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호소해봐라? 정부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2009년 11월 20일 마산의 학원강사 박재형(39) 씨 등 한국인 관광객 6명이 미국 북마리아나연방 사이판에서 무장괴한의 총기난사로 중경상을 입은 지 2개월이 지났다.

이 사건으로 총탄이 척추를 관통한 박재형 씨는 네 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평생 반신불수를 면치 못하게 됐다. 울산의 김만수 씨도 양팔과 가슴, 등, 머리, 손에 수없이 파편을 맞고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나 남아 있는 파편을 다 제거하진 못했다. 김 씨 또한 몸 속에 남아 있는 파편으로 인해 평생 후유증을 걱정하며 살아야 할 처지다.

그동안 병원 치료비도 수천만 원이 나왔지만, 관광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이판 정부나 여행사는 "보상해줄 제도도 없고, 법적 책임도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 사격장 화재로 희생된 일본인 관광객들에겐 새로운 '특별조례'까지 만들어 1인당 3억~5억 원을 보상해주기로 한 우리 정부는, 정작 해외에서 피해를 입은 자국민에게 "정부로선 할 수 있는 게 없다. 인터넷과 언론에 호소해봐라"는 말만 하고 있다.

이처럼 여행사와 사이판 정부, 한국 정부가 모두 책임을 회피하자 발끈하고 나선 것은 네티즌들이었다. 그동안 이 문제 해결을 응원하고 나선 동맹블로그의 숫자만 14명에 이른다. 그들이 블로그에 발행한 기사도 60여 건이 넘었다. 최근에는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도 동맹블로그 대열에 합류했다. 박재형 씨의 아내 박명숙 씨도 블로그를 만들었다. 박재형 씨를 돕기 위한 아고라 모금 청원도 이틀만에 1차 서명 500명 목표를 초과해버렸다.

피해자와 핏줄 하나 엮이지 않은 그들이 사건 해결에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뭘까? 그들 중 세 명의 블로거와 피해자의 아내 박명숙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실비단안개(김정숙)

   
 
 
-피해자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사이판 총기난사 사건 해결에 유난히 적극적으로 나서고 계신 계기나 이유가 궁금합니다.

△타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건인데, 경남도민일보에 기사화된 것을 보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길을 가다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를 만나면 자연스레 그 짐을 받아 들듯이, 이웃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우토로 마을 살리기에도 앞장서신 것으로 아는데, 우토로 사건의 과정을 간단히 소개해주십시오.

△2005년 우토로 마을 이야기가 이슈화되었는데, 방송과 언론은 대부분 지속적이지 못하기에 당시 우토로 토지문제를 해결 짓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우토로 마을의 토지 매매 협상 시한이 9월 말로 다시 다가오자 '아름다운 재단'이 우토로 돕기에 나섰고, 이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계시는 블로거 심샛별님이 다음 뷰(당시는 블로거 뉴스)에 '우토로에 희망을'이란 슬로건으로 송고했으며, 블로거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했습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영상을 만드는 친구에게 블로그 스킨과 배너를 만들어 달라고 하여 배포했으며, 이웃 블로거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정부(당시 청와대 블로그까지) 블로그에 참여를 희망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적극적인 블루팡오 님과 알마(현재 비공개블로그) 님 등 몇 분은 국회의원에게 편지로 하소연을 하기도 했습니다.우여곡절 끝에 2008년 예산안에 30억 원이 우토로 마을 토지매입비로 책정되었습니다. 이에 힘을 얻어 토지매입 부족분을 메우고자 블로거와 네티즌들은 돼지저금통 깨기 릴레이와 아고라 성금모금을 하며 마음을 모았습니다. 블로거들의 활동 기간은 겨우 몇 개월이었지만, 반향은 엄청났습니다. 다음의 도움이 컸지요.

-네티즌과 국민, 그리고 언론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잘못되어 가는 것에 무관심해 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면 노예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저도 때때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노예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강탈당한 이 시대에 함께 고민하고 분노하며, 사이판 총기난사 사건 해결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명숙 씨(박재형 씨의 안내)

   
 
 
-3개 방송사에서도 취재를 해간 것으로 아는데, 이후 사이판정부나 한국정부 또는 여행사의 태도에 변화는 없었나요?

△촬영은 해갔으나 아직까지 실제로 방영된 것은 하나도 없는 탓에 촬영해 간 사실을 정부에서는 모르고 있을 것 같고, 여행사에서는 촬영 당시 다녀간 이후로 연락이 없습니다.

