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한 시인 특별기고서 주장


노산 이은상의 친일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지역 문단의 원로 김교한 시조시인이 ‘노산의 일제 말기 행적’을 구체적으로 확인한 글을 최근 발표하고 노산의 친일 혐의를 부인하고 나서 관심을 끈다.
김 시조시인은 경남문협(회장 정목일)이 발간한 <경남문학> 2001년 가을호에 ‘노산 선생의 은거지 답사’를 특별기고하고 “(노산이) 43년부터 전남 광양시 진상면 일대에서 숨어 지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 시조시인은 ‘……답사’에서 “노산이 함흥형무소를 나온 1943년 이후 해방 때까지의 행적에 대해 일부에서 친일 의혹설을 제기한 바 있다”며 “지난 6월 10일과 19일 전남 광양시 진상면 일대에 가서 노산이 일제 때 숨어 지냈던 황호일.김현주(모두 작고)씨의 집을 찾고 후손의 증언을 들었다”고 밝히면서 노산의 친일 혐의를 부정했다.
이와 함께 김 시조시인은 58년 간행된 <노산시조선집>의 ‘옥중음(獄中吟)’ 부분 서문과 66년 노산의 글을 받아 세워진 ‘진상중학교 사적비문’을 자료로 내놓았다.
비문에는 “내가 일찍이 일제의 압정을 피해 숨어 거할 곳을 찾은 데가 거기(광양 진상)요 방랑하던 곳도 거기요, 그러다 마침내 왜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해방을 만난 곳도 거기”라고 적혀 있다.
노산이 전남 광양 백운산에 숨어 지냈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돼 있었으나 구체적인 지역과 관련 인물은 여태까지 설과 짐작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지난해 5월 노산의 친일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에서 <노산 이은상 탐구>를 발표했던 마산시의회 김봉천 전문위원도 “노산의 석방 이후 행적에 대한 기록은 쉽게 찾을 수 없으며 고문 후유증을 다스리기 위해 전남 광양의 친구 집으로 간 것으로 판단된다”고만 했었다.
따라서 이번에 김 시조시인이 답사와 확인을 통해 구체적인 지역과 관련 인물에 관한 노산의 글을 확보한 만큼, 앞으로 제3자의 관련 기록이 덧붙으면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산이 은거하기 시작한 43년은 노산이 친일언론사인 만선학해사가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특집으로 펴낸 <반도사화(半島史話)와 낙토만주(樂土滿洲)>라는 책에 ‘전 조선일보사 조광 주간’ 이름으로 논문 ‘이언(俚諺)의 전와(轉訛)에 대한 일고(一考)’를 실은 해 이기도 하다. 때문에 김시조시인이 이 부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는 부분은 아쉽다.
한편 이 글에서 김 시조시인이 “선생은 조선어학회 사건 이후 늘 일제의 감시 대상자였음이 드러났고 문학인으로서도 대단한 거봉이었음에도 보기 드물게 일제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지내온 분”이라는 등 노산의 친일 혐의 전체를 부인하는 논지를 펼쳐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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