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노래 부르러 왔건만 관리 감독 안돼 성매매 노출

경남경찰청은 이달 초 필리핀 여성을 고용해 외국인 남자 손님 상대로 성매매를 알선한 거제 모 주점 업주 ㄱ(42)씨를 구속했다. 지난달 거제 옥포동 모 주점에서 발각된 외국인 여성 감금·성매매 강요 사건 때문에 기획 단속을 한 결과였다.

이 사건은 필리핀 여성 ㄴ(28)씨가 거제 옥포동 모 주점에 감금돼 성매매를 강요받았다며 먼저 이 주점을 탈출한 필리핀 여성 ㄷ(28)씨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알려졌다. 외국인성매매 피해여성 시설의 보호를 받고 있던 ㄷ씨는 보호시설 소장과 경찰을 대동하고 문제의 주점을 덮쳤고, 주점 인근 원룸에 감금된 ㄷ씨를 구했다.

이들 필리핀 여성은 모두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연예, 연주 등'을 하려는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예술흥행비자'(E-6)로 입국해 각 주점에 고용됐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하고 무용단에 소속돼 춤을 추는 것으로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들어왔지만 성매매로 기획사와 유흥주점 업주의 배만 불려 준 것이다.

E-6비자 존재 자체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다. '예술'과 '흥행'이라는 기준 모호한 두 개의 업종을 한데 묶어 비자를 발급할 때는 예술에, 실제 쓰이기에는 흥행에 무게를 두는 아전인수 격 활용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도내 현황 = 2009년 10월 현재 경남에 등록된 외국인 수는 5만 1733명으로, 서울과 경기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이중 E-6비자로 경남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모두 248명. 이중 절반 이상(56%)이 거제지역에 머물고 있다. 거제에 139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창원 59명, 마산 20명 순이다. 국적별로는 필리핀 195명, 중국 38명, 러시아 6명 등이다. 필리핀 출신이 많은 것이 눈에 띈다.

◇서로 '나 몰라라' = 이들 외국인 여성들이 발급받은 비자의 목적대로 체류하고 있는지 관리·감독하는 곳은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은 대놓고 방치되고 있었다. 외국인 여성을 "가수로 일하면서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한국에 데려오는 외국 혹은 국내 공연기획사와 기획사로부터 이들을 파견받아 고용하는 유흥업소 업주의 '양심'에 맡겨둔 셈이다.

E-6비자는 국내·외 기획사와 계약을 맺은 외국인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공연 허가를 받은 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서 발급한다. 기획사는 '파견근로사업체'로 노동부의 허가를 받은 곳이라야 한다. 이에 따라 영상물등급위원회,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노동부 근로기준국 3곳이 이들을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흥을 돋운다는 E-6의 기준이 모호하고 관리·감독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세곳 모두 손을 놓고 있다.

마산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추천서를 갖고 비자 발급 신청을 하면 기획사 운영상태와 외국인 이탈율 등을 확인하고는 비자를 내줄 수 밖에 없다"며 "도내 등록된 외국인 전체의 민원을 8명이서 감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올해 마산출입국관리사무소가 현장 실태조사를 한 것은 5번에 불과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주로 밤 시간대 공연을 하는 모든 업소에 찾아가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털어놓았다.

◇'흥을 돋운다'는 흥행비자, 옳은가 = 일본은 2006년 흥행비자 발급을 엄격히 제한해 2001년 7만여 명에 달했던 E-6비자 필리핀 여성들이 2008년 2500여 명까지 줄었다.

이철승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장은 "영상물등급위원회는 공연에 관한 것만 심사하고 출입국관리소는 서류만 보고 비자를 내준다. 또 파견업체를 관리해야 할 노동부는 손을 놓고 있다"면서 "기획사들이 영세한데다 난립해 서로 경쟁하면서 무분별하게 여성들을 들여와 싼값에 업소와 계약한다. 업소에서 주는 돈만으로 생활할 수 없는 여성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술시중이나 매춘 등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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