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락사그락’ 씨앗 노는 소리

귀뚜라미 소리가 청명합니다. 밤이면 풀숲에서 울어대던 쓰르라미 소리도 약해지고 온통 귀뚜라미 울음소리로 가득합니다. 밤공기가 싸아해지는 걸 보며 여름이 너무 맥없이 무너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갑작스런 한기에 여름 꽃들 서둘러 씨 여물리느라 바쁠 것 같은데요.

친정 마을 할머니들 꽃씨 따러 떠날 때가 되어 갑니다. 여름 한 더위가 지나고 나면 어머니와 어울리는 또래 할머니들 모여서 작은 오토바이 스쿠터를 타고 거창으로 합천으로 국도를 따라 꽃씨를 따러 가십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운동회 날처럼 모여서 금 그어놓고 에스자·티자 코스를 꼬불꼬불 타며 원동기 면허시험 봐서 면허 따고 타게 된 오토바이입니다.

하트형 씨앗 흔들면 소리나

   
지서에서 나온 순경이 검사하고 마을 이장님이 모아서 하루 종일 애쓰고 교통법규 배워서 면허 땄다고 자랑스러워하시는 할머니들입니다. 꽃이 씨앗을 맺을 때쯤이면 날 잡고 도시락 싸서 가을맞이 여행을 하듯 꽃씨여행을 떠나는 할머니들 생각만 해도 멋집니다. 그래서 친정 동네 화단에는 집집마다 복수초에서부터 족두리풀, 마타리·뚜깔까지 산 숲 깊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꽃들이 핀답니다.

올해는 나도 좀 따라 가자고 청했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임이 분명합니다. 자연을 느낄 여유가 그만큼 부족한 도시생활이 무척 싫어지는 순간입니다. 그 후부터 차를 몰고 외곽으로 나가는 일이 생기면 산 숲을 보면서 저 곳에는 어떤 꽃이 씨를 맺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멀리 개울가에 소리쟁이 열매가 고동색으로 익어 타오르듯 햇볕에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입체삼각 하트형의 씨앗을 훑어 손에 넣고 흔들면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난다고 해서 소리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마디풀과의 소리쟁이는 5~6월에 연둣빛깔 꽃이 피었다가 초록이 한창 무성할 한여름에 녹슬듯이 빨갛게 익습니다. 이른 봄부터 천지사방 아무 곳에서나 막 돋아나는데 부잣집 꼴머슴처럼 천덕꾸러기로 진땅 마른땅 오염된 땅 가리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씩씩한 우리풀입니다.

초산 성분 있어 변비에 효과

굵고 긴 뿌리가 땅 속 깊이 박혀 잘도 번식하는 다년초 식물인데요. 시금치 모양의 잎을 비벼보면 미끌미끌하고 거품이 나기도 하는데 어린 잎을 따다 살살 비벼서 거품기를 빼고 국을 끓여 먹거나 나물을 해서 먹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잘 먹지 않습니다. 또, 그 뿌리를 먹어보면 약간 매운듯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나며, 얼음을 뚫고 새싹이 오를 때 뿌리를 캐보면 김이 모락모락 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성질은 차갑고 독성도 약간 갖고 있다는데요. 이른 봄에 캐서 약으로 쓰는데 여러 병 증상에 좋은 약효를 가지고 있는 약초이기도 합니다.

초산 성분이 들어 있어 많이 먹으면 안 좋지만 적당하게 처방해 먹으면 열을 내리고 대소변을 잘 나가게 하며 뱃속의 기생충을 죽이는 멸균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특히 종기에 효과가 좋으며 변비에도 탁월해서 오래 먹으면 장이 깨끗해지고 피부가 고와진다고 합니다. 요즘은 항암작용이 뛰어나다는 효과가 알려져서 잎과 뿌리를 잘게 썰어 그늘에 말려 달여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천덕꾸러기 이 소리쟁이가 머잖은 미래에는 우리 몸을 지키고 살리는 좋은 명약이 되지 않을까 기대되는데요. 그 씨앗에서 나는 사그락 대는 소리가 좋아서 자주 흔들며 놉니다. 한번은 친구 시인과 함께 그 소리를 듣다가 하트 모양 열매를 보면서 ‘사랑 사랑’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고 ‘사랑쟁이’로 부르면 어떨까하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사랑이 너무 뜨겁고 열정으로 가득차서 그 푸른 여름에 발갛게 익어버린 소리쟁이의 사랑을 상상해봅니다.

/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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