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규 경남대학교 총장, 북한 붕괴 흡수통일 염두 대북정책 올인 위험천만

박재규 경남대학교 총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남북관계 전문가다. 1970년대 초 북한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해 1972년 극동문제연구소(서울 종로구 삼청동)를, 1997년에는 국내 최초로 북한대학원(현 북한대학원대학교)을 설립했다. DJ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박재규 총장은 말 그대로 '햇볕정책' 집행자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긴장관계가 고조되면서 집중 공격을 받는 '햇볕정책'이지만, 박 총장은 정책에 대한 굳은 신뢰를 내비쳤다. 그리고 대북 화해협력정책이 평화통일에 이르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박재규 총장이 대학경영을 맡은 지 40년을 맞는다. 박 총장은 이번 신년대담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의 최고경영자로서 소회와 책임감도 털어놓았다. 대담은 경남대학교 총장실에서 김주완 편집국장의 질문으로 진행됐다.

- 다음 달 2일이면 대학을 경영해 온 지 40년이다. 특별한 감회가 있을 것 같은데.

"하루에도 몇 번 세상이 변하는 초고속 시대다. 그래도 옛말을 그대로 쓰자면 강산이 네 번 변한 세월이다. 처음 일을 맡았을 때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우선 학교를 살려보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고비는 있었지만 모두 힘을 합쳐줘 잘 넘겼다. 운 좋게 버텼다고 생각한다."

- 정말 오랜 시간이다. 처음 경남대에 오셨을 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학교 규모 등 차이가 있다면.

박재규(오른쪽) 경남대 총장과 김주완 편집국장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캠퍼스는 비교 대상도 안 된다. 옛날에는 등록학생이 100명도 안 됐고 교직원도 12명 정도였다.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지금은 전국에 있는 대학과 어떤 기준으로 비교해도 20위권에는 들어간다."

- 어느 때보다 대학 간 경쟁이 심한 시기다. 생존을 위한 경남대의 발전·특화 전략이 있다면.

"지난 10년 대학이 위기를 견뎌낼 수 있는 체력을 키우는 데 모든 경영 초점을 맞췄다. 앞으로 문제는 특성화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평화·통일·안보 분야에서는 최고 대학을 만들겠다는 자신감이 있다. 북한대학원, 극동문제연구소 등을 통해 국내 어느 대학보다 앞서 기반을 닦아놓았다."

- 40년 동안 대학 경영을 맡았고 그 사이 통일부 장관도 지냈다. 장관 일과 학교 경영을 비교한다면.

"장관은 정부 정책에 잘 맞추고 상대에 따라 잘 이해시키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학 경영은 모든 구성원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아울러 인재 양성이라는 사회적 책임도 있다. 지금까지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하더라도 나중에 잘못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책임자에게 돌아온다.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 긴 세월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특별한 건강관리 비결이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다면.

"건강 비결이라고 할 게 따로 없다. 평소 교직원들에게 땀을 더 흘리라고 얘기한다. 지금까지 감기에 걸렸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해서 집에 드러누운 적이 없다. 일을 일로 생각하지 않고 일 자체가 건강관리라고 생각한다. 또 주말에 시간이 나면 반드시 운동을 한다. 여름방학 가끔 강에서 수상 스키도 타고 겨울에는 눈 스키장을 찾는다."

- 술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사람들이 많다. 총장님은?

"80년대 초반까지 술을 많이 마셨다. 80년대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 때 주치의가 훗날에 목표달성을 위해 몸을 아껴 두라는 충고를 받고 술 담배를 끊었다."

- 최고 책임자라는 게 외로운 자리다. 가까이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는.

"나는 특별히 교육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가. 고민이 있을 때에는 각 분야에 있는 교수들과 의견을 교환한다. 또 집에서 집사람에게 의견을 물을 때도 있다. 여성의 판단이 세밀하고 정확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여러 의견을 참조해 결정을 내린다."

수수한 빛깔의 폴라 티셔츠와 재킷을 입고 인터뷰에 응한 박재규 총장은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답을 이어갔다. 40년 동안 경남대가 거둔 성과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앞으로 생존에 대한 고민과 책임감도 내비쳤다. 경남대가 자랑하는 평화·통일·안보 기반에 대해서도 지금 성과에 머무르지 않을 것을 거듭 강조했다. 곧 남북 관계와 극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 지난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등 남북 긴장관계에 대해 어떻게 봤는가. 그리고 우리 대응은 적절했는지.

"남북관계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한반도 긴장 고조와 전쟁위기까지 갈 수 있음을 우리 국민이 깨닫게 된 한 해였다. 북 도발에 대한 사후약방문식 대응은 북으로 하여금 추가 도발을 부추긴다. 상황 발생 시 실시간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을 해야 북의 도발을 막을 수 있다. 사후 대응에서도 국론이 분열되면 북한이 한국의 의지를 가볍게 여길 수 있다. 진정한 평화는 강력한 군사적 사후대책과 함께 남북관계를 정상화해서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 김정은 승계 등 북한 권력구조 변화와 대남전략에 대해 어떻게 분석하는지.

