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오도엽 지음 l 후마니타스전태일 기념사업회서 만난 이소선 여사, 500일간 구술창원서 활동했던 오도엽씨, 노동운동가 성장이력 기록

   
 
 
'이소선, 여든의 기억'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을 쓴 이는 오도엽이다. 그는 이곳 경남에서 10년 이상 노동을 했고,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2005년 이 지역을 떴다. 그리고는 3년 만에 서울에서 책을 냈다며 연락을 해왔다. 그 해, 우연히 찾아간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이소선 여사를 만났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여사의 구술 기록작업을 시작했단다.

오도엽은 책머리에서 그 시작을 이렇게 밝힌다.

'별생각 없이 인사만 드리고 나서려는데 이소선이 문 앞까지 따라 나왔다. "다시 뵙겠습니다." "다시는 뭘. 이제 일이 년이나 살겠어. 이게 마지막이지." 이소선의 이 말에 나는 그만 창신동에 주저앉았다. … 지난 500일 동안 이소선이 지어준 밥을 먹으면서 그 몸을 고스란히 보았다. … 그동안 나는 인간의 역사란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투쟁이라는 생각으로 구술작업에 매달려 왔다.'

책은 여사의 결혼과 전태일 열사의 분신까지를 다룬 1부 '가난한 날의 질긴 인연'과 이후 1년간 청계피복노조의 결성 과정을 다룬 2부 '불탄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들', 1978년 여사의 첫 투옥까지인 3부 '폭압의 밤들'로 이어진다. 다음은 80년대 여사와 사회상황을 다룬 4부 '길을 나선 사람들'과 90년대와 2008년 지금 이 시각까지인 5부 '아름다운만남', 결혼 전 이소선 여사의 유년시절을 다룬 6부 '이소선 어릴 적에' 등으로 전개된다.

시대순의 이야기 전개 중간중간 끼어드는 '사랑방 야담'은 지금 이 시각과 몇십년 떨어진 간격으로 반감되는 현실감을 되찾게 한다. 그 야담은 대개 여사와 오도엽이 나눈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옮기는 식이다.

1960년대 이소선 여사의 가족들이 서울 쌍문동 208번지에 모여 살 때부터 장남 전태일의 노동운동이 시작된다. '태일이는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당시 태일이는 평화시장에서 함께 일하는 어린 시다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무척 안타까워하며 재단사 친구들과 함께 평화시장의 근로환경을 바꿔 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장사를 마지고 들어온 이소선을 붙들고 태일이 말했다. "어머니도 근로기준법을 배우세요." "뭐, 법? 내가 법을 배워 뭐 하냐?" "어머니, 뭐든지 배우면 다 쓸 데가 있어요." 이소선은 태일의 청에 못 이겨 노동법 공부를 시작했다.'

이소선 여사는 1970년 11월 13일, 어느 병원에서 '허연 가제를 칭칭 감아, 입하고 콧구멍하고만 내놓은' 아들 태일을 임종한다.

'"왜 엄마는 내가 말하는데 대답하지 않아요? 우리 엄만데 왜 대답하지 않아요? 내가 죽으면, 헛되게 죽으면 안 되잖아요. … 잘 안 들려요. 크게, 크게!" 그라다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라져 있다가 태일이가 눈을 뜨며 마지막으로 뭐하 한지 아냐? "엄마, 배가 고프다…." 그게 태일이 마지막 말이었어. 그 말이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던지 나도 정신을 잃었어.'

   
 
 
당시 여사의 나이 마흔 두살. 이후 이 책은 세 차례의 투옥을 거쳐 청계피복노조를, 또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를 운영하면서 노동운동가로 성장하는 여사의 이력을 마치 이웃집 아줌마 이야기 옮기듯 기록한다. 오도엽의 이 기록이 단순한 전달이 아님은 500일 동안 여사의 이야기를 듣고, 집필에 들어가기 전에 겪었던 그의 진통에서 드러난다.

'500일 동안 이소선과 나눈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고민하느라 200일이 지났다. 그 200일 동안은 이소선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여사와 떨어져) 사랑방 근처에 따로 작업실을 얻었다. 이소선이 해준 밥도 일부러 먹지 않으려 했다. … 2008년 9월 말께였다. 술을 진탕 먹고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잠자리를 펴고 누워있던 이소선의 옆에 쓰러져 눈이 팅팅 붓고 목이 쉬도록 울었다. 이소선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다음 날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도엽은 덧붙였다. "이 책 인세는 모두 엄마(이소선)한테 드리기로 했어요!" 도서출판 후마니타스에서 만들었고, 책값은 1만 2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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