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봄날, 파도소리는 푸르렀다

거제시 하청면 칠천도. 임진왜란 때의 대표적인 해전 패전지역이다. 감옥에 갇힌 이순신을 대신해 전쟁에 나선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이곳에서 거북선과 판옥선 130척을 잃고 전사했다.

일본의 한국 측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 수로측량 추진으로 고조된 오늘날 한일 관계의 긴장과 대비되며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칠천도에서 고성 마산만이 바라보이는 바다의 한 가운데에 전쟁은 역사로 남아있다.

   
통영에서 거제대교를 지나면 만나는 둔덕면에서 서쪽으로 거제면 산달섬을 거쳐 남부면 홍포 여차까지 해안선을 이미 탐색했다.

남은 곳은 일운면과 장승포, 고현과 신현읍 장목 등 거제 동쪽의 바다. 그러나 거제 향토사연구소 이승철(67) 소장은 한사코 “알려져 있지 않은 거제의 바다를 알려 달라”고 충고했다.

다시 발걸음을 동부면 가배 쪽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한국가스공사의 통제구역으로 묶인 일운면 서이말 등대 가는 길을 찾았다. 승전지에만 익숙한 좁은 시야를 넓혀 임진란 칠천량 패전지의 흔적을 쫓아갔다.

△매물도와 가까운 가배의 바다

동부면 오송에서 가배 율포 쪽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동부면의 바닷길에서 영월을 만나면 다음이 가배마을이다. ‘가배’는 우리가 알고 있듯 ‘달’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어떤 모양이든 달을 담은 지명은 앞서 ‘산달’도 있었다. 가배의 바다는 거제만을 사이로 산달섬을 마주하고 있다.

마을 위쪽 옛 초등학교 자리에서 ‘해강도예촌’을 만난다. 네댓개의 교실에 도예 전시실과 제작실, 다도예절방 염색작업장 등을 갖춘 곳이다. 풍물에 미술수업까지 현장체험을 온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도예촌을 운영하는 선문경(40)씨는 “거제의 관광지와 전통을 담은 작은 상징물도 함께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해금강의 장관을 담은 타일, 목걸이와 열쇠고리 찻잔 같은 게 앙증맞다.

홍포-여차-해금강 절경…그냥 넘기기 아쉬워

선씨는 “조용해 보이는 가배마을의 언덕에 전쟁을 준비한 흔적이 적지 않다”고 했다. 도예촌 자리가 바로 임란 때의 경상우수영 동헌 자리였다고.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뒤에는 이곳 경상우수영이 사령부 역할을 했다.

도예촌에서 나와 율포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경상우수영의 진지로 쓰인 ‘가배량성’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그 너머에 덕원해수욕장이 있다.

△홍포 여차 해금강 절정

율포와 탑포 저구를 거쳐 곧바로 다대로 향했다. 이미 여행한 홍포와 여차는 저구에서 빠지는 길이 다르다. 저구에서는 통영 매물도 가는 선착장이 있다. 통영에서 출발하는 뱃길보다 훨씬 짧다. 다대에서 해안선은 서서히 북쪽으로 올라간다.

거제의 동쪽 바다가 시작됐다. 그리고 해금강공원으로 알려진 남부면 갈곶. 남부면 홍포 여차 해금강으로 이어지는 바다경관의 절정을 그냥 넘기기 아쉬워 익히 알려진 바다를 찾았다.

갈곶의 입구 도장포에는 전망이 좋은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 가는 길이 있다. 그 길목, 갈곶의 잘록한 모가지 자리에 예쁜 박물관 하나가 자리를 깔았다.

게을러진 후각으로 더 이상 바다냄새가 나지 않을 즈음 들러, 바로 그저께나 어제 나와 함께 지냈던 생활의 주변을 구경한다. 신선대에서는 다시 여차 쪽의 다포도와 대소 대병도, 그 뒤 매물도까지 바라보인다. 도장포에서는 외도나 해금강까지 가는 유람선이 있다.

