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절망의 일본 열도|가마타 사토시 지음

"굉음은 하루종일 하늘에서 쏟아졌다. 대화가 중단되기 때문에 욕을 내뱉고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40m 상공의 나무 끝을 스치듯 지나가는 비행기가 조종간을 너무 밀었다간 집안으로 쳐들어올 듯한 공포심까지 느껴졌다. 그것은 고문과 진배없었다."

"'공적인 일이기 때문에 반대할 수 없다.' 이런 의식은 (고가철로로 마을을 동강내는 사업을 두고) 철도회사와 도쿄도 직원들이 설명회 등을 통해 주입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본 서민 의식의 밑바닥 깊은 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관념이기도 하다. 개인생활은 희생을 하더라도 공(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이 때 '공'은 가면을 쓴 대기업이기도 하다."

   
 
 
"(판결문에서) 범죄자의 개인 정보는 얻을 수 없었고 미국에서 전과가 있었는지, 이라크 침략에서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신문기사에는 '일등항공병'이라 한다. 바그다드 공습에 참가했을 것이다. '(돈이 든 가방을 뺏으려 하자) 피해자가 울부짖으며 뜻대로 조용히 하지 않자 감정이 격해져 이상할 정도로 격렬한 폭력을 가해 살해에 이르렀다.' 이 항공병에게 능욕된 일본 여성의 비명소리와 미사일에 날아가 버린 이라크 여성·아이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겹쳐서 들리는 것 같았다."

"1972년 복귀 이후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미군기 추락 사고는 41건을 헤아린다. 헬기는 2건. 각각 4명의 승무원이 사망했지만 주택가 추락은 (이번이) 처음이다. 승무원, 시민 모두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던 이번 사고는 기적 중의 기적이지만 이 사고를 기화로 기지 철거에 착수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184쪽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핵전쟁의 비참함을 나타내는 너무나도 불행한 증거라 할지라도 그것은 아시아 침략의 결말이기도 하다. 바다에 무단으로 투기하고 (오쿠노시마) 방공호 속에 은폐한 독가스탄은 아직도 섬 안에서 망령처럼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실제로 사용하고 매설한 독가스탄이 지금도 피해를 낳고 있어서 가해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일본군이 저지른 가해에 대해 가공할 두려움을 느낀다. 히로시마와 오쿠노시마, 피해와 가해는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다."

"교육기본법 전문에 있던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고 진리와 평화를 희구하는 인간 육성', 그것을 위한 교육 보급 철저라는 이념을 '진리와 평화'에서 '진리와 정의'로 바꾼 것이 평화교육에 대한 가장 노골적인 공격이다. '평화'와 맞바꾼 '정의'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에서 소리 높여 부르짖던 바로 그 '정의'다."

고이즈미·아베 정권 후 양극화 심화·민주주의 퇴행 겪는 일본
우리 사회가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70대 르포 작가의 자국비판


"이(도요타) 회사의 춘투 교섭 내용도 경쟁력의 상대적 우위에 대해서다. 노사가 담합해 노동자와 하청기업을 괴롭히는 꼴이다. 노조가 어용이 되고 사내 견제 기능이 사라지자 일본 게이단렌(우리 사회 전경련과 같은 자본가 조직) 회장사라고 믿어지지 않는 추문이 잇따르고 있다. 서비스 잔업을 시켜 노동기준감독서로부터 시정 권고를 받거나, 50억 엔이나 되는 탈세가 나고야세무서에 적발된다거나, 자동차 정비 국가시험문제를 누설하는 등 글로벌 기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주먹구구식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물질'을 제거하려는 '선량한 시민'이 늘고 있다. 위생관념과 맞물리면서 '노숙자 사냥' 예비군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2004년 6월 고토구 가메이도. 16세 소년 2명이 아라카와로 흘러드는 나카가와 하천 다리 밑의 64세 노숙자를 강에 뛰어들게 만들어 익사시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노숙자는 인간쓰레기니까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가벼운 생명관은 노숙자를 쫓아내고 싶어하는 어른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2005년 7월에도 한 고교생이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싶어 노숙 노동자의 머리를 짓밟아 살해한 적이 있다. 노숙자에 대한 소년들의 증오는 자신의 장래에 대한 공포로 점점 증폭되고 있다."

"'위장 출향(出向 : 인력을 모회사에서 자회사로 파견)'과 '위장 도급'은 직접 고용의 책임을 지지 않고 산재보상 등 법망을 피하는 것으로, 게이단렌 회장의 회사인 캐논을 필두로 도요타와 마쓰시타 계열 회사들의 단골 수법이다. 이 회사의 노동자 구조를 보면 정규직 3500명(연 수입 600만 엔 이상), 기간제 2000명(일급제. 연 수입 400만 엔 전후), 파견직 1100명(시급제. 연 수입 200만 엔 이상)이다. 그래도 방송업계의 정사원과 하청 프로덕션 사이의 5~6배 격차보다는 낫다." 29쪽

노숙자와 실직자를 위한 도쿄 산야의 무료 급식장. 왼쪽에 선 이가 바로 일본의 르포작가인 글쓴이 가마타 사토시다.
일본 얘기지만 일본 얘기 같지 않고 한국 사회 얘기 같은 구석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 이미 일어난 사건도 있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도 있다. 특히 노동 분야를 보면, 우리에게 반면교사 노릇을 할만한 구석이 많은 책이다.(여기 적은 것보다 더 생생한 대목도 많다.)

70대 접어든 일본 르포 작가 가마타 사토시의 글을 부산일보 40대 기자 김승일이 옮겼다. 김승일은 "문어는 구멍을 좋아해 '문어방' 단지 덫에 종종 걸린다. 문어는 빠져 나오지는 못하지만 여기서 제 살을 뜯어먹으며 여섯 달은 버틴다"고 책머리에 적었다.

일본에 있는 '문어방 노동'이, 우리나라에서 언제 현실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산지니. 264쪽. 1만4000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