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과 일본을 통해 본 미디어 환경의 변화

일본 최대의 통신사업자인 NTT도코모의 인포메이션 카운터. 도코모는 신문사로부터 뉴스를 받아 휴대전화로 서비스하고 있다.

미디어 환경변화를 논하는 글들은 대개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진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는 내용인데다, 용어들도 생경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하지만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쉽게 말하면 전화와 TV, 인터넷 등 그동안 따로 놀던 미디어 도구들이 하나로 결합된다는 것이다. 먼 장래에는 신문까지 여기에 결합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집전화와 이동전화, 초고속 인터넷망을 팔던 통신사업자들이 IPTV(Internet Protocol Television)라는 걸 통해 TV 방송에도 진출하고 있다. 또 기존 지상파 방송의 난시청 문제를 이용해 가입자를 끌어모은 유선방송사업자들도 디지털케이블TV라는 걸 도입해 방송과 인터넷의 결합을 추진 중이다. 이들 IPTV와 디지털TV에는 신문도 PDF방식으로 제공되고 있다.

홍콩 최대의 케이블 업체인 i-Cable 본사 내부 모습.

◇미디어환경 어떻게 바뀔까? = 사실 IPTV와 디지털TV의 차이를 일일이 설명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그래도 굳이 설명하자면 기존 통신사업자가 방송까지 함께 하는 게 IPTV고, 원래 방송사업자가 통신까지 함께 하는 게 디지털TV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결국은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텔레비전을 통해 인터넷의 콘텐츠를 이용하고, 휴대전화에서도 TV와 인터넷을 쉽게 쓰는 시대가 열린다. 가정에서 부담하는 이용료도 케이블수신료와 전화요금, 초고속인터넷 요금을 각각 따로 내는 방식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한 묶음으로 된다. 그러면 따로 내는 것보다 결국은 싸질 수밖에 없다.

지상파 재전송에 사활건 한국

신문도 따로 구독료를 내고 아침마다 문앞에 배달을 받는 게 아니라, 종이값을 뺀 저렴한 가격으로 TV화면에서 볼 수 있다. 아직 프린트 서비스까지는 않고 있지만, 향후엔 필요한 기사만 따로 프린트하여 이용하게 될 수도 있다.

IPTV는 기존 지상파 방송이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편성해 송출하고, 시청자는 그 시간에 맞춰 보던 방식에서 벗어나 시청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맘대로 골라볼 수 있는 양방향 서비스다. 또한 축구선수가 골인시키는 장면을 시청자가 여러 각도에서 선택해 볼 수도 있고, 방안에 앉은 채 TV에서 방송 중인 퀴즈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굳이 비디오방에 가서 빌려오지 않아도 원하는 영화를 골라 볼 수 있고, 원하는 상품을 골라 쇼핑을 할 수도 있다. 또 주말에 가고 싶은 관광지를 선택하면 그곳의 영상과 함께 교통·음식·숙박정보를 보고 예약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TV를 통해 은행업무와 민원서류 발급도 가능해진다.

이런 상황이 일반화하면 기존 미디어시장은 어떻게 될까.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방송과 지역민방, 그리고 신문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 게 뻔하다. 지금까지 신문과 방송이라는 독립된 영역에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던 이들 올드미디어는 IPTV와 디지털TV를 통해 자신의 생산품을 팔아먹는 '콘텐츠 제공업자'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홍콩 최대의 통신사업자로 '나우TV'라는 IPTV서비스를 하고 있는 PCCW의 홍보포스터. TV와 인터넷 등을 함께 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신문사는 신문만 팔고, 방송사는 방송만 팔고, 인터넷업체는 인터넷서비스만 팔고, 통신회사는 전화만 팔던 시대가 사라지고, 모든 영역이 하나의 플랫폼으로 융합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TV·인터넷·휴대전화 융합…새 미디어 플랫폼 등장

이처럼 눈 앞에 보이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 때문에 조선·중앙·동아일보 같은 족벌·재벌신문들이 신문·방송 겸영을 관철하려 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단시일 안에 IPTV와 디지털TV가 모든 영역을 융합해 안착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엔 여러가지 난관도 있다. IPTV만 살아남을지, 디지털TV만 살아남을지, 둘 다 시장을 양분해 살아남을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또한 지금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개념의 전혀 다른 플랫폼이나 미디어 도구가 출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학의 발전이나 대중의 소비행태 변화는 힘이나 정책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고, 그 변화에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 최강국이라지만 콘텐츠는 최빈국 =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이러한 변화는 전 세계적이다. 아니, 인터넷 최강국이라는 한국이 IPTV 분야에서는 오히려 홍콩이나 중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보다 늦었다.

