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에 외면당한 '인문학'…'직업과 진로' 등 실용과목은 '수강전쟁'

'청년 취업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당장 취업과 거리가 먼 역사와 철학 같은 인문·교양강좌는 줄줄이 폐강되는 반면 '창업 길라잡이'와 같은 취업·실용 강좌에 대학생이 대거 몰리고 있다.

25일 경상대, 창원대, 경남대 등 도내 주요 대학 1학기 수강 신청을 확인한 결과, 취업난의 영향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경상대는 교양강좌 '한국의 사회운동', '북한의 정치와 사회'가 각각 200명, 600명(3개 반 분반) 정원으로 개설했으나, 20~30명의 학생만 신청해 인원 미달로 강의가 열리지 못했다. '인도철학과 불교', '예술과 생활' 강좌는 수강 신청생이 각각 7명과 6명으로, 역시 정원을 채우지 못해 폐강됐다. 그러나 '직업과 진로개발 1·2'는 740명 정원이 개설되자마자 채워져 극심한 대조를 보였다.

이정홍 경상대 학사관리과 시간표 작성실 담당은 "'한국의 사회운동' 강좌는 2~3년 전만 하더라도 200명 이상 듣던 강좌였는데,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반면 취업과 관련한 수업은 정원을 늘리기가 무섭게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한다"고 전했다.

창원대도 취업시장 동향과 취업 정보 활용 방법 등을 알려주는 취업이나 실용 강좌에 '수강신청 전쟁'이라 불릴 만큼 수강 신청이 폭주했다. 이처럼 취업 관련 실용학문으로 학생이 몰리자 학교 쪽도 정원을 늘려 이들의 요구에 '화답'했다. 김경철 창원대 종합인력개발원 취업교육팀장은 "2004년 처음으로 '취업과 진로' 강좌를 열었는데, 그 당시 정원은 150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원을 250명으로 늘렸다"고 설명했다.

경남대도 예외가 아니다. 취업준비로 인해 4학년 전공선택 과목의 폐강이 가장 많았다.

심광호 경남대 교무처 학사관리실 수업교직팀 담당은 "폐강된 24강좌 가운데 4학년이 듣는 '전공선택 과목' 폐강이 14강좌로 가장 많았다"며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이 취업준비 등으로 부담되는 수업보다는 상대적으로 듣기 편한 저학년 수업으로 몰린 것 같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대학생의 '실용 바람'에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장상환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원장(경제학과 교수)은 "당장 쓸모 있는 것만 보고 선택하면 인간관계의 질이 낮아지고 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도 떨어지게 된다"면서 "대학이란 인류가 축적한 경험을 모아내는 곳이다. 우리가 1930년대 세계 경제공황을 알면 지금의 경제위기도 충분히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다.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면서 인문학적 소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외국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법학대학원(로 스쿨), 경영대학원(비즈니스 스쿨), 의과대학(메디컬 스쿨) 등을 공부한다"며 "우리나라 대학도 인문사회과학을 최대한 복수전공하게 하거나 필수 교육과정으로 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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