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없던 시절 유럽인들이 희망의 땅이라고 여겼던 미국에 가려면 예외 없이 배를 타야 했다. 정치나 종교적인 박해 때문이든, 대기근을 피하기 위해서든 졸지에 난민이 된 그들은 수개월에 걸친 목숨 건 항해를 견뎌내며 대서양을 건너야 했다. 출입국관리소가 마련된 뉴욕항 앞 엘리스섬에 도착하기 직전 그들은 바다 위에서 난민들을 향해 횃불을 들고 서 있는 거대한 동상 하나를 마주치게 된다. 바로 '자유의 여신상'이다. 길면 6개월이나 걸렸던 지옥 같은 항해를 끝낼 즈음 마주친 자유의 여신상에서 난민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억압...
커플 메이킹 호텔이 있다. 이 호텔엔 45일만 머무는 게 원칙이지만 사냥으로 숲 속 '외톨이'를 한 명 잡으면 하루 더 머무를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남녀가 커플이 되면 2주간 2인실에서 지낸 뒤 바다에 떠 있는 요트로 옮겨 2주를 더 지내게 된다. 그동안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기거나 다툼이 벌어지면 아이가 배정되기도 한다. 모든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면 커플은 도시로 당당하게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만약 호텔에 있는 동안 짝을 만나지 못하면 그 사람은 평생 동물로 살아가게 된다. 외톨이로만 살 수 있는 숲이 있다. 호텔처럼 ...
주객의 방문이 이른 한적한 시간에 50대 중년 부인이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레 턴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는다. 한동안 말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가벼운 칵테일을 들이키다, 포스터의 '스와니강'을 들려줄 수 있느냐며 겸연쩍게 주문한다. 가끔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손님이 있을 때가 아니면 쉽게 틀 수 없는 분위기인지라, 눈치를 보는 사장에게 중년 부인은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어렵사리 다시 한 번 부탁을 한다. 거절할 수 없는 간곡한 모습에 사장은 무드음악의 선구자라 일컫는 만토바니 오케스트라의 '스와니 강'을 ...
마산역에서 마산항 1부두 사이의 마산임항선 철도입니다.마산임항선의 탄생 배경을 알기 위해선 마산역의 역사부터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일제는 1900년대 초반부터 한반도에 대대적으로 철도를 건설합니다. 그러면서 마산에도 역이 생기는데 그게 바로 마산역입니다.일제는 열차에 싣고 온 한반도의 곡물과 물자를 항구에 닿아 있는 배에 직접 실어 수탈해 갈 수 있도록 주로 역을 바닷가 근처에 세웠습니다. 마산역도 그런 곳 중 하나였습니다. 마산역이 세워진 해는 1905년이었고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포동 1번지 마산항 중앙부두 인근 바닷가였...
강건성세(康乾盛世)란 말이 있다. 청나라 전성기였던 강희제~옹정제~건륭제 치세를, 강희의 강자와 건륭의 건 자를 조합해 만든 단어다. 그런가 하면 이에 대응하는 말로 가도중쇠(嘉道中衰)가 있다. 제국이 쇠락하기 시작한 가경제와 도광제 때를 일컫는 부정적인 사자성어다.가도중쇠를 연 청나라 7대 황제 가경제(嘉慶帝, 재위 1796~1820)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살림이 내려앉는 꼴을 어쩌지 못한 채 지켜본 불운한(?) 황제로 꼽힌다.출발부터 그는 삐걱거렸다. 비록 황제에 오르기는 했지만, 아버지 건륭제가 죽지 않고 자리만 물...
"아무 쓸모짝도 없는 고물들을 왜 모으냐"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소년은 굴하지 않았다. 그 후 청년은 아버지 몰래 추수한 쌀 네 가마와 바꾼 카메라로 고향 산천을 찍었다. 또 박봉의 공무원 월급으로 생활을 꾸려주는 아내에게 감사하며 그는 기억 저편의 역사를 한곳에 모았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주남로 93-11. 주남저수지와 마주보고 있는 창원향토자료전시관. 이곳엔 소년의 손때 묻은 물품 2만 8000여 점과 기억의 잔상이 담긴 사진 30여만 장이 살아있는 타임캡슐로 자리 잡고 있다. 34년 공직을 함께한 카메라"저거 말똥가...
