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전에 보지 못하던 '학교폭력 無 발생 00일'이라는 입간판과 '학교폭력 가해자 및 피해자 자진신고기간’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서울 전농중학교에서 정세영(52세)교사가 경찰청에서 주최한 '학교폭력예방과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서울지역 일진회들이 연합을 형성하고 있으며, 모의 성행위와 노예팅 등의 탈선을 넘어 조직 폭력화되어 가고 있다'는 폭로가 있고 난 후 나타난 현상이다.

학교폭력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가지 심각하다는 사실은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도 남았다. 학교폭력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정부가 학교폭력을 뿌리뽑겠다는 의지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XXX, XX, 나를 괴롭히는 인간들, 사람 좀 괴롭히지 마라, 내가 너희들 찔러 죽이려다 참았다..과학시간에 샤프를 훔쳐가서 지꺼(자기 것)라고 우기고..남이 자는데 입에다 먼지 묻은 과자를 입에 넣고..내가 귀신이 돼서라도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2002년 4월 경남 마산시 자산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해 일주일만에 숨진 황모(당시 15세)군의 아버지(51)가 지난 4월 13일 황군이 직접 작성한 유서 내용을 공개했다. '한 고교생이 학교폭력배에게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콩팥을 팔러 나섰다...'는 얘기며 중-고교생 35.4% 가 학교폭력을 경험한 바 있고 폭력에 못 이겨 자살한 이야기에서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다 학교가 이지경이 됐을까?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걱정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라면 더욱 그렇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러한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폭력을 뿌리뽑기 위해 법무부와 행정자치부 문화관광부 경찰청이 합동으로 폭력단속에 나섰다. 3월 4일부터 4월 30일까지 2개월간 '신학기 학교폭력서클 유입차단과 비행청소년선도 및 피해학생인권보호를 위한 '학교폭력 자진신고 및 피해신고기간'을 운영해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학교폭력이란 무엇인가? 학교폭력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학교 안팎에서 발생하는 금품갈취, 폭행, 구타 등의 신체적, 물리적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 욕설, 협박 등 심리적, 언어 폭력 행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렇게 심각한 학교폭력문제를 해결해야할 책임이 있는 교육부나 학교는 학교폭력을 '학생간에 일어나는 일'로 한정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물으면 폭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학교폭력은 학생들 상호간에 일어나는 폭력뿐만 아니라 학교체벌의 한계를 벗어나는 교사의 물리적 폭력과 언어폭력을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에게 책임을 지워 처벌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의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진단이 잘못 내려진 병을 고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폭력에 대한 개념정의부터 잘못된 폭력대책이란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학교폭력은 사회문제다. 개인의 도덕성보다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나타난 문제를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어 처벌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학교폭력을 행사하는 학생에게 형사처벌을 하고 입간판을 세우고 현수막을 걸고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스쿨 폴리스제가 운영되면 학교폭력이 해결될까? 학교폭력 전담교사를 두고 승진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이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교육부 통계에 의하면 전국의 1만580개 학교 중 73.27%가 전문상담실을 갖추고 있고, 전문 상담교사 자격증 소지교사만 해도 무려 2만4천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폭력전담교사까지 두고 상담실이며 상담교사까지 준비된 학교에 왜 학교폭력이 그치지 않을까? 그것은 학교폭력에 대한 진단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학교폭력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결함 때문이 아니다. 학교폭력문제는 가정환경과 교우관계 그리고 텔레비전을 포함한 상업주의 그리고 메스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합작품이다.

 이러한 원인을 두고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건수를 줄이겠다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스쿨 폴리스제가 그렇다. 학교란 교육을 하는 곳이다. 폭력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폭력문제가 비록 사회적인 문제일지라도 교육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폭력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경찰력을 학교에 투입한다는 것은 학교의 존재이유를 부인하는 조치다. 물론 실정법을 위반한 폭력을 덮어두자는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은 교육의 위기가 만든 경과다. 가정교육과 학교교육 그리고 사회교육이 그 기능을 못해 나타난 문제가 학교폭력이라면 감당하지 못한 사회화 기관이 그 기능을 회복해 폭력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진회 문제가 폭로 된 후 마치 전에 없던 학교폭력이 새로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언론이 엄살을 떨고 냄비언론에 장단이라도 맞추려는 듯 교육청이 폭력근절 공문을 보내 실적보고를 지시하고 입간판을 세우고 현수막을 붙이고.... 그런데 참으로 이해 못할 일은 모든 초·중등학교에 세워진 '학교폭력 無 발생 53일'이라는 글자가 어찌 그리 똑 같은지.... 학교폭력이 나타난 학교는 한 학교도 없다. 모든 학교가 '無 발생'이다. 물론 현상적으로는 나타나는 폭력건수가 줄어들기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되고 있는 게 아니다. 이제 언론이 잠잠해지고 한참동안 폭력이 드러나지 않으면 학교폭력문제가 해결 됐다는 듯이 조용해지겠지. 다음 사건이 또 터지기 전까지는....

/김용택(마산 합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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