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정보유통 공간…참된 시민언론 꿈꾼다

'부산·울산·경남'과 '광주·전남'은 언론환경에서 몇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우선 부산·울산·경남은 지역에 따라 신문사와 방송사의 소재지와 배포 또는 방송권역이 뚜렷이 구분돼 있다. 이를테면 부산에는 국제신문과 부산일보가 있고, 경남에는 경남도민일보와 경남신문, 경남일보가 있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상일보와 울산매일은 울산광역시만을 배포지역으로 한다.

그러나 아직 광주·전남은 두 개의 행정구역을 한묶음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전남일보가 광주에 있듯이 지역일간지의 대부분이 광주에 본사를 두고 광주·전남 전체를 배포권역으로 삼고 있다.

게다가 광주·전남에는 신문사가 엄청나게 많다. 순천에 본사를 둔 1개 신문을 빼고는 무려 15~16개 일간지가 광주에서 발행된다. 하도 많은 신문이 어느날 창간했다가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지곤 하는 바람에 기자들조차 정확히 몇 개 신문사가 있는지를 모른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사이비신문'이나 '듣보잡신(듣도 보도 못한 잡다한 신문을 뜻하는 인터넷 속어)'도 많다고 한다.

이토록 유난히 신문이 많은 곳이 광주·전남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곳에서 만나는 시민들은 한결같이 '올바른 지역언론'을 갈구하고 있었다. 지난 5월 22일 광주지역 인터넷신문 <뉴스통> 폐간 기념(?) 토론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랬고, 3·4일 이틀간 전남 여수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그랬다. 그들은 특히 6200명의 시민주주가 참여해서 만든 <경남도민일보>를 부러워했다.

유난히 신문이 많은 광주·전남, 시민들의 언론갈증 높은 이유

<뉴스통>은 1999년 < DK21 > 이란 이름으로 창간한 최초의 지역 인터넷신문이었다. 대학교수와 초·중·고 교사, 시민운동가 등이 호주머니를 털어 창간한 이 신문에는 지역일간지의 기자들이 익명으로 참여하여 기사를 쓰기도 했으며, 기존 신문에서 빠진 지역현안과 문제들을 이슈화하여 적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재정난으로 창간 10년을 넘지 못하고 폐간한 이 신문의 주축멤버들은 마지막 남은 돈으로 '폐간 기념 토론회'를 열었던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토론회에서 "뉴스통의 실험은 이것으로 막을 내리지만, 올바른 언론을 개척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광주의 <뉴스통>의 멤버들이 이렇게 와신상담하고 있는 사이, 전남 동부 여수지역에서는 새로운 언론을 위한 시민들의 열망이 구체적인 모임의 형태로 서서히 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존의 인터넷신문에서 한 단계 나아가 '블로그 언론'을 구상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소통한다는 의미로 가칭 '넷통'이라는 이름까지 정해둔 여수시민 21명은 1인당 100만 원씩 2100만 원의 종잣돈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한창진 씨와 함께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오문수 씨. 그는 53년생이다.
그러나 목표는 21명이 아니라 200명이 2억 원의 자금을 만들고, 시민 30만 명 중 적어도 5만 명이 필진이자 독자로 참여하는, 그야말로 '시민언론'을 지향한다고 했다. 이 목표를 위해 지난 1년 간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정운현 테터앤미디어 대표이사, 고재열 시사인 기자(독설닷컴 운영자) 등을 초청해 언론과 블로그에 대한 강의를 계속해왔다. 지난 3일 나를 불렀던 것도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사는 기자이자 블로거로서 경험을 듣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정말 특이한 인적 구성이었다. 대개 시민단체가 주최한 모임에 가면 30·40대가 주축이다. 하지만 여수의 그 모임은 50대가 주축이었고, 60·70대도 있었다. 40대는 오히려 소수였다.

그날 모인 35명 가운데 이른바 '운동권'과는 무관한 평범한 시민들이 많았다는 것도 특이했다. 농민, 주부, 교사, 금융인, 수산인, 종교인, 회계사, 변호사는 물론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연주자까지 직업도 다양했다.

한창진 씨, 블로그 기반으로 지역언로(言路) 만들겠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여수지역 운동권의 대표격인 50대 중·후반의 교사들이 온갖 뒤치다꺼리를 다하는 실무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개 다른 지역에 가면 그런 분들은 점잖게 무게를 잡고 앉아 손님 응대나 하고, 사회자가 부르면 인사말이나 하면서 폼을 잡기 일쑤다. 그런데 이 분들은 장소 섭외에서부터 자리 정리와 안내, 뒤풀이를 위한 식당 예약과 주문, 계산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여수에는 원래 일하는 분들의 평균연령이 좀 높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명함을 받아보니 '전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한창진'이었다. 55년생이니 우리 나이로는 쉰 다섯이다. 그와 함께 열심히 실무자 역할을 하던 분은 중학교 교사인 오문수 씨로 나이는 더 많은 쉰 일곱이었다.

