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기사 써주면 500만원 준다" 명백한 독자 기만행위

지난 10일이었다. 기자는 서울에 있는 한국언론재단 뉴스저작권사업단 운영위원회에 참석 중이었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정봉화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혁신도시와 2단계 균형발전정책에 대한 기획취재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이 왔는데, 취재비도 지원이 된단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논조나 방향은 신문사가 자율적으로 한다'는 전제도 있었다.

   
 
 
알다시피 혁신도시는 참여정부의 1단계 균형발전정책이다. 그렇잖아도 지역언론으로서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지방분권 정책인 1·2단계 균형발전 전략에 대한 심층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오던 터여서 편집회의를 거쳐 '하겠노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실수였다. 처음부터 지원해주겠다는 돈의 성격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그냥 '취재비 지원'이겠거니 하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알고 우린 기획취재 준비에 들어갔다. 진영원 기자를 담당으로 선임하고 자료조사부터 시작했다. 최소한 5회 이상 시리즈물로 연재할 계획이었다.

16일 오전 진영원 기자가 균형발전위에 관련자료 협조와 취재비 정산 방식 등에 대한 협의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우리가 준비한 기획시리즈에 대한 설명을 하자 마자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획시리즈는 필요없고, 17일 부산에서 열리는 2단계 균형발전정책 설명회에 맞춰 전면을 할애해 특집홍보기사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당황한 진 기자는 데스크에게 통화 내용을 보고하면서 "뭔가 이상하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딴판이다"고 말했다. "지원하겠다는 돈의 성격도 취재비 지원이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확인을 위해 데스크가 다시 균형발전위 홍보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랬다. 그 돈은 취재비 지원이 아니었다.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홍보기사를 써주면 그냥 500만원 범위 안에서 지급하겠다는 거였다.

더구나 제목과 사진, 그리고 관련 상자기사 내용까지 자신들과 협의해 '좋다'고 하면 그대로 보도해달라는 거였다. 그 돈이 균형발전위의 예산인지에 대해서도 "그것까진 알 필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심한 모멸감과 함께 화가 났다. 대체 언론을 어떻게 보고….

전화를 끊고 편집국장과 회의를 열었다. 뒤늦게라도 그들의 의도를 알았으니 그냥 그들의 제안을 거절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정부기관이 이런 식으로 언론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야 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보도하지 않는 것 자체가 언론의 사회적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결국 18일자 1면에 보도됐고, 예상대로 파장도 작지 않다.

보도가 나간 뒤 균형발전위원회 홍보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말문을 연 그는 "우린 처음부터 그런 방식으로 특집기사를 써달라고 제안했는데, 도민일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애초부터 도민일보가 오해해놓고 뒤늦게 이런 식으로 기사를 써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변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당초 균형발전위의 제안을 확실히 따져보지 않고 우리 식으로 해석해버린 것은 경솔한 일이었다. 그 점은 인정했다.

문제는 여전히 균형발전위원회가 이런 방식의 홍보(?)에 대해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언론홍보 기법상 일정한 돈을 협찬하고 홍보기사를 부탁하는 일은 일반화된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대기업에서도 이런 홍보기법을 흔히 쓰고 있다고 예를 들었다.

기자가 과문해서인지, 지방이라 정보에 어두워서인지는 몰라도 이런 식으로 '돈을 받고 지면과 기사를 파는 일이 정당하다'는 논리는 접해보지 못했다. 물론 과거 70·80년대, 그리고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역일간지에 '이달의 시·군정'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기사의 형식으로 행정기관의 시책을 홍보하는 코너였는데, 사실은 독자들 몰래 해당 행정기관으로부터 홍보비를 매월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인데다 타파해야 할 지역언론의 잘못된 관행으로 지목돼 일찌감치 사라졌다.

이번 균형발전위의 희한한 홍보기법(?)이 일개 홍보팀장 선에서 기획되고 집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게 균형발전위 전체의 생각이라면 참여정부가 정말 큰일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