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마산 경제 부흥기, 소비 문화 중심지로 번영
상가 한쪽 유흥주점 흔적만 남아 을씨년스러움 더해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290번지 '마산 자유시장'. 오동동 아케이드로 더 알려진 바로 그곳이다. 창원시는 지난달 28일 오동동 아케이드 철거 계획을 밝혔다. 마산회원구 회원 2동에서 마산합포구 오동동까지 3㎞에 이르는 '회원천 지방하천 정비사업'이다. 281억 5300만 원을 들여 10월 중순부터 2014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창원시 관계자는 "10월 중순 철거를 시작해 내년 6월까지 오동동 아케이드 철거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70년 회원천을 덮어 1974년 1월 '마산 자유시장'으로 문을 연 오동동 아케이드. 마산 부흥과 쇠락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 건물이 곧 역사의 뒤로 사라지게 된다.

◇ 철거 앞둔 아케이드 = 지난 2일 찾은 오동동 아케이드 전면은 입구의 편의점과 그릇 백화점 정도가 눈에 띈다. 아케이드를 등지고 왼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대부분 가게는 셔터가 내려져 있다.

철거를 앞둔 아케이드에서 70·80년대 '마산 청춘 남녀 해방구'로 불리던 옛 영화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도심 속 흉물'이라는 무심한 굴레가 더 어울리는 모양새다. 조금 걸으니 문구점이 눈에 띈다. 불은 꺼져 있지만, 장사는 하는 듯하다. 길가에 접한 옷 수선점 몇 곳도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케이드 안쪽은 조명 한점 없는 어둠뿐이다.

1970년 회원천을 덮어 1974년 1월 '마산 자유시장'으로 문을 연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아케이드. 이 곳은 오는 10월 '회원천 지방하천 정비사업'에 따라 철거될 예정이다. /이동욱 기자

가까스로 빛이 닿는 곳을 들여다보면 오래된 가전과 깨진 콘크리트 조각이 나뒹굴고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눈에 거슬릴까 봐 합판으로 가려놓기만 한 곳도 많았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자유상가아파트 입구가 보인다. 아파트 입구는 계단을 올라 2층에서 시작된다. 1층은 상가가 받치고 있다. 40년 전에 등장한 주상복합상가 모습이다. 보상이 끝난 주거지역 입구는 잠겨 있었다. 자유상가아파트 입구 맞은편에 성인텍이 있다. 을씨년스런 주변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입구에서는 70년대 가요가 계속 흘러나왔다.

자유상가아파트 1층 상가도 대부분 입구가 막혔다. 안쪽에는 역시 냉장고, TV 등 가전과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 철근 잔해 등이 쌓여 있었다. 맞은편에는 임시 건물로 지어진 식당 몇 곳이 문을 열어놓고 있다. 동네 어르신 3명이 평상에서 가게 안에 있는 TV를 보고 있다.

자유상가아파트를 돌아 오동동 아케이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상가 한쪽을 가득 메웠던 유흥주점은 흔적만 남아 있다. 입구는 대부분 합판으로 막아 못질을 했다.

맞은편에 마찬가지로 늘어선 유흥주점 몇 곳은 영업을 하는 듯했다. 문이 살짝 열린 한 유흥주점 안쪽에서 중년 여성들의 잡담이 새 나왔다. 오후 5시 30분, 영업을 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각이다.

◇ 마산의 부흥, 그리고 오동동 아케이드 = 1970년 5월 마산수출자유지역(현 자유무역지역) 착공 후 한일합섬을 비롯한 많은 기업이 마산에 자리를 틀었다.

특히 외국인 기업가 투자유치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마산은 '전국 7대 도시'라는 명성이 어울리는 부흥을 맞는다. 잘 나갈 때 수출자유지역 노동자 수는 어림잡아 3만 6000여 명. 이들에게는 노동 후 밀려드는 고단함을 풀 곳이 필요했고, 그 해방구는 오동동이었다. 수출자유지역의 전성기는 오동동 상권의 전성기였다. 그리고 오동동 아케이드는 상권의 전성기를 상징하게 된다.

신삼호 경남건축가협회 부회장은 "당시 마산시에서 개발이 쉬운 오동동 하천을 덮어 아케이드를 세움으로써 부쩍 불어난 소비층을 흡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동재 마산자유시장 번영회 회장은 "70·80년대는 수출자유지역에서 번 돈을 오동동에서 다 쓴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번영했던 시기"라고 돌이켰다.

오동동 아케이드 규모는 8168㎡(복개 주차장 제외)이다. 창원시는 최근까지 주택 27동, 418개 상가에 대한 보상을 마쳤으며, 28개 상가에 대한 보상을 진행 중이다.

수출자유지역과 전성기를 함께했던 오동동 상권은 수출자유지역 쇠퇴와 함께 가파른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1990년대 들어 외국 기업이 한국을 떠나기 시작하면서다. 수출자유지역 고용상황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

1980년대 말까지도 3만 명을 웃돌던 노동자 수는 1990년 1만 9600여 명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IMF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에는 1만 2800여 명, 2005년에는 1만 명 선까지 무너진다. 오동동 상권 역시 그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 추억을 뒤로하고… = 자영업을 하는 최영효(48·창원시 마산회원구 석전동) 씨는 "오동동 아케이드에는 없는 게 없었다"며 흐뭇했던 추억을 되새겼다. 최 씨는 1981년부터 5년 정도 수출자유지역에 있는 한 외국 기업에서 일했다.

"그때 당시 퇴근 시간 수출자유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모습 자체가 장관이었다. 그 많은 사람이 창동·오동동을 헤집고 다니며 재밌게 놀았다. 아케이드에 있는 술집에서 닭볶음탕도 먹고, 성인텍도 가고, 방석집도 가고…. 하루 저녁이 후딱 지나갔다."

오동동 아케이드에서 만난 김대곤(72) 씨는 "그때는 사람들이 부족할 게 없었다"며 "여기서 자리 한 번 깔면 밤새도록 놀아도 놀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오동동 아케이드 쇠락기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갑자기 사람들 발길이 끊어졌어. 그런데 상가 사람들은 다른 할 일이 없었지. 곧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 하다가 하나둘씩 장사를 접었어. 요즘은 마산 사람들도 창원 가서 다 놀잖아. 어쩔 수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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