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 핵심들의 잇딴 망언, MBC마저 장악했다는 자만심 작용?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1987년 말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저를 코미디 소재로 써도 좋습니다"는 말을 했다. 이후 대통령도 개그나 풍자의 대상에 단골로 오르내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숱하게 풍자됐으며 그 스스로 톡톡 튀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라거나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는 것은 그중에서도 국민의 기억에 깊이 남아있는 말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숱한 '어록'이 쏟아지고 있다. "어륀지"라거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 땅부자)' 같은 시대의 키워드가 있었다. 대통령은 "눈높이를 낮추라"고 말해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가 하면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신용불량자가 된 대학생들에게 "장학금 받으면 되겠네"라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최근 들어 MB 정부의 주요인사들이 내놓는 '어록'들은 참담하다 못해 절망감을 안겨준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19일 여기자 포럼에서 "나는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기보다는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내 딸 두 명도 이대 가정대학에 보냈고 졸업하자마자 시집을 보냈다"고 말했다.

또한 "가정의 행복을 위해 꼭 결혼해서 최소한 애 둘은 낳아 주십시오"라고 몇 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문이 일자 뒷날 사과하긴 했지만, 그의 딸이 서울 시의원에 출마하려고 공천 신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면초가에 몰렸다.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신동아> 인터뷰에서 공영방송이라는 MBC의 사장이 '큰집'에 불려가서 '조인트'도 까이고 매도 맞고 해서 이른바 '좌빨' 대학살 인사를 집행하는 청소부 역할을 했다는 폭로를 했다가 역풍을 맞고 물러났다.

김태영 국방부장관도 '어록' 제조에 힘을 보탰다. 지난 20일 서귀포 호텔에서 제주 해군기지 조성으로 갈등을 빚은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프리카 밀림은 관광지가 아닌 무식한 흑인들이 뛰어다니는 곳일 뿐이다"고 말했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인데다 듣기에 따라서는 강정마을 주민들도 '무식한 아프리카 흑인'과 다를 바 없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말이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거의 '걸어 다니는 어록 제조기'로 불릴만하다.

그는 올 들어 지난 1월 25일 "좌파 성향 판사가 사법부의 핵심 개혁 대상"이라는 발언을 시작으로 지난 16일 "좌파 교육이 성폭행을 발생시킨다"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좌파' 때리기에 나섰다.

오죽하면 한나라당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인 정두언 의원이 "(최시중) 그분은 야당 편이 아닌지"라거나 "김우룡·최시중·유인촌, 돕지는 못할망정"이라고 라디오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하기까지 했겠는가. 하지만, 정두언 의원도 "이번 선거를 전교조 심판으로" 어쩌고 하는 말을 '어록'에 올렸다.

여기에다 이명박 대통령의 오래된 발언의 진위도 '어록'에 올랐다. 지난해 7월 요미우리는 후쿠다 야스오 일본총리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를 교과서 해설서에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하자 이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데서 촉발됐다.

이후 요미우리는 인터넷판에서 이 기사를 내렸지만 최근 법원에 답변서를 내면서 '사실보도'였음을 밝혔다. 만약 이 대통령이 실제 이런 말을 했다면 이는 '한국 내 여론이 잠잠해지고 나서 명기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에 '독도 포기발언'이라는 의혹까지 사면서 누리꾼 사이에 '곤란하다, 기다려달라'는 일대 유행어가 됐다.

이런 '유치찬란'한 어록들이 왜 갑자기 쏟아진 것일까. 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위기감을 조성해 보수세력 결집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강공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또 안상수 원내대표는 후반기 국회의장을 노리고 이른바 '좌파'와의 대립각을 세운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록' 제조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이른바 '친이계' 핵심에서 주도한다는 점에서 집권 피로감이거나 MBC마저 장악했다는 자만심에서 혼선을 빚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MB 정부 들어 한 일 대부분이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식이었다.

대운하 반대 여론이 거세니 4대 강 정비로 이름을 바꿔 밀어붙였고, 세종시 수정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해도 무시하고 밀어붙이고 있다. '교육개혁'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학교의 입시학원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렇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쌓인 피로감이 터져 나온 것은 아닐까? KBS·YTN에 이어 MBC마저 장악했다는 자만심에 기고만장해 삼가고 거리낄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은 아닐까?

글쎄. 아직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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