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진 일상 깨우는 묵직한 감동...'폐암 말기' 뻔한 구조지만, 사실적 감정묘사에 시청자 몰입
노희경이 쓰고 박복만이 연출한 MBC 창사 특집 4부작 <기적>(토·일 오후 9시 40분)이 묵직한 감동을 주고 있다.
폐암 말기 환자와 '기적'이라는 드라마 제목의 결합만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이야기'로만 예상한다면 오산이다. 여기에서 '기적'의 의미는 중층적이다. '기적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서로를 보듬는 모습이 '기적'처럼 펼쳐지고 있다. 사실, 암 말기 환자라는 설정은 매우 도식적이다. 가족들이 그 사실을 알게되고 서로간에 반목했던 과거를 뉘우치며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스토리는 무수히 접해오지 않았나.
하지만 <기적>은 이렇게 뻔한 구조를 차용하면서도 보는 이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 힘의 원천은 인물들의 감정선을 사실적으로 포착하는데 있다. 부부지간, 부모와 자식간에 오가는 미세한 감정의 진폭을 절묘하게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장영철(장용)이 폐암 말기 판정을 받기 전부터 드라마는 뭉클함을 느끼게 한다.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초반부는 슬픔을 목전에 둔 '태풍전야'와 같다.
장용과 박원숙이라는 두 배우가 큰 몫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의 연기는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다.
제작진은 "시청률이 모든 드라마 제작의 잣대가 되면서 '의미있는 드라마란 구태의연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게 현실"이라면서 "방송과 드라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고자 <기적>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정말 보기 힘든데, 너무 좋아요. 맨날 하는 남녀 사랑 이야기에서 벗어나서 이렇게 기분좋은 드라마가 있어서 기쁘다"는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그렇다. <기적>은 보기 쉬운 드라마가 아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슴 속에 묵직한 무엇인가가 들어 앉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감동을 느끼는 일이 '기적'이 된 현실에서 <기적>이 반가운 이유이기도 하다.
임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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