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소통코자 들녘에서 익살스런 돌장승이 반기는 절

고즈넉해야만 절집이고 수행도량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실상사는 말해준다. 떠나온 현실을 잊고 잠시의 평온을 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속에 몸담고 살면서도 잊거나 외면하고 있던 것들을 맞닥뜨리게 한다.

이곳에서 안식을 구하려 하지 말게 생명의 소중함 실천하는 도량이라네

▲ 찾는 이를 맞는 돌장승.
세상을 향해 ‘발언’할 것들, 함께 부대끼고 이뤄나갈 것들이 많다는 뜻이겠다. 천왕상 앞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밥을 굶는 북한 어린이들의 실상을 담은 사진들이 천왕상 앞에 내걸려 있다. 천왕상의 불거진 눈과 큰 입은 이런 현실을 모른 척 할 것이냐고 벽력고함이라도 치는 것 같다. 별 생각없이 천왕상 보려 했던 마음이 ‘불편’해진다.

해우소 앞 텃밭에선 스님들이 일하고 있다. 절을 찾은 아이들이 일하는 스님들 곁에 모여앉아 스님 한걸음 옮길 때마다 함께 자리를 옮겨다니며 한창 이야기가 즐겁다. 아이들은 스님이 무얼하는 사람인가란 물음에 스님은 밭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답을 얻어갈 지도 모른다.

들녘에 자리잡은, 남원 산내면의 실상사. 산 속에 들지 않고 들판에, 이웃한 집들 속에 놓인 이 절은 이미 ‘세상속으로’깊숙이 들어와 있다. ‘세상 바깥’이나 ‘세상 한피짝’이 아니다. 시대와 사회와 사람들과 조응하며 살아가는 절의 모습이 거기 있다.

이 곳이 우리 환경과 생명과 농업을 지키고 살리기 위한 정신의 중심이 된 지 오래 됐다. 이곳에는 작은학교와 귀농학교, 농장공동체가 있다. 또 일찍부터 뭇생명들의 신음소리를 귀밝게 알아듣고 함께 앓아온 스님들이 있다. 도법스님, 수경스님, 연관스님….

▲ 실상사.
실상사 들어오는 길엔 ‘풀꽃상’ 비가 세워져 있다. 제6회 풀꽃상은 지리산의 물봉선과 실상사 스님들에게 주어졌다. 물봉선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 걷잡을 수 없는 난개발로 능욕당하고 있는 우리 산하의 신음소리를 대신 말하는 것만 같은 꽃말이다.

자연의 허리가 잘리고 숨통이 끊어지는 현장이라면 어디든 스님들이 달려갔다. 새만금갯벌이나 북한산 관통도로나 할 것없이. 때로는 ‘삼보일배’의 고행으로 자연의 아픔을 전한 스님들의 몸짓은 자연을 사용가치로만 보는 이들에게 ‘네가 아프면 내가 함께 아프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도법스님 등 생명과 농업을 지키기 위한 중심지 역할

▲ 똥이 제 대접 받는 생태 뒷간.
텃밭 앞에 ‘생태 뒷간’이 있다. 뒷간 설명판의 “좀 냄새는 납니다”란 구절을 보면 냄새에 인상 찌푸리기 전에 웃음부터 난다. 똥오줌을 싸면 볏짚이나 겨와 섞어 그대로 삭혀 거름으로 만들어내는 곳이다. 겉만 깨끗하고 멀쩡할 뿐 사실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도시의 화장실과 다르게 겉으로야 냄새 나고 ‘싼 것’들이 구멍아래로 다 내려다 보이지만 생명순환의 원리를 충실히 지켜내고 있는 변소이다. 다시 쌀로 채소로 흙으로 돌아가는 똥. 똥이 단지 ‘더러운 것’‘흘려보내야 할 것’으로 치부되지 않고 똥으로서의 제 대접을 받는 곳이다.

실상사의 중심되는 건물은 보광전이다. 앞마당에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를 복원할 때 본보기가 됐다는 삼층석탑이 좌우 나란히 서 있고 그 가운데 석등이 있다.

보광전 건물은 세월 그대로 자신을 다 내어맡기고 늙어온 쭈그렁 할머니 같다. 단청도 없이 나뭇결 그대로 기름기도 흐르지 않고 윤택하지도 않다. 발복을 구할 처소로는 영 어울리지 않으니 여기서는 그런 바람일랑 내려놓아야 할 성 싶다.

보광전 옆 바위 위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쌓아올린 작은 돌탑들이 있다. 작지만 그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아름답고 크게 느껴진다. 그 작은 돌탑에 욕심을 얹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소박한 기원들이 깃들었을 터.

▲ 문살이 아름다운 약사전.
약사전은 문살이 아름답기로 이름나 있다. 색색의 화려한 꽃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장엄한 한세상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에 ‘너무 홀리지 마소’라는 듯 그 문은 군림하는 구경거리로서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레 문으로 존재하는 느낌이다.

약사전 문 뿐만 아니다. 불사다 뭐다 해서 요란한 요즘 절들과 달리 절에 거의 손길을 대지 않았다. 이곳의 관심이 공연한 집치레가 아니라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열려있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법스님은 욕심과 욕망으로 짓밟혀가는 이 땅을 두고 “우리가 걸어온 길은 죽음의 길, 파멸의 길이었다. 절망의 길, 불행의 길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고 한다.

“죽음엔 아픔이 없다. 아픔은 생명이다. 희망은 아픔이 있는 곳에 싹튼다.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희망은 피어난다.”

그러니 아프다고 너무 일찍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말 일이다.

실상사 들어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석장승들. 무섭다기보다는 익살스럽고 장난기를 애써 숨기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그럼에도 당당하다. 사람 주눅들게 하는 부담스러운 위엄은 아니다. 너르고 평평한 그 들에 어울리고 산나물같은 것들 팔러나와 자리깔고 앉은 마을 할머니들과도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실상사엔 보물이 많다.

▲ =스님과 아이들이 어울려 생태 텃밭을 가꾸고 있다.
석등, 부도, 삼층석탑,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증각대사 응료탑, 약사전의 철조여래좌상 등등….

그러나 그중 귀한 것은 그동안 귀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그저 이용가치로만 값이 매겨지고 훼손돼왔던 우리네 땅과 산과 강과 그 속에 깃들어사는 생명들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그것을 지켜나가려 애쓰는 실상사 스님들의 마음이다.


전라도닷컴 제휴/남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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