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시, 고증 마무리… 596억 투입 관아 30여동 세우기로

2009년께 복원될 통제영 조감도

조선시대 경상·전라·충청 3도 수군의 본영이 있었던 통영에 '삼도수군통제영'이 2009년께 복원될 것으로 보인다. 통영시는 5일 통제영지 발굴조사 성과보고회를 열어 고증에 근거한 복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통제영이란 = 통제영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줄임말로 요즘으로 따지면 해군본부다. 통제영은 선조 26년인 1593년에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직제가 만들어져 경상·전라·충청 3도 수군을 지휘·총괄했던 곳이다. 통제사는 전라좌수사가 겸직했다.

조선시대 첫 통제영은 초대 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이 만든 한산진영이 최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서 '한산섬 달 밝은 밤에 긴 칼 옆에 차고∼'라는 유명한 시를 지었다.

하지만 통제영지였던 한산진영은 정유재란으로 폐허가 됐고 이후 전란 중 전세에 따라 여러 곳을 전전했다.

그러다 통제영이 통영에 다시 들어선 것은 1605년이다. 선조 37년인 1604년 제6대 통제사였던 이경준이 통제영을 현 통영시로 정하고 터를 닦기 시작해 2년 만에 만들었다. 통영은 우리나라 최초 군사계획도시였던 셈이다.

그 후 통제영은 1895년 고종 32년에 각 도의 병영 및 수영이 폐영될 때까지 292년 동안 존재했으나 일제강점기때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따라 세병관만 남겨지고 크고 작은 관아 100여동이 모두 헐렸다. 통제영 터에는 법원·검찰청·학교·세무서 등이 지어졌다.

현재 통영시 문화동·태평동에 걸쳐 있는 통제영지에는 당시 건물로 세병관이 유일하게 남아있고. 그 후 1987년에 복원된 수항루 1동과 두룡포 기사비(경남유형문화재 112호)와 비각이 남아있다.

현재 발굴조사 중인 통제영 터 현장

△통제영 발굴·복원 의미 = 통제영지 발굴·복원 의미는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강제로 없앤 통제영을 고증에 근거해 다시 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최초의 군사계획도시이자 삼도수군통제영의 도시였던 통영의 정체성을 되찾는 사업으로 풀이된다.

삼도수군통제영 발굴과 복원을 위한 작업이 시작된 것은 1996년이다. 통영시는 통제영지를 사적으로 지정 받기 위해 기본지표조사 등을 벌였고 이를 바탕으로 1998년 사적 제402호로 지정 받았다.

본격적인 발굴·복원사업은 1998년으로 당시 정부가 추진한 남해안관광벨트사업 중 유적복원사업에 통제영지 발굴·복원사업이 포함되면서 본격화됐다. 시는 총사업비 596억원(국비 359억·지방비 237억)으로 오는 2009년까지 12공방·백화당·운주당 등 주요 관아 30여동을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통제영 고증 복원을 위한 발굴작업은 지난 2005년 12월 시작됐다. 경남문화재연구원은 같은해 12월 사전조사를 벌이고 2006년 2월초부터 실질적인 발굴에 들어가 1년 3개월여만인 오는 12일 마무리할 계획이다.

발굴을 담당했던 경남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300여년 전이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이어서 토층 등을 연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발굴현장을 바탕으로 통제영이 폐영되기 전 12공방이 활발했던 19세기 당시 만들어졌던 통제영 고지도와 함안총쇄록 등을 조합한다면 고증 복원이 충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순신과 통제영 도시 만들기 = 통영시는 통제영 고증 복원을 위한 발굴작업이 마무리되자 이를 바탕으로 올해 중 복원사업을 위한 기본조사 및 실시설계용역에 들어가는 등 본격적인 복원사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시는 통제영 복원사업과는 별개로 통제영에서 강구안 문화마당으로 이어지는 부지를 사들여 '통제영 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시는 이를 위해 440억원을 들여 2011년까지 △12공방 체험장 △전통음식점 △남문(청남루) △수항루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시는 사업비 확보를 위해 올해 상반기 중앙정부와 경남도 중기재정계획에 반영되도록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지방재정 투융자심사를 신청해 국·도비 확보에 주력한 후 이르면 내년부터 공사에 들어간다는 구상이다.

시는 이미 2007년도 공유재산 관리계획 제1차 변경계획을 지난달 시의회에 제출해 통제영 복원사업과 연관한 통제영 거리 조성사업 부지 확보를 위해 146억여원을 들여 토지 99필지, 건물 7동 등을 사들인다는 계획을 승인 받았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이 충무공을 기리는 통영 한산면의 제승당과 함께 명실공히 이순신 장군의 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통제영지 발굴조사 보고회…통제영 도시 만들기 충분하다

   
 
  지난 5일 열렸던 통제영지 발굴조사 성과보고회 모습.  
 
통영시와 재단법인 경남문화재연구원은 5일 오후 사적 제402호인 통제영지 발굴현장에서 조사성과 보고회를 열고 지난 2005년 12월부터 진행된 1년 3개월여에 걸친 발굴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통제영지 발굴을 책임졌던 경남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옛 통제영의 규모를 알 수 있는 유구(옛 토목건축 구조와 양식 자취)와 각종 조선시대 유물이 발굴됐다"며 "이번 발굴 결과를 바탕으로 19세기에 씌진 총쇄록과 통제영 고지도를 조합한다면 고증복원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통제영지 발굴조사는 통영시가 고증 복원사업을 위해 옛 통영세무서와 옛 통영초등학교 부지 1만1973㎡(3622평)를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옛 통제영 12공방과 백화당 등 내부 관아시설이 있던 자리다.

경남문화재연구원은 A(통영세무서 부지), B(통영초등교 부지) 2구간으로 나눠 진행된 발굴조사결과, A부지에서는 건물 축대와 건물지·담장지 등 8기의 유구가, B부지는 12공방으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보도, 담장, 계단 등 26기의 유구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밖에 자기, 막새 파편, 제기, 옹기류, 쇠화살촉, 조선시대 동전, 동물뼈 등이 나왔고 특히 백자로 만들어진 특이한 묘비석도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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