1. 부당거래(?) 아내가 외출하면서 과제를 남기는 거야.딸에게는 학교 숙제를 해놓으라고 했고남편에게는 집안 청소를 엄명했지. 몇 시간을 빈둥거리니 아내 올 시간이 다 됐더군.청소는 여전히 하기 싫었고.딸에게 거래를 시도했어. "아빠가 예지 숙제하고, 예지가 청소하면 안 될까?""아니!" 즉시, 단호하게 답이 나와 오히려 이유가 궁금했어.판단 근거가 있었을 것 아니야. "내 숙제는 아빠한테 쉽지만, 아빠 청소는 나한테 힘들어." 빠르고 적확한 판단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어. 2. 꼼수 딸이 돼지국밥을 잘 먹는 이유는 모르겠어...
독자 중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도 제법 있을 것이다. 10년 가까운 법정 투쟁 끝에 무죄로 판결 받은 이 사건으로 경상대학교 젊은 교수들이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 중심에 서 있었던 장상환(65) 경제학과 교수가 2월 말 정년퇴직을 한다. 는 경상대학교 교양과정에 개설된 강좌였는데 1994년 시작해서 2003년 최종 무죄판결을 받기까지 진보 학계와 공안기관의 첨예한 이론 대결이 벌어지기도 했다. "진주지역 토착 지배세력이 국가 공안기관을 동원해 공격했던 것"이라는 장상환 교수는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을 지내면서 '당신은 행...
귀농했다기보다는 고향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더 맞겠다. 도시에 살지만 농장이 도심과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여느 직장인이 출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집을 나서 농장으로 출근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진주시 집현면 봉강리에서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짓다가 지난해 현대식 시설하우스를 지어 독립해 토마토 농사를 시작한 김규오(41) 씨 이야기다.아버지가 들려주는 아들 이야기"오랜 교직생활을 하다 지난 2008년 퇴직했습니다. 고향인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데 마을에 남자가 없었습니다. 50여 가구쯤 되는데 할머니가...
"에 많은 사람이 열광했는데요. 드라마 속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건축물이 살기는 좀 편해지고, 그만큼 단열이나 기밀 성능은 좋아져 더 따뜻해지고 더 시원해졌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인간적인 정을 느끼던 그 공간들, 골목, 도시가 갖고 있던 특수한 이야기들이 없어져 버린 게 아닌가 합니다. 창원, 부산, 진주, 어디를 가도 똑같은 도시 형태, 똑같은 건축물이죠. 이런 것이 근대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긴 결과물이라면, 이제 인간의 본성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도시 전문가나 건축 전문가 역할이라고 봅니다."경...
사실 그는 환영받지 못한 손님이었다.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내정설이 나돌았던 그가 경남FC 지휘봉을 잡게 되자, 주위에서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9명의 쟁쟁한 스타급 지원자 가운데 유독 그가 선임되자, 감독 선정의 공정성까지 의심하는 이도 있었다.지난해 12월 2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 분위기도 '축하'보다는 '견제'의 시선이 많았다. 기자들도 감독의 취임 소감보다도 대표이사를 향해 선정의 공정성을 더 캐물었다.이런 분위기를 예상한 듯 김 감독은 의외로 담담했다."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경남 지역의 분위기를...
겨울 제철 음식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무와 미나리를 넣어 탕으로 끓이면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내는 물메기. 흔한 데다 못생긴 생김새 때문에 예전에는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바다에 버렸던 생선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꽤나 인기가 높다. 추운 겨울을 따끈하게 녹일 수 있는 매콤한 홍합탕, 상큼한 바다내음 물씬 풍기는 매생잇국, 못 생겨서 더욱 맛있는 삼식이 매운탕도 겨울이 제철인 별미 음식들이다.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맛볼 수 있는 겨울 제철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굴이다. 굴은 '바다의 우유', '사랑의 묘약'으로 불리며...
정형외과 전문의 장병유(57) 진주 세란병원장은 매일 오전은 진료, 오후는 수술로 일정이 빡빡하다.외래 진료를 줄이고 대외적인 활동에 집중하는 병원장도 있지만, 장 병원장은 "병원장이라고 대우받으면서 정진하지 않으면 퇴보한다"며 "많은 경험이 중요하다"고 밝혔다.막 오전 진료가 끝난 장 병원장을 점심시간을 이용해 진료실에서 만났다.'사'자 직업 원했던 아버지장 병원장은 경남과 연고가 없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학창시절 장 병원장은 경영학도를 꿈꿨다."아버지가 이북...
