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 양극화를 말한다]빈곤
15년 청춘 바쳐 악착같이 일해도 헤어나기 어려운 가난의 수렁

끼니해결을 위해 무료급식소를 찾은 사람들. 길어지는 경기침체 만큼이나 길어지는 짙은 그림자가 안타깝다.
"정말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가난한 놈은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하나 봅니다."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최근 마산역 주변을 전전하며 노숙생활을 하는 허성원(33) 씨의 하소연이다.

오전 11시, 허 씨는 오늘도 끼니를 해결하려고 마산시 양덕동의 한 무료급식소를 찾았다. 이것이 최근 세상이 허 씨에게 허락한 하루 중 유일한 식사란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식판에 담긴 밥은 보통사람의 2배 분량이며, 허 씨는 이렇게 먹어두지 않으며 하루를 견디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충북 음성이 고향이지만 너무나 어려웠던 집안 형편 탓에 열일곱 되던 해 일자리를 찾아 마산으로 왔다. 당시 어린 그의 뇌리에는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내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5억 원을 벌겠다'는 결심뿐이었단다.

그렇게 시작한 어린 허 씨의 타향살이는 순탄치 않았지만, 오로지 그 일념 하나로 버티며 돈이 되는 일이라면 나쁜 짓 빼고는 다했다.

주유소 주유원,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용직 건설현장 인부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고, 잠자는 시간은 하루 4∼5시간이 고작인 고단한 삶을 계속했다.

그는 성인이 되면서 한때, 공장에 취직해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많지 않은 월급 탓에 룸살롱, 노래주점 등의 웨이터로 전업을 하게 된다.

당시, 웨이터로 열심히 일할 땐 한 달 최고 350만 원을 넘게 벌기도 했고, 그중 300만 원은 꼬박꼬박 저금을 했다. 동시에, 없는 사람에겐 돈을 안 쓰는 것이 돈 버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10만 원을 넘지 않는 조그마한 쪽방에서 살았다. 또 새 옷, 새 신발 등은 사치품이라 여길 정도로 자린고비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악착같이 7년여를 버티고 그의 나이 스물넷 되던 해 수중에는 1억 4000만 원의 돈이 모였다.

이에 허씨는 5억을 벌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면 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결국, 은행 대출을 더 받아 자신이 아는 유일한 분야인 노래주점을 개업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지 않은 수입에 은행이자, 관리비, 인건비 등의 부담으로 결국 2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했다. 그 뒤 그는 두 번 더 노래주점과 노래방 사업을 벌였지만, 죽음과 같은 고배만 연거푸 마셔야만 했다.

이렇게 연이은 실패를 겪는 동안 그의 나이는 어느새 서른이 넘어버렸다.

지난 10월 노래방 문을 닫고서, 심한 스트레스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술로 나날을 보내면서 현재 허 씨의 건강상태는 몹시 나빠졌단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마흔 살이 훨씬 넘어 보였다. 푸석푸석해진 피부에 불어터진 입술은 노숙생활의 고단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했다.

허 씨는 "노래방을 정리하고 나니 남는 돈은 고작 18만 원뿐이었다"며 "먹고살려고 건설현장에 나갔지만 건강 탓에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월 이후 마산 역 주변의 공중화장실, 문을 닫은 상가 복도 등에서 밤을 나고 있다.

허 씨는 "지긋지긋한 가난과 싸웠지만 그 벽을 넘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며 "정말 내 자식에게는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 우리 사회에서 가난은 타고나는 숙명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예전엔 5억이면 부유층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5억은 지금의 5억이 아니다"며 "이젠 포기했다. 너무 억울하고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모두 제 잘못이고 팔자라 생각"한다고 한숨을 내쉰다.

지금 허 씨의 하루는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나날이지만 그래도 아직 가슴속엔 작은 희망이 남아 있단다.

허 씨는 "이런 처지가 되니 너무 외롭다, 돈보다 주변의 사람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우선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얻고 싶고, 가난하지만 서로 위로하며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나고 싶다"고 말하며 작은 미소를 보인다.

◇짙어가는 빈곤의 그늘 = IMF 환란 이후 우리 사회의 중산층이 줄어들면서 빈부 양극화는 점점 심화해 왔다.

한국개발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IMF 이전 68.5%에 이르던 중산층이 2006년에는 58.5%로 떨어졌고 동시에 빈곤층은 11.3%에서 17.9%로 증가했다.

또,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5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빈곤층은 전체인구의 15%에 해당하는 716만 명으로 집계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만 놓고 보면 전국적으로 2005년 142만 5684명에서 2007년에는 146만 3140명으로 늘었다. 경남의 수급자도 2005년 10만 1646명에서 2007년 10만 3012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준빈곤층으로 일컬어지는 차상위 계층의 비중도 늘어가고 있다. 이들은 최저생계비 120% 수준의 소득을 얻고 있지만 언제든지 절대빈곤층으로 추락할 수 있는 우려가 있기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경제전문가들은 세계적인 경제불황이 오랫동안 지속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중산층의 몰락과 빈곤층의 증가가 가속화할 위기에 놓여있다.

양극화는 빈곤층에겐 그 자체가 고통이지만, 계층 간의 불신으로 확산하면서 사회불안과 나아가 국가적인 위기로 이어지는 것을 남미 국가들의 사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저소득층을 위한 배려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효율성과 경쟁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경제성장 우선주의에 점차 공공성 원칙이 훼손되고 사회 양극화를 가져올 것으로 사회복지 관련 학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또 부자를 위한 정책을 쏟아내면서 야당과 진보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서민들에 대해서는 인색하고, 단편적인 선심성 복지정책만 내놓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사전에 빈곤층으로 몰락하지 않도록 또는 빈곤을 벗어날 기회를 제공하는 장기적인 복지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빈곤층의 생활실태 = 대부분 차상위계층, 빈곤위험계층, 생활위험계층이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의 정책적 사각지대에 놓임으로써 생활의 불안정과 의료, 주거, 교육 등의 기본적 안전망에서 제외된다.

200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빈곤층의 공적연금과 고용보험은 약 10명 중 8명이, 산재보험은 10명 중 6명이 미가입된 상태다. 특히 차상위계층은 법적인 빈곤정책의 사각지대에서 그 어떤 계층보다도 사회적 위험에 대비한 사회보험의 필요성이 절박함에도 10명 중 7명은 미가입 돼 있는 현실이다.

빈곤인구의 상당수는 낮은 소득으로 말미암아 공과금이나 임대료를 내지 못해 단전단수와 퇴거위험에 놓여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4년 말 기초생활보장대상 총 가구 중 영구임대아파트 거주가구는 11%에 이르고, 이 중 임대료 체납가구는 22.6%에 해당한다. 또, 관리비를 체납하고 있는 영구 임대아파트 가구비율은 지난 2001년 23%에서 2004년 31%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을 보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10명 중 7.8명은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나머지 경제활동인구도 임시직이나 일용직이 대부분이다. 이에 낮은 소득과 실직을 반복하는 불안한 고용환경에서 한번 '빈곤의 수렁'에 빠지게 되면 다시 헤어나기가 쉽지 않아, 가난이 대물림되면서 양극화는 악순환한다.

이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절반 이상이 5년 이상 보장받은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도내 수급자 가구 6만 3452가구 중 보장기간이 6∼8년 미만이 44%, 5년 이상이 50%(3만 2239가구)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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