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간혹 아내가 톡 쏘는 한마디에 찔끔하는 때가 있으니까요. 예를 들자면 친구 모임에 가자고 할 때 아내는 갈 수 없다고 합니다. 나는 말이 잘 안 통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어울리면 오히려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다고 설득합니다. 다 듣고 난 아내의 말. "가서, 애가 아파서 울면 당신이 볼래?" 나는 선뜻 그러마라고 말을 못합니다.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으니까요. 참, 아내는 결혼이민자입니다.

얼마 전에 창원어린이다문화도서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문화학교를 열었는데 첫날 참석해서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단편영화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입니다. 실제 사건을 재현한 이 영화는 주인공의 시선을 카메라와 일치시킨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를 신랄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우리 사회 편견이 빚은 '찬드라' 사건…출신국 따른 서열의식 깊이 반성해야

"라면을 먹었으면 라면 값을 내야지!"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돈이 없어요." 주인공 찬드라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설명을 합니다. 이상한 말투에 식당주인은 말을 자세히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꾸 라면 값 내라고 다그칩니다. 찬드라는 말을 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식당주인은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이 일로 찬드라는 6년 4개월 동안이나 정신병원을 옮겨가며 살게 됩니다. 산업연수생으로 왔다가 돈은커녕 온갖 핍박과 무시를 당하며 그 귀중한 시간을 빼앗깁니다.

영화 중간쯤입니다. 정신병원 의사들이 찬드라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입니다. 지금까지 어눌한 한국말과 네팔 말을 한 것을 두고 정신나간 사람이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여겨 약물을 투여했는데 이 장면에서 "어쩌면 네팔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상담 때마다 찬드라가 그토록 자신은 네팔사람이라고 주장해도 무시하더니, 정말 기가 차더군요. 그런데 여기서 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신원불상자로 처리해서 부녀보호소로 보내버리죠."

찬드라가 다니던 섬유공장에서 실종신고를 냈건만 경찰은 관심 밖입니다. 경찰이 하는 말, 가히 압권(?)입니다. "어~, 몰랐다기보다… 까먹은 거지 뭐." 부녀보호소로 옮겨졌다가 다시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아 정신병원으로 보내진 찬드라는 여전히 무시당합니다. 네팔인임에도 병원 측은 파키스탄 사람을 불러 통역을 하게 합니다. '네팔이나 파키스탄이나' 하는 태도입니다. 맨 처음 식당주인이 찬드라의 말을 귀담아들었다면 그런 불행은 없었겠죠. 하다못해 경찰이라도 성의껏 대처해주었다면 찬드라는 열심히 돈을 벌어 고향에 가서 행복하게 살았겠죠. 생각해봅시다. 우리 주변엔 찬드라와 같은 사람이 없을까요? 나도 모르게 이주노동자를 무시하거나 말이 안 통한다 해서 함부로 대하지는 않나요? 혹은 외국 여성과 결혼을 해놓고도 하녀 부리듯 하지는 않는가요?

찬드라가 네팔공동체에 의해 신원이 확인되어 풀려날 때 공동체 관계자가 그랬다지요. "경찰이 하루 만에 찬드라를 정신병원으로 옮겼다. 한국말이 서투르다고 외국인을 정신병자로 몰아 가둔 사실이 당혹스러울 뿐이다."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란 단체의 관계자가 한 말이 가슴을 찌르네요. "잘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은 환대하면서 그렇지 않은 이주 노동자는 푸대접하는 우리 안의 서열의식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우리나라 이주민이 120만 명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코리안 드림을 품고 우리나라로 오는 외국인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다문화사회로 된 지 오랩니다. 최근 아주 오랜 옛날부터 다민족 국가였다는 연구도 발표되고 있습니다. 편견을 버리고 존중하면 서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지혜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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