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도 노동자도 아닌" 중년 남성의 삶

   
 
 
   
 
 
이규석(50) 시인이 첫 시집 <하루살이의 노래>(갈무리)를 펴냈다기에, 그를 만나고자 일하는 곳을 찾아가려 했더니 "오지 마라"고 한다. 대신 "대포나 한 잔 하자"고 했다.

이규석 시인은 "봉암공단에서 팔룡단지로 팔룡단지에서 봉암공단으로" 몇 번째인지도 모를 이사를 하곤 하는 "사장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이사를 하며' 중)" 그런 사람이다.

"기계 한 대 달랑" 가지고 '성형 연삭(빠르게 회전하는 숫돌에 쇠를 깎는 작업, 치수가 정밀하고 작업한 면이 매끄럽고 고움)'을 하고 있다고 했다.

"별로 좋지도 않은 시로 시집을 냈는데, 시인입네 하고 공장에서 사진 찍고 하면 주위 동료가 마뜩찮게 보지 않겠어요?"

굳이 '등단'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의 시력은 어언 20년에 이른다. 마산공고 졸업 후 '마산 수출자유지역'에서 일할 때 '고주박'이라는 동인활동을 하면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를 쓰지 않으면 병이 생긴다는 것('시인의 말' 중)"을 알아가고 있다고 한다. 공장 일을 잠시 접고 부인과 함께 족발 집을 할 땐, '문학동인 모집 공고'를 가게 한편에 써 붙여 놓기도 했고,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고 정규화 시인을 만났고, '객토 문학' 동인 활동을 하면서 시를 써오고 있다.

하지만, 사는 일은 힘들기만 하다. "오늘도 빈 기계 앞을 바장이며 일거리 걱정('늦가을에' 중)"을 하며 "일당도 못 채우고 퇴근하면서 작은 공장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마산 봉암 공단길('공단 길을 걸으며' 중)"을 걷는 일이 잦다. 무엇보다 곡진하게 드러나는 "사장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중년 남성의 고백록은 쉽게 읽혀서 좋다.

하지만, 꼭 '쉬운 것'이 미덕은 될 수 없는 법. 고 정규화 시인은 생전에 쓴 발문에서 이규석 시인의 시에서 나타나는 "문맥상의 모순과 오류"를 지적했다. 잘 짜인 시적 형상화로 나아갈 듯 말 듯한 작품을 두고 아슬아슬함을 느꼈을 법도 하다.

충분히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는 '먹고살기 힘든 현실'이 시적 언어로 표현되는 대신 '추상화된 구호'의 힘을 빌리는 듯한 모습도 '문맥상의 오류'를 부추기고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청년 시인의 패기로 뭉친 모습이 희망차다. 건강한 꿈틀거림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규석 시인의 고향은 함안 군북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다. 그는 지금도 "내 가슴속 욕심만 수북한 잡풀들/같이 벌초하고 오는 길('벌초' 중)"이면 아버지를 생각하곤 한다.

그가 처음 시를 쓰게 된 계기는 '아버지'였다. 김현승 시인의 '슬픈 아버지'라는 시를 보고 어떤 섬광 같은 게 가슴을 훑고 지나가더라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아버지가 마시는 술잔에는 눈물이 반이다."

이제 그가 '아버지'가 되어 '눈물이 반인 술잔'을 들이켜고 있다. 첫 시집을 펴낸 후의 만감, 정규화 시인에 대한 생각, 가족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아버지…. 어느새 술잔에도 눈에도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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