거제도에 들어서 처음 번화한 시가지가 펼쳐졌다. 도농 복합 형태의 도시들을 보면 대부분 중심이 되는 도시 주변 군 지역이 통합되어 이루어지는데 거제는 독특하게 세 개의 도시와 농촌 지역으로 어우러진다. 삼성, 대우 양대 조선소가 있는 신현읍과 옥포 일대 그리고 장승포시에 거제도내 면 지역들을 통합하여 거제시가 되고 시청을 지역적으로 치우친 장승포시가 아닌 이곳에 두었다. 거제 사람들이 보통 고현으로 부르는 구 신현읍이다. 숲 속으로 들어가면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한다 했으니 이내 시가지로 들어서지 않으련다. 사곡에서 누운티...
아너소사이아티(Honor Society)는 나눔문화를 실천하려는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입니다."우리 주변에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힘든 순간 누군가 내미는 작은 손이 꺼져가는 생명을 지키고 다시 세상을 살아갈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더 보태고자 제 인생 마지막 큰 결정을 한 것입니다."이진규(81) 김해 생명의 전화 이사장. 그는 지난해 11월 19일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 기부를 약정하면서 경남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 58번째...
'경상도愛빠지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다.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처음에는 관공서에서 운영하는 페이지인가 싶었지만 잠깐 페이지를 둘러보니 단번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지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운영된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었다. 투박하면서 빠르고 재미가 있었다. 경상도, 대구, 부산 지역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영상, 가봄직한 여행지, 흥미로운 UCC가 주로 올라온다. 페이지를 채우는 콘텐츠는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을 이 페이지만의 스타일로 멘트를 달아 올리는 것들이 많았다. 눈에 띄이는 점은 늘...
6월 25일 빰쁠로나에서 뿌엔떼 라 레이나까지 24㎞ 까미노를 걷기 시작하고 한동안은 잠을 잘 못 잤는데 오늘은 새벽에 언니(같이 길을 걷는 미국교포)가 깨워서야 잠에서 깼습니다. 그동안 피로가 누적되었나 봅니다. 모처럼 몇 시간이라도 푹 잤네요. 오늘은 처음으로 배낭을 먼저 보내고 걷기로 했습니다. 까미노에서는 택배처럼 다음 알베르게(순례자 숙소)까지 배낭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가 있어요. 물론 4~7유로 정도 비용은 들지만 간혹 너무 힘들거나 까다로운 길에서 한 번씩 이용할 수도 있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도 이용해 보려고요...
남해에 있는 바래길 이야기를 들은 건 지난해 11월이다. 10월에 작고한 남해해오름예술촌 촌장 불이 정금호 선생에 대해 취재를 하러 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문찬일 씨를 만났다. 문 씨는 힘든 젊은 시절에 불이 선생을 만나 새로 태어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이 선생과 여행을 참 많이 다녔는데 그때 남해섬 바다를 따라 걷는 길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남해가 제주나 지리산보다 못한 게 뭐 있노?" 그렇게 시작된 것이 남해 바래길이다.남해 바래길은 삶의 길어딜 다닐 때마다 그 지역 안내 지도를 찾는 버릇이 있다. 그렇게 ...
홍준표 주민소환 서명 36만 명.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숫자다. 주민소환제도가 도입된 이래 역사상 가장 많은 서명을 받아낸 이 '대 사건'의 배경에는 바로 '아줌마'들이 있었다. 학교 급식 지원 중단 이후 경남 전역에서 아줌마들은 자발적으로 지역 단위로 결집했고, 아이를 위해, 빼앗긴 권리를 되찾고자 최선을 다해 홍준표 도지사를 벼랑 끝으로 몬 상태다. 과연 이 '아줌마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아줌마의 분노를 보면서 기성 정당이나 사회운동이 배워야 할 점은 어디 있을까? 이것을 알기 위해 아줌마들이 잘 결...
지난 2012년 오원춘 살인사건 때 경찰은 112신고 대응 미숙으로 지탄을 받았다. 이후 신고전화가 끊기면 경찰이 다시 거는 '콜백'도입 등 112시스템이 대폭 개선되었다. 박소현(42) 경위는 경남경찰청 112종합상황실에서 2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다. 고도의 판단력·집중력을 필요로 하면서도 신고자를 향한 친절함 또한 잃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 때문에 박 경위는 매서운 눈빛과 부드러운 목소리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순간의 판단에 생명 왔다 갔다경남경찰청 112종합상황실은 청장실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365일간 1초도 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