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적 기반 마련해 남용되지 않게 해야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28일 식물인간 상태인 어머니로부터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며 김 모(여·75) 씨의 자녀가 낸 소송에서 "김 씨로부터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환자의 진정한 치료중단 의사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환자도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담당재판부는 "김 씨는 다시 의식을 회복하고 인공호흡기 등의 도움 없이 생존 가능한 상태가 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며 인공호흡기 부착의 치료행위는 상태 회복과 개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치료로서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이 판결이 적극적인 안락사와 모든 유형의 치료중단에 관한 법적 허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환자의 회복가능성이 없으며 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고 환자 본인의 치료중단 의사가 명시적으로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김 씨가 치료중단 의사를 명시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김 씨가 현재 자신의 상태와 치료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받았더라면 김 씨 자신이 치료중단 의사를 진정으로 표시했을 것으로 추정돼 이러한 사정을 판결에 반영했다.

아직 최종적인 확정판결은 아니지만 이번 판결로 존엄사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어 국민의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가 어렵거나 노인들에 대한 부양책임이 희박해지는 세태에서 쉽게 치료를 포기하는 도덕적인 해이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이에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국민의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존엄사란 엄격한 요건에서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에게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생명연장의 조치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말하는 것이고, 안락사는 환자의 고통 완화를 위해 적극적ㆍ직접적으로 생명단축의 시술을 하는 적극적 안락사를 말한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단지 존엄사에 대해서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스위스와 같이 존엄사 관련 법률을 도입하여 인정하는 나라도 있고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률은 없지만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한 영국 등이 있다.

   
 
 
이번 존엄사 인정 판결은 여러 병원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당장 종교계에선 '천부의 생명권'을 주장하며 존엄사 인정에 대해 반발할 것이다. 지난 2004년에는 회복 불능의 환자를 가족 요구에 따라 퇴원시켰던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기소되었던 일도 있었다.

우리 사회도 이번 판결을 계기로 존엄사에 대한 법적인 세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법조계와 의학계, 그리고 종교계 등의 진지한 논의 과정을 거쳐 제도적 기반을 신속하게 마련해야 한다. 환자에게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하더라도 존엄사가 남용되지 않도록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내야 한다.

/이철호(유레카 언어논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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