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내부거래 조사결과를 둘러싸고 나라가 시끄럽다.

국민들은 의외로 차분하고 조용한데, 언론사의 일을 가지고 언론과 정당에서만 핏대를 올리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의 영해 침범이니, 가뭄이니, 수해니, 부정부패방지법이니 하는 것들은 언론의 관심밖으로 밀려난지 오래다. 짧은 기사는 말할 것도 없고 해설기사와 칼럼, 사설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빅3’신문으로 불리는 ‘조선’.‘중앙’.‘동아’의 지면엔 연일 ‘언론탄압’에 대한 성토와 격분의 목소리가 드높아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유신이나 광주민주화항쟁, 언론통폐합, IMF로 인한 구조조정과 대량실직 등 아무래도 언론사 세무조사보다는 훨씬 역사적인 사건들 앞에서 나는 우리 언론이 이처럼 사명감에 찬 비분강개의 펜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자기들 밥그릇에 관계된 일이라 다급하려니 동정하면서도 공기로서의, 그리고 신문사의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것인 지면을 오로지 신문사의 이해와 편의에 따라 마구잡이로 잘라 써대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벌어들인 돈인들 제 마음대로 주무르지 않았으랴 싶다. 역시 우리 언론의 주인은 사주이지, 독자나 국민이 아니었다. 이런 소유구조에서 ‘편집권의 독립’과 ‘정론직필’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음을 다시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언론계 한편에서는 이번 세무조사와 부당내부거래 조사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독자들에게 사죄하며 이를 잘못된 관행에 대한 자성과 투명경영의 계기로 삼겠다는, 자기혁신의 의지와 자세를 보이고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것이 독자인 국민을 의식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정작 세간의 곱지 않은 눈길이 쏠리고 있는 조.중.동의 지면에는 단 한 줄도 ‘탈세’대한 사죄의 메시지가 없다. 성실한 해명이나 변명조차 없다. 오로지 세무조사 자체에 대한 반발과 저항, 그리고 최소한 신문으로서의 체면과 양식도 팽개친 채, 본질을 호도하는 해괴한 궤변과 억지스런 강변만 있을 뿐이다.
파렴치한 탈세에 대한 정당한 조세권의 행사를 언론탄압으로 왜곡하는 이들 신문 지면엔 이제 탁월했던 논리의 교묘함도 포장술의 세련됨도 없다. 이런 속에서도 자사의 논리를 야당의 입을 빌어 마치 여론인양 몰아가는 기술상의 용의주도함만은 잃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나 이성을 잃었는지 야당의 말을 타이틀로 뽑았으면, 부제 정도는 여당의 말로 구색을 맞출법도 한데, 이건 굵직굵직한 글씨는 온통 야당의 목소리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밤의 황제’를 자처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온 이들 족벌언론이었다. 이에 빌붙어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와 내부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조사 자체를 언론탄압이라고 동조하거나, 탈세의 구체적 내용과 규모는 공개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도, 추징액이 너무 많다며 언론사의 역성부터 들고 나오는 정당에게 묻고 싶다.

앞으로 집권하면 언론사에는 세무조사 자체를 결코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세무조사를 해서 탈세가 밝혀지더라도 눈감아 주거나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겠다는 것인지, 그래서 무소불위의 권세와 오만을 부리며 공권력을 비웃더라도 ‘바른 소리하는 언론’으로 떠받들겠다는 것인지, 명분없이 언론사에 빌붙어 한통속이 되는 바람에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추락과 함께 당의 지지도도 함께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알고나 있는지 말이다.

하긴 표에 대한 계산이야 영악하게 할 그들이 여론보다는 언론에 더 기대는 것을 보면서, 역시 족벌언론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모처럼 잡은 언론개혁의 고삐를 놓치거나 늦춘다면, 이 정권에게도, 언론에게도, 우리 국민에게도, 영원한 불행이 될 것이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법대로’‘원칙대로’해야 한다.

/오인태(경남작가회의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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