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바람에 새파래진 얼굴 바다는 눕기에 너무 시리다

‘내 하나의 목숨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본다/ 설익은 햇살이 따 라오고/ 젖빛 젖은 파도는 눈물인들 씻기워 간다/ 일만의 눈초리가 가라앉고/ 포물이 흘러 움직이는 속에/ 뭇별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시퍼렇게 흘러만 간다/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박해수의 ‘바다에 누워’ 중

   
△ 정확하게 바다를 향하는 길

고성군 동해면과 마산시 진전면을 잇는 동진대교는 정확하게 바다로 향하는 길이다.

바다는 이미 내가 눕기에 너무 시리다. 바다에도 다리 위에도 겨울이 성큼 와 있다. 매서운 바람에 금방 얼굴이 새파래진다.머리가 쩍 갈라질 듯하다.

그렇다고 차를 타고 건넌다고? 그건 아니다. 한번쯤 걸을만한 길을 모욕하는 일이다. 정신이 번쩍 드는 획기적 경험을 놓치는 일이다.

   
햇살이 설익을 때에나 해 저문 노을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이곳을 걷는다면 더욱 좋겠다. 추위가 한층 더하겠지만 그만큼 하늘도 바다도 눈 시리게 맑을 것이다. 젖빛 젖은 파도가 그 눈물마저 거두어 간다.

걷기에 적당하지 않은 길이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거대한 콘크리트 다리에 밋밋한 아스팔트 길을 걸으라니. 그렇다면 일요일 오전 이곳에 가보라.

사람들은 일요일 흔히 이곳에서 볼거리를 제공한다. 다리를 건너면 시작되는 동해면 해안도로를 통해 일부는 내산 방향으로, 일부는 외산 쪽으로 뛰는 사람들. 아마추어 ‘마라톤 맨’들의 훈련장소가 되는 것이다. 온전히 바다와 함께 뛰는 환상의 마라톤 훈련 구간은 거리까지 적절하게 둘로 나뉜다. 우선 내산리 외산리를 돌아오는 짧은 구간이 13㎞, 봉암리 외곡리까지 동해면 일주 구간이 40㎞ 정도 된다.

△ 버스를 타고 쉬엄쉬엄 간다

맑고 추운 날, 동진대교 앞 바다는 ‘창해(滄海)’를 실감하게 한다. 바다를 향해 곧장 걷는다. 직진한다. 추워서 귀가 얼어도 돌아올 때 들를 노상의 커피숍을 기대하며 걷는다.

   
바로 앞에서 바다를 보면 파란색깔의 겨울을 볼 수 있다. 돌아올 때 보는 바다는 또 다르다. 동해 내산리와 진전 소포리가 마주하는 대교 안의 바다는 은빛으로 반짝인다. 잔잔하다.

아직 겨울이 오지 않은 잔잔한 바다의 이름은 당항만. 마산시 진전면 소포 시락 등의 마을을 지나 고성군 당항포까지 바다가 연결된다. 바다 옆 해안 길은 끊길 듯 끊길 듯 좁은 모양을 이어간다. 통영~마산 국도가 정체될 때 눈치 빠른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이다.

당항만 끝에 지난 2002년 1월 개통된 동진대교는 남해안 관광 일주도로의 일부로 만들어졌다. 그 전까지는 정기 항로 없이 주민 소유의 배로 왔다갔다했다.

한참을 기다려 마산 쪽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좋겠다. 마산역-육호광장-경남대를 통과하는 77번 버스가 하루에 다섯 번 있다. 맨 뒷자리에 앉아 한 시간 가까이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을 단축시키려면 진동면 소재지까지 갔다가 하루에 아홉 번 왕래하는 77-1번을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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