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중심에 선 시민단체로”

“한번 얻은 장애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사회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장애인이 정부 기관들을 대상으로 무턱대고 뭔가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가 교육을 받고 의식을 개혁해 사회 공동체 구성원으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경남장애인인권연맹 대표 박태봉(58) 씨의 말이다. 경남장애인인권연맹은 지난 4일 장애인과 비장애인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총회를 열고 활동 기지개를 켰다. 창원시 용호동의 낡은 오피스텔 건물 6층. 여섯 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에서 경남장애인인권연맹체 대표를 만났다.

   
- 사실 장애인단체가 많습니다. 또 하나의 장애인단체를 만든 이유가 있다면?

△ 또 하나의 장애인 단체가 아닙니다. 장애인이 중심이 된 새로운 시민단체를 하나 만든 것입니다. 현재 경남 도내에만 등록된 장애인단체가 20개 정돕니다. 이 단체들은 대체적으로 장애를 유형별로 나누어 만들어졌습니다. 장애인이 중심이 되어 만든 게 아니라, 의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분류했고, 그러한 명칭이 지금은 굳어져 사용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중심이 되어 장애인을 돕는 단체를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 그렇다면, ‘경남장애인인권연맹’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 우리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목표가 세 가집니다. 첫째가 기존 단체들이 업무추진비를 받아서 일을 한다면 우리 단체는 공동대표 3명이 직접 돈을 내고 활동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회계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서 분기마다 회계를 공개키로 했습니다. 셋째로, 장애인을 신장, 언어 등 유형별로 나누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는 장애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모두의 인권을 위해서 일하는 시민운동 차원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단체 출범하기까지 어떤 준비를 했습니까?

△ 2003년부터 대구 DPI(Disabled Peoples’ International:국제장애인연맹)를 보고 3년 정도 찾아다니면서 준비를 해서 마침내 단체를 출범시킨 것입니다. DPI는 UN에 등록된 장애인 단체 가운데 하나로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 단체 중 정신지체애호협회와 신체지체애호협회 등의 단체가 속해 있습니다. DPI는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기회균등’을 모토로 일하는 단체로 현재 서울, 제주, 충남, 대구, 경기, 인천 지부가 있습니다.
장애 유형별 구분 않고 장애인이 서로 돕는 단체로

- 언제부터 이러한 단체 설립을 구상해 왔습니까?

△ 젊은 시절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았고, 사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94년에 지인으로부터 장애인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고 일하게 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당시에는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돕는다는 어쩌면 시혜적인 차원에서 일했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비장애인이어서 조직의 활동에 있어서 문제제기를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잘 모르면서 함부로 얘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3년 전에 제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시각장애, 뇌병변장애, 지체장애 등을 얻은 장애인이 되어 보니 입장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장애인이 사회구성원으로 활동하려면 더 많이 배우고 구체적으로 원하는 부분을 요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한 단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 주력사업은 무엇입니까?

△ 시민운동을 하려면 사회인으로 기본적인 역할을 해야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교육 하는 것입니다. 매월 100분 강의를 2개씩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4일 창립총회 때도 리더십아카데미를 열어서 장애인 복지 부문에 대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권리를 행사하고자 할 때 막연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경남에서 등록 장애인이 15만 명인데, 모두가 교육을 받기는 사실상 힘듭니다. 따라서 매년 교육하는 사람들이 자기 성찰한 후, 다른 장애인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해서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장애인은 뇌혈관, 질환이나 대사 증후군 등 성인병에 취약합니다.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회적인 소양부터 가르치고 싶습니다. 행정단계 절차부터 알아야 맹목적으로 도움만 바라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사자의 의식개혁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현재 창립 멤버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면면은 어떻게 됩니까?

△ 저는 경남지체장애인협회에서 10년 정도 일했으며, 사무국장 역시 8년 정도 경남지체장애인협회에서 일했습니다. 황상우 공동대표의 경우 사회복지 분야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국장이며, 이양재씨의 경우는 한국장애인연맹 사격부회장, 경남사격연맹 부회장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구체적인 권리 행사 등 사회 활동 위한 교육에 주력

- 앞으로 단체가 할 일은?

△ 회원들이 필요로 하는 법률적 문제, 산재관련 문제 등을 현재 자문위원이 스무 분이 도와주고 계십니다. 현재 정책, 교육, 복지, 인권, 문화체육, 재정 등 분과상임위원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어려움은 자원봉사자가 나서서 도와주고 있습니다. 병원 원무원 쪽에서 근무한 장애인이 병원 관련 어려움을 도와줍니다. 어느 병원에서 좀 더 싸게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지인을 소개해주기도 하는 등의 일을 합니다.

또한, 장애인이 행정의 도움을 받고자 할 때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것도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습니다. 사무실을 찾아오는 장애인들을 보면, 안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보상받을 수 있는 시기가 경과한 후에 찾아올 경우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앞으로 더 줄여나가기 위해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혼상담 업무도 현재 하고 있는데, 실제로 36살 노총각 장애인이 베트남 처녀와 결혼한 후, 자신처럼 결혼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창 기자와 박태봉 대표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자그마한 사무실에 상담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박 대표의 개인적인 바람을 물으니, 박 대표는 “장애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부분이 정말 많습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비장애인이었을 때와 지금 장애인일 때 느끼는 게 다릅니다. 장애 정도에 따라서도 마찬가집니다. 당장 사람들 만나 식사 약속문제도 그렇습니다. 휠체어를 탄 동료의 경우 활동 반경부터 걱정합니다. 저 또한 그러한 부분을 간과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라며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단체가 아닌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움직이는 단체로 운영하고 싶습니다”고 바람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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