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성 상실한 사회 서열의식 파괴해야 회복

지난해 <교수신문>은 2009년 희망의 사자성어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선정했다. 이 말은 <논어> 자로 편에 나오는 말로 '군자는 화합하고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고 화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현실에 적절한 말이다. 윗사람이 조금만 무슨 말을 하면 사회가 한 방향으로 쏠리는 상황, 모두가 사분오열 분열되어 화합하지 못하는 현실을 관통하는 말이 뇌동(雷同)이다. 뇌동이란 우레가 울리면 만물이 이에 응하여 울리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옳고 그른지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주체성 없이 경솔하게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 사회는 화이부동하지 못하고 주견 없이 남을 따라가기를 좋아하고 남이 따라오지 않으면 비난하는 사회가 되었다. 내 주견과 식견 없이 남의 주견을 따라가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구조 속에서 다양성과 개성은 무시되는 '막장' 사회가 되고 있다. 이러한 막장 사회가 된 이유는 강준만 교수의 지적처럼 개별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초 1극 쏠림 체제" 때문이기도 하다. 잘 되는 곳을 밀어주자는 인식과 될 곳을 찍자는 인식이 자리 잡는 한 부화뇌동은 끊임없이 준동한다.

부화뇌동의 사회는 닫힌 사회이다. 하나의 목적과 목표 아래 경쟁시켜 줄 세우고 등수를 매기고 서열화하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다 보니 사회는 화합하지 못하고 분열하고 있다. 남북한의 분열을 조장하고, 종교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계층 간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국민끼리 화합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자발적 복종'을 은밀하게 강조하는 '신독재'가 우리 사회를 억누르고 있다.

이 정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발적 복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시민단체, 종교인 할 것 없이 생존을 위협하면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된다는 것을 터득한 모양이다. 즉, 경제적 지원을 중단하거나 지원을 중단하고자 감사를 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느라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복종한다는 것을 잘 아는 것이다. 또한, 딴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확실하게 하는 방법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한국방송 KBS의 화면조작 논란이 문제가 되고 있다. 보신각 타종행사를 생중계하면서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엉뚱한 화면으로 조작한 것이다.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면 이런 식의 조작은 비일비재해질 것이다. 지난날 독재 권력 아래 자발적 복종을 했던 방송이나 신문을 무수히 보지 않았는가.

   
 
 
자발적 복종을 통한 획일화된 사회 속에서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다양성과 개성을 억누르고 자유를 억누르는 사회에서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부화뇌동만 강요하는 사회이다. 부화뇌동만 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은 이성을 상실하기 쉽다.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만들려면 비판적 이성을 회복하고 저항해야 한다. 또한, 우리 인식 밑바탕에 깔린 서열의식을 버려야 한다. 주견 없이 이러 저리 쏠리는 피라미 떼가 아니라 모든 고기들과 화합하면서도 혼자서 유유자적하는 잉어처럼 살아가야 한다. 진정한 화이부동을 할 수 있는 사회구조나 제도를 만들 통 큰 정치를 펼칠 대인 군자가 많아지길 바란다. 또한, 멋진 군자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국민도 많아지길 바란다.

/백승호(유레카 국어논술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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