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사꾼, 친환경 신념 하나로 세계 수출까지

평생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농촌으로 가 직접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하고, 그 농산물로 웰빙식품을 만들어 판매에 나서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15년 전인 1996년 하동군 횡천면 전대마을로 귀농한 이수삼(60) 씨.

이 씨는 고향 마산에서 친환경 세제를 공급하는 사업을 했으며, 녹차전문점인 전통찻집도 12년간 운영했다.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아내와 딸 둘 등 모두 4명의 식구가 먹고살 만큼은 벌었다. 그러나 이 씨는 수십 년간 사업을 하다 보니 건강이 나빠졌다. 의사가 등산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워낙 산을 좋아하던 터라 의사의 처방대로 전국의 유명한 산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도시서만 살다 건강상 이유로 귀농

   
 
 
그러던 어느 날, 지리산을 가려고 하동을 방문했는데, 섬진강과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공해에 찌들지 않은 공기, 산에서 내려오는 물 등 천연적인 자연환경에 반해버렸다. 여기서 살면 금방이라도 건강이 회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씨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 짐을 꾸렸다. 놀란 토끼처럼 눈이 휘둥그레진 아내 옥인수(56) 씨에게는 딱 한마디만 했다. 건강 되찾아 오겠다고. 함께 가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도시에서만 살았던 아내에게는 힘든 생활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 씨는 전대마을로 와서 그 해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는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그는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겠다는 생각으로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생산량이 이웃 농사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러나 그는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신문과 방송 등을 통해 농약으로 말미암은 중독사고를 여러 번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모르는 사람이 용감하다'는 옛말처럼 자기가 재배한 농산물을 식품으로 가공, 판매에 나섰다.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해 안전한 먹을거리로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체계적인 공부를 하려고 벤처농업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기능성 식초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방호정 씨를 만났다.

방호정 씨는 농림수산식품부선정 신지식농업인장 제201호로 하동군 악양면 축지마을에서 '방호정 기능성 식품연구소'를 운영하는 유명한 농사꾼이다. 두 사람은 친환경 농산물 생산과 판매방식 등에 대한 생각이 같았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지리산 착한농부'라는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회원 수가 늘고 있고, 단골 구매자도 생기기 시작했다.

방호정 씨 만나 농사·가공·판매 체계화

방 씨는 "처음엔 도시 사람인 이 씨가 '뭘 알겠어'라고 무시했었는데, 직접 만나보니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고, 그 농산물로 식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확고부동했다"며 "오히려 요즘은 이 씨를 많이 믿고 의지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하동으로 내려온 지 5년 만에 우리네 식품을 설립하고 하동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식빵과 건빵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가공과 판매를 동시에 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 씨는 3년 정도 자기가 만든 식빵과 건빵으로 식사를 대신해야만 했다. 판로가 개척되지 않아 만들어 놓은 식품을 버리지 않으려면 자신이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

이에 이 씨는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를 비롯한 많은 사회단체를 찾아다녔다. 한 번 갔다가 안되면 두 번, 세 번, 네 번…. 셀 수 없을 정도로 방문했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이 씨의 '발품' 덕에 소비자가 많이 늘었지만, 이윤은 적었고 적자는 계속됐다. 우리밀이 수입 밀보다 4배 이상 비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입 밀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만들겠다는 자신의 마음을 배반할 수 없었다.

현미죽 미국 수출 이어 일본 진출 '눈앞'

이 씨는 흑자경영을 위해 냄새 없는 청국장·강정·조청 등 다양한 식품을 만들었다. 냄새 없는 청국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했다. 이들 식품 역시 하동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만든 것이다.

특히, 2009년 10월에는 5년간 연구를 거듭한 끝에 오곡 현미죽 가공에도 성공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현미죽이 되는 것으로 아침 식사 대용으로 그만이다.

이 현미죽은 현미상태인 쌀을 4초간 순간적으로 압력을 가해 팽창시키는 것이 비법이라고 한다. 현재 미국으로 수출되는 현미죽은 일본시장 진출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4일 일본에서 만난 바이어로부터 '웰빙식품'과 '패스트푸드'가 결합한 건강식품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씨는 "해외로 수출하려면 안전 여부·위생상태·인체 유해 여부 등 다양한 검사를 거쳐야 하는 데, 오곡 현미죽은 이 모든 절차를 통과한 안전한 식품"이라며 "우리나라 국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는 것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강식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외롭게 친환경 농산물 재배와 건강식품 가공에 매진해 온 이 씨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생겼다. 아내 옥 씨가 지난 2000년부터 도시생활을 접고 남편이 사는 농촌으로 왔으며, 식품가공학과를 졸업한 둘째 딸 한의(28) 씨도 아버지 일을 거들고 있다. 이 씨의 가족이 함께 모여 만든 식빵·건빵·조청·청국장·현미죽 등 건강식품을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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