필생의 사업으로 디지털 시민언로(言路) 창간작업에 나선 한창진 씨.
한창진 대표는 전국 최초의 주민발의로 3여(여수·여천시, 여천군) 시·군통합을 이뤄낸 주인공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현재도 행정구역통합 전국회의 상임집행위원장으로 있다.

알고보니 지난 4월과 5월 마산에서 행정구역 통합과 관련해 특강을 하기도 한 인물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그는 80년대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다. 그런 그가 작년부터 필생의 사업으로 시작한 게 '넷통'이다. 그에게 왜 새로운 언론을 창간하려는지 물었다.

-나이도 50대 중반쯤 되시고, 시민사회운동에서도 이미 대표급 인물이신데,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처리하시는 것 같다.

△나는 (사람을) 조직하는 게 특기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젊은 사람들에게 다 맡기고 뒷짐 지고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조직하는 일은 오히려 나이 든 사람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넷통'은 어떤 조직인가?

△아직 대표도 없고 창립도 하지 않은 느슨한 모임이다. 현재 35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모두 창립위원이다. 강의에 한 번씩이라도 참여한 회원은 90명이 넘는다. 그 중에서 21명이 100만 원씩 창간 자금을 내놨다. 앞으로도 돈을 내는 사람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자기 돈을 내놔야 의무감도 생기고 애정도 생긴다. 지금은 2100만 원이지만, 1억 원, 2억 원까지 모을 것이다. 그리고 여수시민 30만 명 중 적어도 5만 명이 필진이자 독자로 참여하는 디지털 시민언론으로 만들 것이다.

-운동권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시민들이 많은 것 같던데?

△운동이란 게 뭔가? 운동권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건 운동이 아니다. 그리고 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을 위한 것이다.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우리가 운동을 한다며 운동이 우선이고, 인간은 그 다음으로 가버리는 그것은 아니거든? 인간이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지 운동을 위해서 인간이 사는 것은 아니거든. 그러면 풍요로운 삶이란 뭐냐하면, 나의 존재가치를 느끼고, 나의 자아실현을 하도록 만들어주는 거예요. 자꾸 재미를 붙이도록…. 그런데, 우리 운동권은 너무 따지는 게 문제야. 누가 적자냐, 학생운동을 했느냐 안했느냐, 이런 걸 따지니까 자꾸 고립되는 거지.

-여수의 언론환경은 어떤가?

△방송사와 광주에 본사를 둔 신문사 기자들, 그리고 서울지역 신문들, 지역주간지와 정보지 등 시청 브리핑룸에 등록된 기자만 91명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들으니 100명이 넘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진정으로 우리 시민을 대변해줄 언론사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운동도 이리 저리 갈라지고 분화되어 있다. 현 정권 출범 이후 민주주의도 후퇴하고 있다. 그래서 그야말로 여수시민을 대변해줄 수 있는 참된 시민언론이 필요한 상황이다.

-'넷통'을 구상하게 된 동기나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엔 단순히 시민단체의 활동이나 주장, 정책을 알릴 수 있는 인터넷신문을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해 촛불집회 때 1인미디어의 활약을 보면서, 또 노무현 대통령이 웹2.0의 정신을 살린 '사람사는 세상'을 운영해나가는 걸 보면서 이젠 단순한 인터넷신문이 아니라 디지털세상에서 시민의 자유로운 정보유통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확장됐다. 뉴스만 전하는 '언론'이 아니라, '언로'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언론이 아닌, 언로라는 건 뭘 뜻하나?

△옳고 그름은 다수가 판단하겠지만, 처음부터 말할 기회가 없다는 게 문제다. 말을 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보니 남을 의식하거나, 내 성향이 드러남으로써 사업에 지장을 받을만한 말을 아예 하지 않는다. 일단은 '뉴스'나 '기사'가 아니라 내 주변의 시시콜콜한 정보나 이야기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미용이나 음식이나 건축 등 주변 이야기를 누구나 자유롭게 올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가령 우리집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분양하고 싶다 뭐 이런 이야기까지 말이다. 그런 언로가 먼저 트이면 지역의 쟁점이나 나아가 한국사회의 이슈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처럼 여수 시민이 자기 블로그를 통해 온갖 정보를 올릴 수 있도록 하고, '넷통'이라는 '메타블로그'를 통해 그런 시민들의 이야기를 한 곳에 모아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넷통은 메타블로그 형태로 창간되는 건가?

△그렇다. 그래서 경남도민일보의 메타블로그 '블로거's경남'도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그럼 언제쯤 선을 보이게 되나?

△아직은 여수 시민들 중 블로그를 통해 자기 의사표현을 하는 사람이 적다. 그래서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블로그 강의를 계속 열고 있는데, 갈수록 참석자가 늘고 있다. 이와 병행해 메타블로그 '넷통'은 2~3개월 안에 오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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