-이 사건과 일주일 간격으로 발생한 부산사격장 화재사고와 비교해 한국정부와 사이판정부의 태도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생긴다고 보십니까?

△친일파와 친미파로 이루어진 정부 때문 아니겠습니까. 정작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은 조국의 의미보다는 글로벌지구촌에서의 그들의 안위만이 중요할테니까요. 서민들에게 조국이란 그야말로 목숨바쳐 지켜낼 가치가 있는 이름이고, 그들에게 조국이란 그들의 이익에 따라 사상이나 다른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한 채 얼마든지 떠날 수 있는 이름이겠지요.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에 서운하거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쉬움이나 서운함이라…. 혼자 기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옹알이도 채 못하는 핏덩이 갓난쟁이를 그냥 어둠 속 차갑고 낯선 거리에 버려두고 모른체 하다가 울음소리에 모여든 군중 속에 섞여 제 새끼가 어떻게 되는지 관망하는 비정하고 인간같지 않은, 어미란 이름도 아까운 어미랄까…. 제게 있어서 이 나라 정부는 그런 어미 같지 않은 어미입니다.

-남편 박재형 씨가 평생 반신불수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이후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갈 계획입니까?

△사실 제가 그이와 경험도 없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입니다. 치료가 조금이라도 빨리 끝난다면 개인 공부방에서 그와 한 공간에서 애들 가르치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일상 속 생활이 익숙해질 때까진 제가 그이와 애 둘을 다 돌볼 수는 없기에 애들은 당분간 친정에 맡겨야겠지만, 한창 부모 손이 필요할 때 이런 기약 없는 계획밖에 못 세우니 가슴이 터질 듯 아픕니다. 하루 빨리 그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에게도 삶의 활력과 동기를 줄 수 있어야 하고 애들도 함께 살 수 있어야하는데…. 발로 뛰면서 궁리해야할 일들이니 지금 당장은 막막하기만 합니다.

◇한사 정덕수(정덕수)

   
 
 
-<한계령>의 작사자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어떤 분이며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1964년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에서 태어난 이곳 토박이입니다. 81년에 <한계령에서>를 썼습니다. 노래로 만들어 진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하덕규와 몇 사람의 가수들을 만나면서입니다. 2001년 늦게야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정착했습니다. 한계령에서 막노동을 하며, 봄이면 산에 올라 나물을 뜯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이판 총기난사 사건 해결에 앞장서게 된 계기나 이유가 궁금합니다.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런 사건에 대해 해당국가나 여행사에서 보상 해줄 것으로 믿었기에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실비단안개 님이 사이판 총격피해자에 대한 현재 상황을 제 글에 댓글로 남겨 알게 되었고, 침묵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피해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두 번이나 찾아가 취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십시오.

△병원을 제가 찾아간 것은 경남도민일보 기사를 확인한 뒤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글의 정확성과 확실한 증거로 자료를 보충할 필요를 느껴 피해자가 입원한 병원을 찾은 것입니다. 한국정부가 사이판 정부를 상대하는 방법이 너무도 비굴하다는 것, 사건을 국가의 책임으로 느끼지 않으려는 비겁함,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의지력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 봅니다. 우리 정부는 사이판 정부에 피해 보상을 강력히 요청해야 하고, 여행사도 고객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블루팡오(이협)

   
 
 
-남태평양 바누아투에 사시는 교민으로만 알고 있는데, 어떤 일을 하는 어떤 분이신지, 언제 어떻게 그곳에 가서 사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2004년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를 온 몸으로 느낀 후 남태평양의 바누아투란 나라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청소년 지도를 오랫동안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 왔는데, 가정을 돌보기 너무 힘든 직업이었습니다. 결국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숙박업과 가이드, 임대업을 하며 살고 있는 행복 전도사 '블루팡오 이협'이라고 합니다.

-해외에 사는 교민으로서 사이판 총기난사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이 사건을 보는 소회를 말씀해주십시오.

△사이판 총기 사건 처음 발생시에도 글을 쓰고픈 욕망은 있었습니다만, 근래 너무 힘든 일이 많아 마음만 갖고 있었는데, 블로거 중 몇 안 되는 좋은 친구이신 실비단안개 님으로부터 관심을 가져 달란 글을 전해 받았습니다. 그 순간 창피하고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갖고 부족한 글이지만 몇 개의 글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이 대부분의 언론과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 당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파워블로거들의 열정으로 크게 이슈화되는 것을 보며 그래도 이 대한민국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해외 교민으로서 한국정부의 자국민 보호대책에 대해 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제가 오히려 묻고 싶은 말입니다. 대한민국에 자국민 보호대책이란 것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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