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이 불끈나니 여름이 선선하오

닭은 우리나라 역사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삼국유사>에서 김알지나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온 설화와 함께 가야시대 유물중 달걀껍데기가 담긴 토기가 발견된 것 등으로 보아 우리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닭을 사육하고 닭요리를 해 먹었다고 봐야 한다.

특히 우리의 옛 조상들은 닭은 여명(黎明)을 알리는 보신용(報晨用)으로도 요긴하게 여겼다.

고려의 닭이 다른 어느 나라 닭보다 시간을 정확히 잘 맞춘다 하여 고려때 왕궁에서는 자시(子時 : 밤 12시)에 우는 닭 '일명계(一鳴鷄)', 축시(丑時 : 밤 2시)에 우는 닭 '이명계(二鳴鷄)', 인시(寅時 : 새벽 4시)에 우는 닭 '삼명계(三鳴鷄)'를 함께 길렀다.

닭 볏과 날개 정력의 보고(寶庫)

중국의 문헌인 <본초강목>에 보면 "백제 닭은 무척 아름답고 평택 닭은 식용으로 으뜸이다" 하였고, 특히 "장미계(長尾鷄 : 꼬리가 긴 닭)가 닭중에 가장 맛이 좋다"고 하여 중국 사람들이 앞 다투어 백제의 장미계를 구입해 갔다 한다. 조선 중종때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오면 정력에 좋은 '계관육(鷄冠肉)'을 대접했는데, 이 계관육을 먹게 되는 사신(使臣)은 아무리 언짢은 일이 있어도 입이 금방 함박만해 진다고 했다.

한편 우리는 닭의 날개를 먹으면 "바람이 난다"는 속설을 알면서도 우리네 장모님들은 백년손님인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아 푹 고아 먹였다.

그 이유는 닭은 정력의 보고(寶庫)인데, 그 보고(寶庫)가 바로 닭의 볏과 날개 부위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의 호색가들은 계관육을 천하일미(天下一味)로 알고 즐겼다고 한다.

특히 백제 의자왕은 백제의 닭과 금산의 인삼을 넣어 푹 곤 삼계탕(蔘鷄湯)을 먹고 왕성해진 정력으로 삼천궁녀를 거느렸다 하니(?) 백제의 삼계탕이야말로 정력 강장음식이 아닌가 한다.

인삼 대중화 되면서 '계삼탕'이 '삼계탕'으로

북쪽 사람들은 복더위에 '닭곰'을 즐겨 먹는다. 남한과는 달리 인삼 대신 어떤 체질의 사람도 관계없이 먹을 수 있는 황기를 재료로 많이 이용한다.

그러나 인삼의 고장 개성에서는 우리의 삼계탕과 같은 '인삼닭곰'이 인기 음식이다.

영계백숙은 문헌상으로는 궁중 요리서인 <원재을묘정리의궤>(1795년)에 수라상에 오르는 죽(粥)의 일종으로 비로소 나타난다.

삼계탕은 조선 시대 요리서에는 보이지 않는다. 삼계탕은 영계백숙과 재료나 요리법이 별 차이가 없는 점으로 미루어 개화기 이후 영계백숙에서 갈라져 나온 음식인 것 같다.

삼계탕은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이 부재료이므로 '계삼탕(鷄蔘湯)'이라고 해야 우리 어법에 맞는 말이다. 그래서 국어사전에서는 '계삼탕'을 표준말로 올려놓고 있다.

조풍연 선생은 이에 대해 "계삼탕이 삼계탕으로 된 것은 인삼이 대중화되고 외국인들이 인삼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자 삼을 위로 놓아 다시 붙인 것이라 생각한다"고 하였다.

1989년에 발간된 <서울잡학사전>에는 "계삼탕은 식욕을 돋우고 보양을 하기 위해 암탉에다 인삼을 넣고 흠씬 고아 먹는 것이다. 배를 가르고 삼을 넣고는 꾸져 나오지 못하게 실로 묶는다.

여름철 개장국 먹는 축보다 더 여유있는 집안의 시식이다.

계삼탕이 삼계탕이 된 것은 인삼이 대중화되고 외국인들이 인삼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자 삼을 위로 놓아 명칭을 다시 붙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여 명칭이 바뀐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뱃속 기운 차가워지는 것 막아줘

<동의보감>에 닭은 토(土)에 속하지만 화(火)의 성질을 보해준다고 되어 있다. 즉 여름철에 차가운 음료나 과일들을 먹어서 뱃속의 기운이 차가워지는 것을 방지해 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삼계탕에 함께 들어가는 인삼은 체내 효소를 활성화시켜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피로회복을 앞당긴다.

여기에 들어가는 마늘은 강장제 구실을 하고 밤과 대추는 위장을 보호하면서 빈혈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또 율무는 당뇨를 예방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기능을 하며, 은행은 폐장을 보하는 효과가 있다.

