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전철이 생기기 전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갈 때는 밤차를 자주 탔습니다. 집에서도 서울에서도 낮 시간을 마디게 쓸 수 있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 밤차가 시간은 아껴주지만 큰 문제가 있습니다. 고속버스든 열차든 밤차는 서울에 닿는 것이 새벽 네다섯 시라 내려도 갈 데가 없어서 타고 오던 데서 더 쉬고 싶은데 매정한 밤차는 사람을 싸늘한 새벽으로 쫓아냅니다.

지하철도 버스도 없으니 할 수 없이 택시를 잡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우나 집에 가서 잇달아 선하품을 하면서 억지로 몸에 물을 끼얹습니다. 억지목욕을 하면서 곰곰이 생각하면 훨씬 더 약 오르는 일이 머리에 떠오르는데 타고 올라 온 고속버스나 열차의 삯에는 고속도로 사용료나 급행료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빨리 온다고 돈을 더 냈고 돈을 더 냈기 때문에 일찍이 왔고 그래서 비싼 택시를 타야했고 억지 목욕을 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더 쓴 것이 까닭이 되어 또 다시 헛돈을 쓰면서 덤터기로 고생까지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니 지금 받는 밤차 요금에 택시와 사우나 삯만큼을 천천히 오는 값으로 더 받아도 좋으니 아침 여덟시쯤 서울에 닿는 차가 있다면 그 것을 타는 쪽이 훨씬 득이 됩니다. 같은 돈에 헛고생은 면하니까요. 밤차는 이렇게 싸늘한 새벽으로 사람 등을 떠밀어낸 뒤 돈 더 받은 만큼 일찍 데려다 주었으니 할 일 다 했다는 듯이 손을 텁니다.

그런데 이 밤차가 우리 언론과 아주 닮았는데 여러분은 그 걸 아십니까? 쉬운 겨레말을 쓰라면 언론은 한정된 지면에 많은 정보를 싣자면 함축성이 큰 중국글말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것은 바로 그 사람들이 낱말과 문장을 혼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함축성이 큰 말을 제목이나 표로 쓴다면 모르겠습니다만 문장에서는 오히려 지면을 더 잡아먹는 애물단지가 되는 줄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거짓말 같습니까? 벌은 준다고 하지만 체벌은 가한다하고 값은 싸다고 하지만 가격은 저렴하다고 하는 줄은 잘 알고 있을 줄 믿습니다. 그리고 △‘외롭다’라고 할 말을 ‘고독하다’라고 하더니 요즘은 ‘고독감이 느껴진다.’가 잦아졌고 △기업의 경영을 ‘맑힌다’라고 하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고 ‘투명하게 한다’라는 이조차 드문데 입만 열었다 하면 그저 ‘투명성을 확보한다’입니다. 우리는 이 보기에서, 함축성이 큰 임자말일수록 까다로운 풀이말을 불러들여 글월 전체를 더 길게 늘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언론은 좀 다를 것 같습니까? △1. 국정쇄신이 단행되어야 한다.→국정을 바로잡아야한다. △2. 실태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다→실태를 따져 본다고 한다. △3. 여야협상이 이루어져야한다→여와 야가 손을 잡아야 한다. 함축성이 커서 지면을 아껴준다는 중국낱말 때문에 글월이 얼마나 길어지고 어떻게 비틀리는가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중국글말은 글자 하나하나가 따로 뜻을 가졌고 늘 두자씩 또는 석자씩 패를 짓기 때문에 중국글로 된 것은 낱말이라고 해도 모두 겹씨입니다. 위에 있는 국정, 쇄신, 실태, 점검, 여야, 협상 같은 낱말 하나하나가 이처럼 다 겹씨인데도 우리 언론들은 그 것들을 다시 둘씩 셋씩 포개서 쓰면서도 잘못을 못 깨우치고 좁은 지면에 많은 정보를 실었다고 헛기침을 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중국글말을 쓰면 오히려 문장이 길어진다고만 하면서 ‘지면’이나 ‘함축성’보다 훨씬 크고 소중한 것을 뒤로 미루어왔는데 그 것은 중국글말 대신 우리 겨레말을 쓰면 말이 짧아 질 뿐 아니라 훨씬 쉬워진다는 말입니다. 그 것은 내가 올린 보기 글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러분 말은 쉬워야 합니다. 말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 몇 가지 있지만 말은 가장 먼저 쉬워야 합니다. 말이 길어져서 시간이나 공간을 많이 잡아먹더라도 말은 쉽게 해야 합니다. 보통 말에서 그러한데 하물며 말과 글을 얼굴로 해서 사람과 만나는 언론에 있어서야 다시 이를 말이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언론은 어떻습니까? 함축성에 속아 어려운 중국글말을 겹겹이 포개놓고는 정보를 많이 준 줄 믿고, 내 글이 읽는 사람한테 얼마나 어려운지 살필 줄 모르는 우리 언론이, 일찍 데려다 주었으니까 할 일 다 했다고 손을 털면서, 싸늘한 새벽 속으로 밀려 난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필 줄 모르는 밤차와 매우 닮아 보이지 않으십니까?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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