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위 "개인 정보 도용하려는 혐의 농후"

보상금 업무 대행을 해준다며 제시한 문서들.(맨 왼쪽) '일본 강제노역자 보상금 지급 안내' 글,(가운데) '2500만 원만 수령하겠다는 각서', 맨 오른쪽은 <주간한국>의 '현대사 희생자 위해 소송에 나선 변호사 마이클 최' 관련 인터뷰 기사.
가족 중 일본 강제 노역자가 있으면 보상금 2500만 원을 준다며 접근해오는 개인과 단체의 불법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5일 ㄱ(66)씨는 지인으로부터 마산역 인근 사무실에 제적·호적·주민등록 등본을 제출하면 25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인은 가족 중 일본군에 복무했거나 강제노역을 당한 만 79~107세에 해당하는 자가 대상으로 이미 사망했을 때도 직계존속이 보상금 신청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ㄱ씨는 지인으로부터 '일본 강제노역자 보상금 지급 안내'라는 A4 용지 한 장을 건네받았다. 여기에는 한국계 미국인 국제변호사인 마이클 최가 일본 정부와 13년 동안 34차례나 재판해 승소했다는 내용과 준비 서류만 제출하면 무료로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또 보상금 총액이 8조 7000억 원인데 현재 일본 법원에 공탁돼 있어서 이를 찾아갈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보상금 청구를 위해 제적등본,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 등본, 인감 증명, 주민등록증, 통장, 사실관계 진술서, 군사우편 저금 확인 청구서, 위임장 상속인 확인 청구용, 수령액 각서 등 무려 10가지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6일 문제의 사무실에는 ㄱ씨처럼 지인으로부터 소식을 접한 이들이 두툼한 관련 서류를 챙겨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보상금을 받을지 안 받을지는 모르지만 무료니까 한 번 제출해 본다"라고 말했다.

서류를 접수하는 관계자는 "아는 사람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해서 신청하고 있다"며 "오늘까지 서류를 낸 사람이 10여 명으로 많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접수 대행자는 마이클 최 관련 기사도 보여줬다. 기사는 '고엽제 피해소송' 관련 내용으로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인쇄 상태가 조잡했다.

이 같은 내용을 토대로 기자가 사실 관계를 확인한 결과, 실제 보상금 지급 관계자는 "개인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승소해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현재 일제 강점기 때 강제 동원된 이들에 대한 조사는 정부에서 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의결됐고, 지난 2007년 8월 특별법 시행령이 공포돼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진상조사와 보상금과 관련한 일을 담당하고 있다.

위원회는 오는 6월 '태평양 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 위원회'를 만들어 보상금 지급에 관한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위원회 기획홍보팀 이재철 팀장은 "현재 개인이 일본 정부와 재판해서 승소한 사례가 없다. 지난 주말부터 부산·경남 지역에서 '마이클 최' 승소로 말미암은 보상금 지급을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며 "개인 정보를 도용하려는 사기혐의가 짙다. 보상금 2500만 원 지급은 가능성이 없는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위원회 민원실 관계자도 "6일 오후 3시까지 '마이클 최' 보상을 묻는 30통가량의 전화를 받았다"고 전했다. 위원회는 보상금 지급과 관련해 개인이나 단체를 통한 어떠한 유·무료의 대행 업무를 하지 않고 있다며, 각 시·군 차원에서 소송대행을 빙자한 개인이나 단체의 불법행위 사실을 주민에게 알려 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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