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니를 닮은 섬 가을 정취에 젖고~ 감성돔 눈빛에 젖고~

통영 곤리도 전경
곤리도는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나루터에서 1.4Km 떨어진 섬으로 육지에서 매우 가깝다. 한려수도 관광지인 통영시의 미륵산 정상에서 보면 마치 고니(백조)가 육지로 날아드는 형상이라고 해 '고니섬'이라고 불리던 것이 변해 곤리도(昆里島)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면적은 1.2㎢. 인구는 120여 가구 400여 명이다. 편의상 섬의 동쪽을 동편, 가운데를 중편, 서쪽을 서편이라고 부른다. 곤리도는 지난 1985년에는 인구가 830명이었으나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해 IMF 이후에는 300명대로 축소되었다. 산업은 주로 가두리 양식이다.

임진왜란 뒤 김 씨가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와 한동안 김 씨 단일 촌락을 형성해 왔으며, 형제 사돈 등 집안들이 많아 마을 인심이 좋다. 행정구역상 처음에는 경남 거제 현에 속했으나, 1940년대엔 통영군 산양면에 편입됐다.

한려수도 관광도시 통영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섬, 육지에서 도선을 타면 15분 만에 도착하는 '고니를 닮은 섬' 곤리도, '공기 좋고, 인심 좋고, 교통 좋다'고 소문난 곤리 마을에서 언덕을 타고 올라오면, 동네 꼭대기에 예쁜 학교가 보인다.

"우와~ 감성돔이다! 한 수 했네. 축하! 축하!"

일행들이 출조하고 있다.
직장 동료 3명이 몇 날 며칠을 벼린 끝에 떠나는 바다낚시라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환호성을 질러 본다. 우리 일행은 창원에서 저녁 7시에 통영 삼덕항에서 지척 거리에 자리 잡은 곤리도로 향했다. 곤리도는 통영시 산양면에 있는 조그만 섬이지만 아직도 전교생 몇 명이 초등학교를 지키는 영화에 나옴 직한 그런 섬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100여 가구가 사는 고즈넉한 섬마을이지만 수많은 낚시꾼이 철마다 대물을 꿈꾸던 곳이리라. 섬 전체가 산지를 이루기 때문에 경작지가 적어 지금은 섬주민 대부분이 가두리 양식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옛날만 해도 봄과 여름에는 북상하는 제주 난류를 따라 많은 난류성 어족이 모여들어 어획기에는 성황을 이루었던 곳이다.

최근에 곤리도 인근 섬에 밤낚시를 갔다가 조황이 신통치 않아 다른 곳으로 포인트를 잡을까도 생각했는데, 일행 중에 곤리도에 양식업을 하는 지인이 추석 연휴 끝에 감성돔이 새로 만든 방파제에 많이 붙었다고 알려 주었기 때문에 다른 곳은 살필 겨를도 없었다.

창원에서 밤길을 조금 달리다 보니 고성쯤에서 비가 한두 방울 내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길을 나선 낚시꾼에게 차를 돌리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다행히 조금 지나니 하늘은 맑게 개었다.

◇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밤낚시를 즐기며

삼덕항에 도착, 밑밥을 준비하고 요즘 감성돔에 제격이라는 홈무시 등을 사서 배를 타고 곤리도에 들어갔다. 삼덕항에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생각한 곳보다 방파제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아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마을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곳곳에 가로등이 훤하게 밝혀져 있어 라이트가 없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방파제에 도착하니 먼저 온 몇 팀이 벌써 밤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발 디딜 틈 없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고 했는데 물때가 좋지 않아서인지 오히려 한산한 밤 풍경이다. 급한 마음에 채비부터 먼저 마치고 만반의 준비를 끝낸 후에야 준비해온 야식을 꺼냈다.

막 낚싯대를 드리우니 먼저 온 낚시꾼 중 한 조사께서 감성돔 한 수를 끌어올렸다.

"와~ 봐라! 옆에 한 수 했다. 3자는 되겠다." 부러움과 함께 우리 일행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밤 10시를 지나 11시를 달리고 있을 시각이다. 얼마 있지 않으면 찌에서 신호가 오리라는 기대를 잔뜩 하던 중, 마치 낯이 익은 듯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하늘에는 대보름이 한참 지났지만 아직도 달빛이 고왔다. 출발할 때만 해도 비도 오고 바람까지 불었는데 낚싯대를 드리우니 검은 그림자를 깊게 드리운 통영 밤바다가 평온하게 펼쳐져 있다.

