복·높은포복·약진·응용포복 등 방법도 갖가지다. 그냥 기면 될 줄 알았더니, 몸이 좀체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조교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88번! 옆에 보고 따라 한다". 오른손에 총을 쥐고 있기 때문에 왼쪽 팔꿈치에 힘을 실어 상체를 앞으로 당긴 뒤 오른쪽 발로 밀어 올리는 식이다. 뒤처질까봐 엉금엉금 기어서 겨우 뒤쫓아갔다. 군대 훈련 체험해보니 뭐가 가장 힘드냐고 물으면 "포복"이라고 주저없이 말하겠다. 다른 훈련병도 포복이 힘들다는 말에 조금은 위로가 됐다.

   
 

훈련장에는 실전을 방불케하려고 장치한 비행기·폭탄·총탄 소리 등으로 귀가 먹먹했다. 포복 장애물 통과에 이어 사격과 수류탄 던지기까지 훈련은 계속됐다. 공포탄과 모의수류탄이지만 화약냄새와 연기가 자욱한 게 긴장감을 더했다.

각개전투 훈련 코스를 마치고 나니 온 몸이 쑤시는 듯했다. 한 번 하고나니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른 훈련병들은 이날 하루만 같은 훈련을 4번이나 반복했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면서 훈련병들의 옷은 국방색에서 황토빛으로 바뀌었다. 땀과 빗물이 섞여 옷은 젖을 대로 젖어 온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하지만 불평을 하거나 힘들어하는 훈련병은 없었다.

육군은 올해를 '전투형 야전부대' 재창출 원년으로 선포했다. 특히 민간인을 정예전투요원으로 탈바꿈시키는 신병 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올해부터 훈련 시간을 40시간 늘렸고, 신병야외종합훈련도 강화했다.

최근 배우 현빈이 해병대에 자원 입대해 화제를 모았다. 오후 2시 나왔으니 길어야 8시간 남짓 함께했지만, 39사단 신병 교육대에서 만난 훈련병들이 내눈에 모두 현빈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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