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열전] (25) 경남체육회 우슈쿵푸팀 제응만 감독

'미생'의 길을 걷던 그는 짧았던 선수 시절을 뒤로하고 지도자로 변신해 지금은 '완생'의 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다.

경남체육회 우슈쿵푸팀 제응만(47) 감독은 또래보다 늦게 운동에 뛰어들었다.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자 일찍 지도자로 변신했고 우슈쿵푸를 배우려는 선수가 매우 제한적임에도 국가대표 2명, 국가대표 상비군 1명, 청소년 국가대표 4명을 발굴해냈다.

제 감독의 어린 시절은 소심하고 작은 소년이었다. 지금도 먼 친척들은 그가 운동부 감독으로, 체육관의 관장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라고.

그는 "초·중학교 시절 과제발표를 할 때도 늘 떨면서 작은 목소리로 발표를 했다. 음악 시간이 가장 큰 고역 중 하나였다"면서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탓에 너무 떨어 실기음악 발표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고 웃었다.

내성적이었던 제 감독이 우슈와 처음으로 맺은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소림사와 영화배우 이연걸이 크게 인기를 끌던 당시 제 감독이 다니던 진주기계공업고등학교에 쿵푸('쿵후'의 관례적 표기) 시범단이 찾아왔고, 그 이후로 그의 인생이 달라지는 변환점을 맞았다.

11년째 경남체육회 우슈쿵푸팀을 맡고 있는 제응만 감독은 "고등부에서 일반부로 곧장 넘어올 수 있는 선수를 찾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김구연 기자 sajin@

제 감독은 "난생처음 하고 싶은 것이 생겨 부모님께 사정을 설명했다. 막내아들이 부모님께 뭘 하고 싶다고 부탁을 한 적이 없었던 까닭에 선뜻 쿵푸를 배울 수 있는 체육관에 수강신청을 해줬다"면서 "내 인생의 커다란 변환기"라고 웃었다.

체육관에 들어선 뒤 성격도 달라졌다. 소심했던 성격도 활발해졌고, 남 앞에 나서는데 자신감도 생겼다. 다만, 너무 늦게 운동에 뛰어들어 선수로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뛰어나지도 않았고 , 선수로서 뚜렷한 목표도 없었던 그는 선수라는 타이틀을 일찍 내려놓고 후학양성을 위해 체육관을 차렸다.

제 감독의 나이 25살. 일찍 선수생활을 마감한 뒤 체육관장으로서 묵묵히 선수들을 키워냈다. 하지만 좋은 자질을 지닌 아이를 발견해도 학부모의 반대가 만만찮아 아쉬움을 달랜 적이 많았다.

그는 "괜찮은 애가 나오면 선수로 키우려고 노력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학부모는 운동시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히 비인기종목의 경우는 엘리트 선수로 키우려 하지 않는다. 요즘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면서 "학교와 학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놀면서 풀려고 체육관을 찾는 아이들은 있지만 선수로 성장하려고 이곳을 찾는 이들은 없다"고 고충을 전했다.

비관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는 후학양성에 힘을 쏟아 빼어난 선수를 많이 발굴했다.

제 감독의 주종목은 투로다. 투로(표현종목) 선수를 키워내는 데는 자신있지만 산타(격투종목)는 부족하다고 자평한다. 때문에 중국 코치를 불러 1년에 한 달꼴로 산타 종목 선수의 지도를 부탁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타국 코치에게 제자의 지도를 맡긴다.

제 감독은 "경남체육회 감독 부임 당시에도 체육회에 '투로는 자신있지만 산타는 자신없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체육회에서 나를 믿고 팀을 맡겨줘 내가 지닌 역량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얻어내고자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05년부터 경남체육회 감독으로 재직한 그는 11년째 한 팀을 지도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가한 채찍 덕분에 그가 경남체육회 감독으로 부임한 뒤 경남은 전국체전 우슈쿵푸 종목에서 늘 상위권에 입상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진주에서 열린 '제91회 전국체육대회'에서는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기쁨도 맛봤다.

제 감독은 산타 종목의 박승모(23)와 투로 종목의 유원희(22)에 대한 기대가 크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박승모는 심판으로 국제대회에 나섰던 제 감독이 스카우트한 인재다. 고교 졸업예정 선수였던 박승모를 경남체육회 소속으로 영입했고, 기량이 일취월장하며 고등부에서 바로 일반부로 와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유원희도 박승모와 비슷하다. 경남체육회 입단 첫해 그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3위에 오른 데 이어 올해는 태극마크도 거머쥐었다.

제 감독은 "기존에 잘하는 선수를 영입하는 건 돈의 논리에 맞물린다. 돈만 많이 주면 스카우트가 수월하다. 하지만 잠재력을 보고 고등부에서 일반부로 곧장 넘어올 수 있는 선수를 찾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도자로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그가 키워낸 최고의 인재는 딸 제가영(19)이다.

기어다닐 때부터 체육관에서 봉을 돌리는 소리, 검이 내는 특유의 소리를 듣고 자란 그는 2011년 열린 '제6회 아시아청소년우슈선수권대회' 여자부 검술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일약 우슈쿵푸계 스타로 떠올랐다. 이듬해 열린 '제4회 세계청소년우슈선수권대회'에서는 여자부 창술 부문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아시안게임 전망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부상을 당하면서 출전하지 못했다.

제 감독은 "무술하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크다보니 딸이 자연스레 우슈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 때문인지 운동을 시작한 뒤 빠르게 습득했다"면서 "국내에서는 여자부 2인자지만 나이가 어려 대한우슈쿵푸협회 차원에서 국제무대 출전을 많이 권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딸과 함께 그의 아내도 자랑스러운 제자(?)다. 결혼하기 전부터 체육관 일을 도와주던 제 감독의 아내는 이제는 경력 20년을 자랑하는 우슈쿵푸 공인 4단의 유단자다.

"제가 대회 출전이나 심판을 보러 떠나는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집사람이 관장으로서 관원을 돌봐요. 3급 심판자격도 따서 진짜 전문가가 됐죠."

후학양성, 스카우트와 함께 그가 심혈을 기울이는 것 중 하나는 심판이다. 그는 우슈쿵푸 대회 투로와 산타 종목에 심판으로 많이 나서면서 국제심판자격증까지 따냈다.

제 감독은 "예전에는 두 종목 국제심판 자격을 지닌 분들이 국내에 여럿 있었지만 지금은 국내 지도자 중 두 자격을 유지한 감독은 나뿐"이라고 말했다.

국제심판으로 중국과 활발한 교류를 해 온 제 감독은 해마다 선수단을 이끌고 중국 전지훈련을 떠난다. 우슈쿵푸 종주국인 중국은 한국보다 뛰어난 기량을 지닌 선수들이 즐비하다. 때문에 그들과 함께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다고 한다.

경남우슈쿵푸협회 전무이사인 그는 경남체고 우슈부가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바란다는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어렵게 고등부 우슈팀이 창단됐고 열악한 환경에도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을 위해 어른들이 합심해서 어린 제자들을 잘 이끌 수 있게 힘을 합쳤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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