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 지도자들 거친 '행운의 축구인'

'박종환, 박창선, 조광래, 허정무'.

이들의 공통점은 한 시대를 풍미하며 한국 축구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축구 영웅으로 불린 이들 밑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는 축구인이 있다. 바로 창원 토월중학교 축구부를 이끄는 김기현(35) 감독이다.

김 감독은 청소년 대표시절에는 허정무 감독에게, 경희대 재학 시절에는 박창선 감독, 안양LG(FC서울의 전신) 조광래 감독, 대구FC 박종환 감독에게 축구를 배웠다. 한국 축구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을 지도자로 모셨다는 김 감독은 이들의 지도력을 높게 평가했다.

김 감독은 "돌이켜 보면 참으로 유명한 선배님들에게 축구를 배운 것 같다"며 "이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지도자 생활을 해야 하는 데 그런 면에서 부끄러움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팀이나 프로생활을 할 때 이들은 선수 관리에 대해서는 엄할 정도로 철저했다"며 "당시에는 '명색이 프로인데,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막상 지도자가 돼 보니 당시 은사님들의 심경이 헤아려진다"고 했다.

축구 지도론, 성적보다 '기본기'

   
 
 

마산이 고향인 김 감독은 합포초 재학 당시 '달리기 신동'으로 불릴 정도로 스피드가 좋았다. 그는 전국소년체전 남자초등부 800m에서 대회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할 정도로 탁월한 주력을 자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축구화를 신게 됐다.

이후 창신중과 거제고를 거치는 동안 포워드와 미드필더로 종횡무진 활동하며 팀을 전국대회 결승에 올려놓는 등 빼어난 기량을 선보이기도 했다.

김 감독은 "당시 거제고는 대우로얄즈(부산 아이파크 전신)에서 후원하는 팀이라 도내에서 내로라하는 중학교 선수는 대부분 거제고를 택했다"면서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는 주니어대표로 선발돼 카타르에서 열린 세계주니어대회에 출전도 했다"고 말했다.

이때 김 감독은 서기복(현 인천 유나이티드 코치)과 함께 16세 대표팀 당시 최고 스트라이커로 활약하기도 했다.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끈 U-16 대표팀은 설기현·고종수 등 당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가 대거 모여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후 2급 정교사 자격증이 보장된 경희대로 진학한 김 감독은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고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주전 경쟁에서 밀려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한 것이 아직도 후회된다"면서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은 국민적 관심이 부쩍 많았던 터여서, 그 당시 태극마크를 달았다면 축구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대표팀에서 못 뛴다는 것 때문에 축구를 시작한 이후 첫 좌절을 맛봤지만, 이후 그는 프로팀에 입단하면서 새로운 동기를 부여받았다.

프로 첫해를 안양 LG에서 보낸 그는 당시 쟁쟁한 선수에 밀려 이렇다 할 빛을 보지 못하고 K2에 있던 국민은행에서 프로 복귀를 위한 담금질에 들어갔다.

그가 다시 프로 무대를 밟은 것은 대구FC 창단을 맡은 박종환 감독의 부름에 의해서였다.

대구FC 창단 멤버가 된 김 감독은 환갑을 넘긴 '승부사' 박종환 감독의 불호령 속에서 삼척과 제주를 오가며 생존을 위한 지옥훈련을 거듭했다.

도내 한 중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출근하기로 돼 있던 김 감독은 대구FC의 제주도 훈련에서 박종환 감독의 눈에 띄어 축구 인생이 이어지게 됐다.

"팀 정상때 그들에 고마움 전하고파"

대구FC에서 측면 공격수와 후반 조커 역할을 맡으며 자신의 이름을 알린 그는 당시 팀에서 최고 인기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팀 합류 이후 맞은 생일 날 서포터스들이 숙소 앞에 케이크를 사들고 와 생일파티를 해준 것을 잊을 수 없다"면서 "대구에서의 선수생활이 내 축구 인생에 가장 빛난 시기였다"고 전했다. 이후 김 감독은 고향인 경남으로 내려와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4년 김해중 코치를 시작으로 2006년부터는 토월중 감독을 맡고 있다. 유병옥 감독과 함께 한 2005년에는 전국소년체전 준우승을 일궈내기도 했다.

도내 중학교 축구팀 가운데 토월중은 늦깎이에 속한다. 1회 졸업생이 이제 대학생이다. 축구팬에게 널리 알려진 선수는 현재 경남FC 미드필더로 활약 중인 윤빛가람이다. 윤빛가람은 비록 졸업은 하지 않았지만 토월중에서 한때 선수 생활을 했다. 소년체전 준우승도 윤빛가람 등이 뛰던 당시에 해낸 성과물이었다.

김 감독의 축구 지도론은 '성적'보다는 '기본기'다. 그는 "초·중학교 팀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상급학교로 진학해 경기에 투입될 수 있도록 기본기를 다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고등학교 감독에게 '잘 키워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듣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그는 부쩍 이전 선수생활을 많이 생각한다. 당대 최고의 지도자들에게 배운 지식을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들에게 활용하기 위해서다. 김 감독은 "나를 지도했던 감독님은 모두 제각각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다"면서 "그들의 장점만을 골라 최고의 지도자로 거듭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리고 그는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을 때, 그들을 만나 가르침에 대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날이 빨리 오길 기대하면서 김 감독은 오늘도 어린 선수들과 함께 녹색의 그라운드를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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