이따금 한두 척 배가 지나가면서 잠자는 바다가 몸을 뒤척이는 것 같다. 처음 온 섬인데 지나친 기대감인지 달빛에 취해서인지 마치 언젠가 와 본 듯한 데자뷰 현상이 일어난다. 물때가 가장 좋지 않은 조금이지만 수십 년간 곤리도에서 살고 있는 주민이 직접 포인트를 정해준 데다 얼마 전에 새로 쌓은 돌 냄새를 맡고 감성돔이 모여든다고 일러준 터라 마냥 마음이 앞선다.

◇ 초보 낚시꾼에게 어신이

"어! 어! 어!" 연거푸 탄성만 지른다. 이번이 두 번째 출조인 초보 조사(?)에게 어신이 왔다. 밤 11시를 지나는 시각이다. 1호대 낚싯대가 긴 포물선을 그리며 휘는 걸 보니 감성돔이다. "조심! 조심! 서둘지 말고……." 우리는 한껏 고무된 목소리로 응원했다. 감성돔이 처음이라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올라온 놈은 30cm가 조금 되지 않는 중치급 감성돔이다.

   
 
 
"왔다! 감씨다! 한 수 했다! 우짜노." 초자 낚시꾼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다. 한두 마디 축하를 해주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먼 허공을 가르며 찌를 날린다. 근데 이게 웬일인지 금방이라도 야광찌에서 화끈한 입질이 올 것 같은데……. 영 소식이 없다가 잔입질에 볼락이 한두 수 올라오고 만다. 밑밥을 뿌릴 때마다 전갱이 떼가 마치 양식장 물고기처럼 서로 먹이를 먹으려고 물장구를 치며 비웃기라도 하듯 나부댔다.

◇ 새벽녘에 다시 한번 힘찬 챔질을….

자정이 지나자 부푼 기대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없이 시들어진다. 배도 고파 온다.

"어이~ 소주 한잔하고 쉬었다 하세." 일행 중 한 명이 외치자 3명이 석축 한가운데 마주 앉아 한 잔씩 간단하게 소주를 들이켰다. 한밤중을 지나 새벽이 다가올 때까지 전갱이가 극성을 부려 별 조과가 없자, 다른 낚시꾼들도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거나 아예 낚싯대를 걷어놓고 새벽에 물이 다시 들길 기다린다.

우리 중 한 사람은 잠시 눈을 붙인다며 아예 자리 펴고 누웠다. 새벽 4시 30분이 지났을까 싶었는데, 바닷가는 날이 새는지 환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잠잠하던 물길도 방파제를 지나 흐르자 다시 힘찬 챔질을 쉼 없이 시작했다.

일행 중에 한 사람이 온 힘을 다해 공을 들이니 찌에 어신이 왔다. "으라차차 와~ 크다. 묵직하다." 힘찬 목소리, 휘어지는 낚싯대, 감성돔이다 싶었는지 함성이 절로 나오는 것 같다. 잠시 뒤 "팽!"하는 소리가 허공을 가르면서 낚시 목줄이 감성돔의 힘과 무게를 못 이기고 끊어지고 말았다. 아마도 바닷가 여 같은 곳에 쓸려 줄이 약해져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쉬운 한판이다. 근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 후로 감성돔 입질이 안 들어오고 쏨뱅이, 게 같은 것만 잡혀 올려 오는 게 아닌가.

◇ 부지런한 어촌마을 뒤로 한 채 아쉬운 발길

통영 곤리도 방파제.
아침이 밝아오자 물이 완전히 빠지고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두리 양식장에 아침먹이를 주러 가는 배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자 하나 둘 낚싯대를 접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서둘러 낚싯대를 접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가을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돌아오는 길은 오전 9시 삼덕항을 출발하는 정기 도선을 타고 왔다. 사리 때면 바닷물에 잠겼다가 물이 빠지면 얼굴을 내미는 이름 모를 여 위에 조금이라 안심하고 4~5명이 대물의 꿈을 이루고자 열심히 챔질을 하고 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길게 엿가락처럼 늘어져 몸을 기대자 졸음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하지만, 감성돔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마음은 아직도 그 섬에 머물러 있고 몸만 길을 재촉한다.

/정국조(경남도청 낚시동우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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