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05년 9월3일자 ‘자립형 사립고 늘려야 한다’

교육의 수월성과 기회균등이라는 가치를 놓고 해묵은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자립형 사립고(자사고) 시범운영 평가보고서’를 놓고 수월성을 추구하는 교육정책이 결과적으로 교육을 ‘입시학원화’의 온상을 만들었다는 주장과 인재양성을 위해 자사고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자사고에 자녀를 보낼 학부모는 많게는 한 해에 1600여만 원, 3년 동안 학교에 낼 순수 학비만 5000여만 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평균 국민 주택규모인 충북 충주나 청주지역 24평 아파트 한 채 전세값과 맞먹는 액수다. 자사고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24평 아파트 한 채 전세값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사고를 비롯한 특수목적고가 일류대학 입학을 위한 관문이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대표적인 자사고인 민족사관고에 보내는 학부모의 한 해 소득이 무려 8250만원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듯 가난한 아이들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다닐 수 없는 곳이 자사고다.

‘공교육의 질 저하’를 빌미로 적성과 창의성을 살릴 다양한 교육 체계를 만들어 교육의 질을 높이자고 시작한 자사고가 서민들에게 위화감을 주는 입시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보수언론은 ‘수요자에겐 학교선택권을, 사립학교에는 학생선택권을 주기 위해서 자사고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을 상품화해야 한다는 수월성의 원리는 교육의 기회균등을 부인한다. 보수언론의 수월성논리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세습하는 현대판 골품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비만 5000여만 원이 들어가는 귀족학교를 많이 만들자는 것은 부자에게는 양질의 교육을,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저질의 교육을 받게 하자는 것이다. 자사고 학생 가운데 68.2%가 사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들이 내는 월 평균 사교육비가 104만원이라는 사실은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을 뽑아 좋은 대학에 많이 입학시켜야 좋은 학교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자사고를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평가단의 주장조차 무시하고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거나 ‘강남의 집값 안정을 위해 자사고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다. 학벌을 두고 추구하는 수월성은 결과적으로 사교육비부담 증가와 공교육의 황폐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소수 부유층 자녀만을 위한 교육기관임이 드러난 자사고, 더 이상 확대는 중단해야 한다.

/김용택 (마산 합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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