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 이후 이어지는 언론 보도를 보자니 수년 전 문화재를 맡았을 때가 떠오른다. 당시만 해도 문화재는 발굴기사 중심이었다. 사상 최대, 사상 최고라는 수식어만 들어가면 어느 정도 문화재기사로서의 요건은 갖춰진 걸로 취급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떠들썩하게 보도되어도 잠깐 여론의 조명을 받을 뿐 그 뒤엔 찬밥신세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보존 관리되는지 제대로 알려지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문화재의 맥이 살아있는 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숨은 일꾼들 덕분일 것이다.

개발 논리로 문화 뒷전 밀려

여하튼 문화재를 맡은 이상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문가를 찾고 물었다. 경남의 문화재를 소개하는 '문화재 둘레'라는 코너도 만들었다. 목록부터 확보하고 매주 현장을 찾았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도 그때까지 내 고장에 어떤 문화재가 있는지 몰랐다. 문화재취재 덕에 난 큰 공부를 한 셈이기는 했으나, 둘러본 현장은 암울했다. 지자체가 관리하는 건물 한쪽에 놓인 문화재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거나, 아예 자물쇠로 채워져 접근하기 어렵거나, '물먹는 하마'에게 제습기능을 맡긴 옹색한 경우도 있었다.

야외소재 문화재는 사정이 더 나빴다. 야산중턱 부근에 자리한 무슨 무슨 성터는 달랑 팻말 하나만 위태롭게 서 있을 뿐 어디서부터 어디가 성터라는 것인지 몰라 헤매야 했다. 더 안타까운 건 내용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일반 시민들이 좀 더 친숙하게 문화재에 접근하도록 그 내용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힘들었다. 특히 빼곡히 한문이 새겨진 비문을 보며 '내용을 풀이해놓으면 한층 문화재의 가치가 빛날 텐데'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어도 성에 차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간간이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곳곳에서 훼손이 됐고, 불에 탔다. 숭례문 화재가 나자 우리 지역의 기자들도 경남의 문화재를 찾아다녔다. 간접적으로 보아도 수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문화재 홀대는 여전했다.

애통함과 어이없음은 너무도 많은 사람이 지적했기에 중언부언할 필요 없겠다. 다만,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의문스럽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숭례문을 붙들고 잘못했노라, 무심했노라며 반성하고 있지만, 우리는 왜 그렇게 문화재에 무심했을까. 지금도 개발의 현장에선 기왓장 하나라도 지키려는 문화재 지킴이와 그깟 기왓장 뭐가 중요하냐고 하는 지역민 간의 마찰이 적지 않다. 왜 그럴까. 우리 민족이 타민족보다 못해서일까?

아닐 것이다. 정답은 될 수 없겠지만 난 우리의 역사적인 배경 영향이 크다고 본다. 오랜 일제치하, 해방, 미군정, 군사독재, 그리고 민주화…. 격동기를 보내었어도 민족을 배반한 세력이 역사의 죗값을 받았다면, 그리하여 역사바로세우기가 되었다면 우리의 것이 그토록 찬밥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를 중심에 놓고, 차근차근 발전을 해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권력을 틀어쥔 친일잔재와 이어진 독재권력은 우리의 문화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당대의 현실적 사정이 있었지만 이들은 이를 개발논리로 십분 활용했고, 문화는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위정자의 책임이 크다는 뜻이다.

의식개혁운동 있어야 바뀐다

문화를 들먹이는 때도 있기는 하다. 대외적으로 민족적 자긍심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때, 홍보책자라도 만들 때 우리에겐 이런 고유의 문화재가 있노라 했다. 하지만, 보존과 관리는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문제가 터지면 대책수립을 약속하지만 그때뿐이다. 보는 눈이 있으면 챙기지만, 없으면 손 놓다시피 한다.

남이 보면 하고 안 보면 안 하는 것, 아주 심각한 우리의 표리부동함이 되어버렸다. 일례로 각종 재난방지훈련은 얼마나 잘되는가. 그런데 실전에는 꼭 약하지 않던가. 보여줄땐 잘하고, 남이 안 보는 데서는 안 하기 때문이다. 방재청의 잘못만은 아니다. 근본을 뜯어고치려는 노력이 부족해서다.

그래서 궁금하다. 지금의 냄비 여론이 식은 뒤에도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제도적인 보완이 되고, 국가적인 예산이 수립되고, 시스템이 마련될 것인가. 낙관하기 어렵다. 지금의 정치상황에서는 더하다. 국보화재 앞에 국민성금부터 거론하는 대통령의 문화마인드와 나중에 어찌 될 값에 밀어붙이고 보는 불도저 정신, 그리고 도덕 불감증에 걸린 이명박 표 인수위의 행보를 보면서 낙관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밑으로부터의 의식개혁운동이 지속적이고도 오랜 세월 이어져도 가능할까 말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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