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 '곳간 텅텅'비어…신규사업 예산편성 봉쇄
김경수 인수위 "재정 정책방향 대전환 단계별 투자"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치적으로 내세운 '채무 제로' 정책의 실상이 드러났다.

채무는 없는데 부채가 쌓였다. 채무는 갚아야 할 시기가 정해진 빚이고, 부채는 갚는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빚을 말한다. 홍 지사가 '채무 제로'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동안 도는 재원 부족에 시달렸다. 써야 할 돈을 빚 갚는 데 써버리고, 정작 써야 할 곳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쓸 돈이 없는 셈이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인수위원회인 '새로운 경남위원회'가 5일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경남도 재정상황이 비정상적"이라며 그 원인으로 '채무 제로' 정책을 꼽았다. 이은진 공동위원장은 "빚을 많이 갚았다고 하면, 곳간에 쓸 돈이 마련돼 후임이 와서 자기 사업을 충분히 펼칠 수 있다는 개념으로 이해되는 게 상식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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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경남도민일보DB

이 위원장은 "그간 도가 필수로 편성해야 함에도 재원이 부족해 매년 2000억~3000억 원 예산을 반영하지 못하고 미뤄왔고, 올해는 이런 예산 규모가 5000억 원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쓸 수 있는 추경예산 재원이 3600억 원 정도인데, 신규사업은커녕 애초 편성하지 못한 예산만 충당하려고 해도 1200억 원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채무 제로, 알고 봤더니 = 홍 전 지사는 2013년 2월 채무감축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2017년까지 채무를 절반 수준으로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홍 전 지사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애초 계획보다 앞당겨 2016년 6월 채무 제로를 달성했다. 이를 자축하며 도청 정문 앞에 채무 제로 기념 나무도 심었다. 그러나 단기간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고 비정상적인 재정 운영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새로운 경남위원회가 그 근거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반드시 편성해야 할 예산을 차기로 넘겼다. 시·군에 대한 조정교부금, 지방교육세, 중앙지원사업의 도비 부담분 등 법정 의무 경비임에도 편성하지 않은 예산 규모가 4801억 원에 이른다. 둘째, 양성평등기금·환경보존기금·통일협력기금 등 12개 기금을 폐지하면서 발생한 재원 1377억 원을 채무 상환에 썼다. 기금 활용 사업이 일반회계로 전환되면서 사업 지속가능성과 안정성이 낮아졌다. 셋째, 지역개발기금 누적 이익금 2660억 원을 전용했다. 도 재정 금고 역할을 하는 지역개발기금을 채무 상환에 활용하면서 고유 목적인 공공투자 확대에 써야 할 활용 여력이 떨어졌다. 넷째, 재원이 부족한데도 꼭 필요한 지방채를 발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도는 지난해 예산편성 과정에서 재원 부족으로 주요 사업 예산을 편성하지 못했다. 재해위험지구 정비·하천재해예방 사업·경남로봇랜드 조성사업 등 투자사업은 애초 편성액보다 적게 반영됐고, 시·군 조정교부금과 지방교육세도 일부만 편성됐다.

이 위원장은 "비정상적인 재정 운영으로 말미암아 경남의 잠재성장동력이 약화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2010년 이후 경남 실질경제성장률이 전국 평균을 밑돌기 시작했고, 그 격차가 커지고 있다"면서 "이런 때일수록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경제활력을 높일 대책을 세워야 했지만, 채무 제로를 달성하려고 재정 긴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재정정책 방향은 = 새로운 경남위원회는 "도 재정운영 비정상을 정상화해야 한다"면서 "도 재정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채무 제로 유지가 아닌 건전한 수준의 부채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재정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김경수 지사에게 권고했다.

현재 편성 중인 추경에서 지역개발기금 1500억 원을 차입해 우선 예산 편성 부족분을 충당하고, 내년 예산편성 시에 재원마련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도의 실질 성장 수준이 잠재성장 수준보다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를 해소하려면 성장동력 확충에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채무 제로 정책은 재정 건전성을 높이려 한 노력에서는 평가할 만하다"면서 "그러나 '채무'와 '부채'에 대해 도민한테 소상히 밝히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경남도는 채무 이외에 부채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5000억 원 정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김 지사가 취임하고 나서 첫 번째 추경에서 가용 예산이 없는 상황"이라며 "재정 건전성에 대한 전문가 평가는 끊임없이 하면서도 경제활성화와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한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도민의 삶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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