한국언론재단 뉴스저작권사업단이 홍콩의 IPTV 사업을 보러 간 것은 신문사도 이러한 미디어환경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였다. 뉴스저작권사업단 운영위원 9명은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홍콩 최대의 통신사업자이자 IPTV업체인 PCCW와 케이블방송사업체인 i-Cable을 둘러봤다.

PCCW는 2003년부터 IPTV인 '나우TV'를 서비스하기 시작해 첫해 3/4분기 2만 가구에서 2004년 4/4분기에는 36만 가구로 가입자가 급증했다. 2008년 현재는 82만 가구로 i-Cable을 제쳤다.

시장점유율에서 나우TV는 36.9%, i-Cable은 30.1%라고 한다. 두 가구 중에 한 가구는 IPTV를 본다고 말할 정도다.

홍콩 IPTV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콘텐츠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할리우드와 중국 엔터테인먼트 등이며 140여 개의 다양한 채널이 있는데, 시청자가 원하면 8개만 골라 볼 수 있다.

시청 채널에 따라 1500~1만5000원의 요금을 내면 인터넷도 함께 쓸 수 있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서도 다른 미디어 플랫폼을 압도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SK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의 브로드앤TV(옛 하나TV), KT의 메가TV, LG텔레콤의 myLGTV 등 3개의 IPTV가 있지만, 이들 모두 KBS·MBC 등 지상파 재전송에 사활을 걸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홍콩 나우TV는 처음부터 지상파 재전송보다 차별화된 채널 확보에 우선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홍콩사람들의 성향을 감안,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독점 중계해 출범 초기부터 소비자들의 관심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국내 지역신문 공동 TF 구성 절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늦게 시작한만큼 홍콩보다 더 차별화된 콘텐츠를 확보하는 게 필요하지만, 아직 이에 대해서는 통신사업자나 기존 신문·방송사업자 등 콘텐츠 생산업자도 고민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앞서 언급한 관광지의 영상정보라든지 교통·음식·숙박정보의 경우 아직 제대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 곳도 없다.

일본의 경우 현 단위의 각 지역일간지들이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각 동네별 식당과 음식정보, 관광정보, 온천정보, 낚시정보, 이벤트(축제) 정보 등을 지도와 함께 상세하게 제공하고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도 한국처럼 관광정보 등을 자체 사이트에서 제공하고 있으나 각 지역신문이 구축해놓은 정보와는 비교가 안된다는 설명이었다.

홍콩 최대의 케이블 업체인 i-Cable 본사 외부 전경.

지자체가 돈을 많이 들인다고 해서 신문사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홍콩 IPTV, 프리미어리그 독점 중계 등 차별화 전략

이에 따라 우리나라 지역신문사들이 IPTV 시대에 대비한 콘텐츠를 고민하기 위한 공동 TF나 포럼 등을 구성해 준비해나갈 필요도 있다. 전국의 지역신문이 공동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면 상용화 단계에 들어 콘텐츠 부족에 헤매고 있는 IPTV사업자들과 충분한 교섭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의 경우 아직 우리나라 신문사의 수익모델로 정착하지 못한 모바일 뉴스서비스를 통한 매출이 많다. 한국의 경우 휴대전화를 통해 인터넷 폰페이지를 방문하여 콘텐츠를 이용하면 이중으로 돈을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즉 데이터통화료(접속료)와 정보이용료(콘텐츠사용료)가 따로 부과됨으로써 소비자는 배보다 배꼽이 큰 엄청난 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자칫 모바일 인터넷을 잘못 쓰면 수십만~수백만 원을 덮어쓸 수도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고, 이 때문에 컬러링이나 다운받는 것 외에는 모바일 인터넷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것이 한국의 모바일 콘텐츠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일본은 데이터통화료 없이 정보이용료만 월 100~300엔 정도 내면 마음껏 모바일로 뉴스를 볼 수 있다. 물론 볼 수 있는 기사 건수는 종이신문만큼 많지는 않지만 대중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뉴스콘텐츠뿐 아니라 일본 사람들은 만화도 휴대전화으로 보고, 책도 휴대전화로 읽는다. 99년 시작된 모바일 폰페이지는 현재 8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아사히신문도 2007년 모바일을 통한 뉴스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모바일 콘텐츠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통신사업자들의 데이터통화료 횡포에 대한 신문사들의 공동대응도 필요하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