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생각]아이들 가슴에 못 박는 선지원제

▲ 김용택 교사(마산 합포고)

 "수업시간에 잠이나 자고, 고등학생들이 이래도 되는 거야?"

"우리학교는 따라지들만 와서 그래요."

수업시간에 산만한 분위기며 여기저기서 잠을 자는 학생들을 보다 못해 잔소리를 했다가 학생들로부터 들은 얘기다.

 "아니 평준화지역에서 어떻게 성적이 나쁜 학생들이 한 학교에 몰릴 수 있다는 말이냐?" 아이들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반문했다가 더 기가 찬 소리를 듣고 말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떤 선생님이요, 00고등학교에 가면 내신 성적이 나빠 대학도 못 간다고 그랬어요."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는 남녀공학 학교에 가면 공부도 안하기 때문에 가면 안 된다고도 하고요."

평준화지역이면서 선지원 때문에 고등학교가 서열화됐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우수학생을 유치하고 있다는 얘긴 처음 들었다.

"우리 반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학생 집에는요, 전화가 와서 00고등학교에 오면 해외연수도 시켜주고 장학금도 준다고 했답니다."

점입가경이라더니 기가 막힐 일이다. 교육자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제자들을 상대로....

중학교 3학년 학생 중 누구의 성적이 좋으냐는 것을 고등학교에서 안다는 것은 개인정보유출에 관한 중요한 문제다. 교사가 제자의 정보를 유출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우수학생을 유치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범법행위다.

교육자이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우수학생을 유치해 일류고등학교가 되겠다는 비열한 유치작전이 선지원이라는 약점을 이용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말이 아니라도 전부터 공공연히 나돌던 소문이 있었다. 모모 사립고등학교는 일류학교,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던 모모 공립학교는 2류, 비교적 역사가 짧은 공립학교는 3류 학교, 그리고 실업계학교는 4류 학교라는 소문이 그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특정한 학교가 학생들의 학습지도를 잘해서가 아니라 교육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우수학생을 유치해가 나타난 결과라는 사실은 지난 봄 학교별 고등학교 입학내신성적이 밝혀지면서 부터다.    

올해 마산 시내 중 3학생들의 내신 성적을 보면 마산시내 C고등학교 경우, 성적이 우수한 상위 10% 미만인 학생이 무려 27명이나 몰렸는가 하면, D고교에는 겨우 2명이 입학했다. 또 어떤 고교는 성적이 하위 50%이상 학생이 32명이나 입학하고 다른 학교는 9명이 입학해 특정학교의 우수학생 쏠림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6월 9일 실시한 고교 1학생들의 전국학력고사결과에서도 학인되고 있다. 아무리 우수한 교사들이 모인 학교라 하더라도 입학한지 3개월 만에 학교간 성적을 전교과목 평균점수를 무려 137점(500점만점)이나 차이가 나게 가르칠 수 있을까?

지난 6월 9일 시행한 고교 1학년 '전국학력평가' 결과 A학교는 340.0점을, B학교는 202,7점을 받아 전과목 평균점이 무려 137점이나 차이가 나는 현상이 벌어졌다.

해마다 수능이 끝나고 학교 교문 앞에는 '축 합격. 000 서울대 합격. 000 연세대학 수석합격...'이라는 플래카드가 예외 없이 나붙는다. 서울대를 비롯한 유명대학에 몇 명 더 입학시켰는가의 여부로 고등학교의 서열이 매겨지기 때문이다.

성적이란 좋은 학생도 있고 나쁜 학생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열심히 하면 성적이 보다 좋아질 수는 있지만 성적이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는 아이들의 심정을 아랑곳없이 소수 일류대학에 입학생 수로 자기학교의 실적을 선전하던 부끄러운 모습의 실체가 밝혀진 셈이다.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 그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학교와 무작위추첨을 통해 모은 학생들의 성적이 똑같이 나온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상위 10% 이상의 성적 우수학생을 27명이나 모아놓고 가르치는 학교와 겨우 2명을 받아 가르치는 학교가 같은 결과가 나올 리 없다.

이러한 과정을 무시하고 일류대학 몇 명 합격 수만으로 명문고등학교라고 선전해 온 것은 사리가 맞지 않은 일이다. 말로는 평준화지역이라면서 특정학교에서 우수한 학생을 골라가는 이러한 현실을 행정관청이 모르고 있었을 리 없다.

대구를 비롯한 대도시조차 거리만 고려한 평준화를 실시하는데 유독 경남에서 선지원이라는 선택권을 강조한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평준화가 아닌 것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경남도교육청은 지난해까지 마산지역 선지원을 4개 학교까지만 가능했던 것을 올해부터 12개(마산시내 고등학교 수가 모두 12개임)로 늘려 사실상 평준화를 포기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교육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우수학생을 뽑아 일류대학 입학실적을 과시하는 선지원제를 학교선택권이라는 이름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만적인 우수학생유치경쟁이 밝혀진 이상 경남도교육감은 하루빨리 선지원 방식을 없애고 가까운 거리에 학교를 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 전면적 추첨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교사와 아이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선지원 후추첨제는 더 이상 계속해야할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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