다시 갈곶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을 이름 자체가 해금강이다. 섬의 경관이 금강산을 닮았다는 해금강을 코앞에 붙여놓고 있는 마을이다.

이곳은 많은 관광객과 낚시꾼으로 숙박시설이 마을을 이뤘다. 섬이 코앞에 있지만 배를 타고 들어가야 마을 앞 비석대로 ‘천하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자바위와 해금강 사이로 기가 막히게 걸리는 일출이 아름답다.

▲ 서이말 등대.
△서이말 등대, 통제를 뚫어라


널리 알려진 학동과 구조라를 휘휘 지났다. 일운면 와현 들어가는 길에 ‘예구’ ‘공고지’ 등을 나타낸 표지판이 나왔다.

동백숲과 종려나무 농장이 아름답다는 공고지를 찾기 위해 예구까지 갔지만 산길로 30분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강한 바람에 빗줄기까지 뿌려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공고지 가는 길을 포기했다. 바로 옆 서이말 등대의 경관을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군사지역에 가까이 석유저장고를 가진 한국가스공사의 통제구역이다.

칠천량서 스러진 원균, 전쟁은 역사로 남아

그러나 3~4㎞ 남짓 되는 등대 가는 길은 그간 통제를 받아왔던 만큼 은밀하게 보호된 오솔길로 남았다.

기도원과 등대, 등대 앞 군사기지나 가스공사 관계자가 아니면 출입할 수 없다는 단서가 아쉬울 뿐이다. 그 길에서 와현산성이나 봉수대 진로가 이어진다. 좁은 길을 감싼 숲 오른쪽에 툭 트인 바다가 틈틈이 고개를 내밀면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기 마련이다. 이윽고 등대. 바람소리와 파도소리가 같다는 것을 여기서 알았다.

▲ 칠천도 대교. 지금 대교가 놓여 있는 자리가 칠천량 일대로 추측된다.

△묻혀온 칠천도의 바다

거제의 동쪽 바다는 장승포와 고현, 신현읍 등 도시를 이뤘다. 뿌리에 거대한 ‘조선의 힘’이 있다. 대우조선이나 삼성중공업 어느 곳이든 일반인의 견학기회를 찾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조선의 역동성을 여기에 전하지 못해 아쉽다.

하천 장목 방향의 길로 접어들면 곧 칠천도 대교가 바라 뵌다. 이승철 소장은 “칠천량 해전이 정확한 표현이다. ‘량’이라는 표현 자체가 바다와 섬 사이를 뜻한다. 현재 대교가 놓여 있는 지점이 옛 칠천량 일대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1597년 7월 칠천량 해전이 벌어졌던 곳을 그는 “칠천량에서 장목 송진포 앞 바다까지 당시의 전장이었다”고 덧붙였다. 바다가 펼쳐진 대로 어온 물안 연구 등지를 따라 적과 적의 군선이 서서히 위치를 옮겼으리라.

여러 설 중에는 연구리 금곡 앞 대문도를 전초기지로 삼았다는 내용이 있다. 대문도는 섬이 아니다. 칠천도의 금곡과 건너편 하청면 사이의 운하처럼 뚫린 바다 지형을 말한다. 평생 그곳에서 고기를 잡았다는 금곡마을의 추교우(70)씨.

“무슨 표시가 있어야 알고 살꺼 아인가베. 막연하이 말은 들었지마는. 우리는 모르고 평생 살았소.”

   
그의 관심은 400년 지난 전쟁이 아니라 살 길이었다. “농사요? 여 서는 종자값도 안 나오요. 도다리 노래미 잡아가 살았는데. 요새는 거기 돼요? 전부 다 막는데. 그런데 어떻게 목숨 붙여 가는지. 신기하제….” 바다는 다시 하청 사등을 거쳐 견내량으로 모아진다. 62㎞ 거제의 해안선은 그렇게 끝난다.

/사진 유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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