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 발목, 목숨 걸고서라도 저지""권경석 의원 과거사법 개정안 발의, 위원회 무력화 목적" 반발

25일 오후 창원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 사무실 맞은편 길에서 전국의 유족회 간부 70여 명이 '권경석 의원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김주완 기자
전국의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회 간부 70여 명이 25일 오후 창원에 왔다. 권경석 국회의원과 한나라당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권경석 의원은 지난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포함한 17개 과거사 관련 위원회 법률에 대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내용은 독립적인 위원회의 결정을 국무총리가 재심 또는 소송을 통해 뒤집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권 의원측은 "과거의 결정을 무조건 뒤집자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위법·부당한 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재심 또는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들은 권경석 의원의 이 법안이 한나라당의 과거사 관련 위원회 통폐합 및 무력화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권 의원의 법안 제안사유에도 그런 의도가 드러나 있다는 입장이다. 권 의원은 법률 개정안 제안사유를 "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적대하는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관련자에 대해 민주화운동 인사로 인정하는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한 결정을 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유족들은 '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적대하는 단체'라는 개념이 권력자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과거 국군과 경찰이 보도연맹을 학살하거나, 군경의 빨치산토벌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할 때도 그런 논리로 합리화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군경은 무고한 주민들을 집단살해한 후 "빨치산 협력자들(또는 좌익동조자)을 처단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날 유족들과 함께 버스를 전세내 창원에 온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학살규명범국민위) 김증식 사무국장은 "민간인학살의 본질은 비록 좌익이라 하더라도 법치국가에서 아무런 재판절차도 없이 비무장 민간인을 불법 살해했다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독립적인 위원회의 결정을 행정부가 재심하겠다는 것은 또다시 색깔론을 불러일으켜 진상규명 작업에 발목을 잡겠다는 의도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오후 3시 창원시 명곡동 한나라당경남도당과 맞은 편에 있는 권경석 의원 사무실 사이 인도에서 열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발목잡는 권경석의원 규탄·항의집회'는 학살규명범국민위와 한국전쟁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그리고 이 집회를 지원하기 위해 민생민주창원회의가 공동주최했다.

집회에는 경기도 고양금정굴유족회와 인천 월미도, 여수·순천·군산·고흥·해남·임실·괴산·담양·영암·봉화·영천·공주·강화·대전·영덕·경산·청주·단양·고흥·구례·완도·고창 등 전국 곳곳의 유족회 간부들이 참석했으며, 경남지역에서도 마산·진주·김해·산청 및 부경유족회 간부들이 함께 했다.

규탄사를 한 이태준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장은 "현 정권 출범 후 위원회를 통폐합해야 한다느니, 결정사항을 뒤집으려는 등 마치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무산시킨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한나라당의 이런 시도에 대해 우리 유족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를 마친 유족들은 권경석 의원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려 했으나, 사무실에 아무도 출근하지 않아 문이 잠겨있는 바람에 포기한 채 다시 버스를 타고 각 지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저녁까지 창원에 남아 역시 같은 단체들이 공동주최한 '한나라당의 진실규명 발목잡기시도와 지역사회의 역할' 토론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편 경찰은 이들 유족이 한나라당경남도당 진입을 시도할 것에 대비, 100여 명의 전·의경을 당사 건물 안팎에 배치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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