삼계탕을 끓일 때는 들어가는 재료도 중요하지만 돌솥이나 뚝배기를 직접 불에 올려놓고 끓여서 먹는 동안에도 잘 식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무더운 공기로 인해 불쾌지수가 최고로 올라가는 한여름에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처럼 뜨거운 삼계탕을 한 그릇 먹으면 찬 음식을 먹는 것보다 오히려 개운한 느낌이 들고 영양면에서도 만족할 수 있다.

함께 들어가는 인삼· 대추· 황기 등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한약재이므로, 삼계탕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의 개념이 짙게 배어 있는 음식의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요리서인 <규합총서>에 닭 가슴에 인삼 대신 도라지 등을 넣고 푹 곤 '칠향계'라는 조리법이 나와 있다.

칠향계 조리법을 보면 살찐 암탉의 배 안에다 도라지, 생강, 파, 천초, 간장, 식초, 기름 등 칠미를 섞어 채우고 항아리에 담아 밀봉하여 중탕한 찜이다. 재료로 묵은 암탉, 삶은 도라지 1뿌리, 생강 4∼5쪽, 파 1자밤, 천초(초피) 1자밤, 지령(간장) 1종주(종지), 기름 1종주, 초 1/2종주를 준비하여 살찌고 묵은 암탉을 깨끗이 튀하여 아래로 구멍을 내고, 내장을 빼어 속을 씻는다.

삶은 도라지 1뿌리, 생강 4∼5쪽, 파 1자밤, 천초 1자밤, 지령 1종주, 기름 1종주, 초 1/2종주 이 일곱 가지를 닭 속에 넣고 남은 양념을 한데 섞어 오지 항아리에 넣는다. 유지로 부리를 동여 막고 사기 접시로 덮고 솥 가운데 중탕 <자증(煮蒸)>하여 쓴다.

닭 속에 뭔가를 집어넣어 국을 만드는 칠향계가 삼계탕과 유사하다.

보신에 좋다고 알려진 '약병아리' 영계백숙

조상들은 비단 복날뿐만 아니라 여름철이 되면 하루쯤 날을 잡아 가까운 사람들끼리 얼마씩 추렴하여 산수가 좋은 곳을 찾아가 차가운 계곡물에 탁족(濯足)을 한 다음 시원한 나무 밑에 둘러앉아 닭백숙이나 닭죽을 삶아 먹고 술도 마시며 하루를 즐겼다.

잠시 더위도 잊고 피로도 풀며 영양 보충과 보신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럴 때 잡는 닭은 병아리와 큰 닭의 중간 정도로 자란 영계를 최고로 친다. '영계'는 '연계(병아리 티가 있는 닭)'가 고기가 연한 닭이라는 '연계(軟鷄)'로 바뀌었다가, 아직 알을 낳지 않은 어린(young) 닭이라는 의미의 '영계'로 변화된 말이다. 영계는 흔히 '약병아리'라고 하듯, 보신에 좋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영계백숙'은 영계를 잡아 잔털을 말끔히 뽑아내고 깨끗이 씻어서 항문 쪽을 조금만 자른 다음 내장을 다 들어내고 배 안을 깨끗이 씻어낸다.

그리고는 미리 물에 불려놓은 찹쌀과 밤· 마늘· 대추 등을 배 안에 넣고 실로 잘 동여 맨 다음 국물이 뽀얀 유백색이 되도록 통째로 맹물에 백숙(白熟) 상태로 바특하게 고아낸다.

뚝배기에 닭 한마리가 쏙 들어가는 '삼계탕'은 여기에 특별히 수삼(水蔘)을 더 쓰고 국물을 넉넉히 부어 끓인 것으로, 일반 닭 대신 오골계를 쓰기도 한다.

처음에는 센 불에서 시작하여 끓기 시작하면 불을 약하게 해서 뽀얀 국물이 우러나도록 한 시간 가량 푹 곤다. 젓가락으로 찔러 보아 뱃속에 든 찹쌀이 푹 퍼지고 닭고기도 익었으면 다 끓여진 상태다. 먹기 전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입맛에 따라 잘게 썬 파를 넣는다.

옛 어른들은 이른 봄에 부화된 햇병아리를 5∼6개월 정도 키워서 영계백숙을 해 먹었다. 요즘은 품종개량과 사육기술의 발달로 사육기간이 3분의1 정도로 줄어서 35∼38일 가량 키우면 1500g 내외의 큰 닭이 된다.

삼계탕용으로 기르는 닭은 '삼계'라고 하는데, 27일 가량 키워도 무게가 450∼600g에 불과하고 육질이 쫄깃쫄깃하다. 산란계 웅추(雄雛)나 육용 종계를 키워서 삼계탕용으로 출하하기도 하지만 약간 육질이 퍽퍽한 감이 있다.

젓가락으로도 쉽게 떨어져 나오는 닭 살점을 소금에 살짝 찍어 입안에 넣으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이 인삼 등의 향과 어우러져 입안에 척척 감긴다. 여기에 인삼주 한 잔 곁들이면 어느새 더위는 저만치 물러가고 신선이 따로 없다는 만족감에 젖는다.

지난 2005년 공연관람차 방한해 필자(왼쪽)와 한국의 맛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국 장예모 감독(오른쪽). 장예모 감독은 한국음식 중 삼계탕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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