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명의로 변호사 게시물에 욕설 혐의…2000만원 손배소에 부담 느낀 듯

“내 잘못입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요.”

20일 오전 11시 창원시내 한 병원 장례식장. 40대 중반의 어머니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 ㄱ(16)군은 이날 오전 1시 40분께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스스로 몸을 던진 것이다.

비극은 2007년 3월 서울에 있는 한 경찰서에서 ㄱ군의 아버지에게 전화가 걸려오면서 시작됐다. 경찰관은 아버지가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고소됐다며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한 온라인 게임 전문 포털 게시판에 악플(비난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였다.

아버지는 황당했다. 자신은 온라인 게임을 하지도 않고 그런 게시판을 알지도 못해서다. 그래서 아버지는 서울까지 가지 못하니 창원에서 조사를 받겠다고 했다. 자신을 고소한 이는 30대 후반의 변호사였다. 이 변호사는 당시 어떤 소송을 준비하며 소송 당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게임 포털 게시판에 냈다. 그때 몇몇 누리꾼이 ‘돈벌레’니 ‘변호사 브로커’니 하면서 악플을 달았다. 이 변호사는 이 중 세 명을 지목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ㄱ군의 아버지가 포함됐다.

2007년 7월 다른 두 명은 벌금형을 받았지만, 아버지는 무혐의로 처리됐다. 누군가 아버지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글을 남긴 것으로 판명돼서다. 그렇게 일이 끝난 줄 알았다. 그러다 같은 해 12월 아버지 앞으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출석요구서가 왔다. 변호사가 이번에는 아버지를 상대로 2000만 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낸 것이다. 변호사는 아버지 명의를 도용한 이가 ㄱ군임을 밝혀냈다.

지난해 6월 법원은 아버지에게 아들을 잘 가르치라는 뜻으로 배상액 100만 원을 변호사에게 주라고 선고했다. 이때까지도 ㄱ군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변호사는 ㄱ군이 아직 반성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10월에 항소를 제기했다.

어머니는 변호사에게 전화했다. 죄송하다, 아들과 함께 사과할 테니 사람 살리는 셈치고 항소를 취하해달라고 부탁했다. 변호사는 반성문을 요구했고 어머니와 ㄱ군은 각각 반성문을 써서 우편으로 부쳤다.

올해 1월 어머니와 ㄱ군은 서울에서 열린 항소심 조정기일에 참석했다. 이때도 ㄱ군은 울면서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객관적 증거는 ㄱ군을 가리키고 있었다. 판사는 ㄱ군에게 종이를 주면서 사과문을 쓰라고 했다. ㄱ군의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걸 안 변호사도 이쯤에서 끝낼 생각을 했다. 꼭 돈을 받겠다는 게 아니라 교훈을 주려는 게 목적이어서다. 그래서 이틀 뒤 항소를 취하했다.

하지만 ㄱ군 가족은 마지막까지도 취하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지난 19일 저녁 ㄱ군은 혼자 성당에 다녀왔다. 어머니는 평소 성당에 가자면 마지못해 따라나서던 아이가 스스로 성당에 가는 모습을 대견해 했다. ㄱ군은 성당에서 신부에게 고해성사했다고 한다.

다음날 새벽 어머니는 아들이 어디론가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ㄱ군은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ㄱ군의 부모는 객관적인 증거가 분명히 있다 해도 여전히 아들이 한 일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고 있다.

한때 건축기술자로 일하던 아버지는 금융위기 때 후배들을 위해 스스로 회사를 나왔다. 하지만, 당뇨병을 얻으면서 이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학비는 물론 급식비도 제대로 주지 못할 때가 잦았다.

ㄱ군의 부모 통장에는 현재 40만~50만 원 정도가 남았단다. 그래서 아들의 장례도 치르지 못할 형편이다. 자식의 죽음 앞에 더욱 미안해 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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