"북한은 지난해 제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일 체제를 더욱 공고화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을 본격화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중국도 김정은 후계 공식화에 대해 사실상 인정했다. 김정은 후계자는 올해 주민을 대상으로 우상화 홍보 활동을 강도 높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또 안정적 후계체제 정착을 위해서도 경제난, 북핵문제 등을 비롯한 대내외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이 불거질 것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남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한다."

-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은 제각각 우리의 남북관계에 대한 이해관계가 다를 것이다. 이들 4개국의 한반도 긴장관계에 대한 손익계산은.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정세 불안에 따른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은 G2로서 동북아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통해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유지가 자국의 이익에 맞는 것으로 판단한다. 러시아·일본도 기본적으로 미국의 개입에 따른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미 동맹과 북·중 동맹의 구도 형성으로 대립하고 있는 것 같지만, 북핵문제의 조속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을 주변 4국 모두 희망하고 있다."

- 북·중 경제개발협력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최근 북·중 경제협력 상황은 교역단계를 넘어 투자로 전환·확대되는 상황이다. 특히, 남북경협이 안 되는 상황에서 북한 경제의 대중 의존도 심화 때문에 중국에 종속될 우려와 함께 북·중 경협 및 개발이 북한 경제의 개방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북·중간 경협과 남북경협의 불균형이 확대·심화할 경우 경제 불이익이 커질 것이다. 따라서 두만강 유역개발과 나진지역 경제특구 개발 등에 우리를 비롯해 미·일 등이 참여함으로써 동북아 경제협력의 새로운 계기 마련이 필요하다."

-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이전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평화통일을 위해 화해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데는 과거 정부나 현 정부가 같은 기조라고 생각한다. 잘 아시다시피 햇볕정책은 우리 주도의 평화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현실적 접근법이다. 다만 지난 10년간 북한의 핵무기 보유욕과 북한의 무력 도발 등으로 많은 비판이 있지만 햇볕정책 결과에 대해 기다려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대북 정책기조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남북 관계가 악화되었다. 그러나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하면 남북은 다시 화해 협력 관계로 되돌아 갈 것이다."

- 현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말로 들리는데.

"통일부에 있을 때 여론조사를 했다. 당시 대북 여론이 좋지 않았을 때인데도 국민 90% 이상이 화해협력정책을 지지했다. 그때 국민 동의를 얻어 비료와 식량을 보내줬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북이 비핵화를 반대하면서 화해협력정책이 비난을 받고 있다. 과거 정부의 대북 협력 정책에 대한 비판은 받아들인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화와 경제협력 정책도 이해한다. 그래서 여러 통로를 통해 북에 비핵화를 권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햇볕정책을 친북정책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하지만 작다고 볼 수 없는 화해협력정책의 성과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북한 주민들의 대남관이 엄청나게 변했다. 평화 통일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아주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개성공단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때도 인터뷰나 통일고문회의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개성공단 문을 닫을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 북한을 흡수통일하거나 북한이 스스로 붕괴할 가능성은 없는가.

"북이 6·25 전쟁 후 한 번도 윤택한 생활을 누린 적이 없다. 잘 살다가 못 살 때 터져 나오는 반발은 걷잡을 수 없지만 북한 사회는 누르면 쑥 눌리게 돼 있다. 그 다음 중국이 있다. 중국에 있어서 북한은 굶지 않을 정도로 도와줄 충분한 전략적 가치가 있는 국가이다. 그러므로 붕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 국내에서 전쟁 불사론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다.

"북한이 겁을 내는 것은 평화적 흡수 통일이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그런 두려움이 깔렸기 때문이다. 전면전을 한다고 치자.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에서 일 대 일로 싸운다면 또 모르겠다. 그러면 힘이 센 쪽이 이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남북문제는 남과 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통일이 되면 당장 북 주민 2500만 명을 어떻게 감당하겠나. 북을 비핵화하고 북한 경제도 어느 선까지 끌어올리고 그러면서 신뢰가 쌓여 한 살림을 차려도 되겠다는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동서독의 흡수통일도 동독 국민들이 더 원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평화와 통일을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지속 발언하고 있지만 남북대결 심화와 전쟁 위기 상황에서 통일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인식은 매우 불안하고 위험해 보인다. 결국 북한 붕괴에 의한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최악의 남북관계를 낳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대북 접근법이다. 북한 급변사태를 목표로 대북정책을 올인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관계 정상화와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통해 우선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키고 이에 기초해서 장기적으로 평화적 통일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급변사태 발생 시 우리 주도의 흡수통일을 준비해야 하지만 그 경우에도 꾸준한 화해협력이 전제되어야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서 평화적 흡수통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담/김주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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