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NMD 지지 강력히 요구했다"


이정빈 외교장관이 23일 이례적으로 한미·한러정상회담 교섭과정의 뒷얘기를 공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장관은 이날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언론재단 초청간담회에서 강연한 뒤 참석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한미 정상회담 교섭과정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NMD(국가미사일방어) 추진에 찬성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우리가 동의해주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이 방한 당시 국회연설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문제 (언급을) 준비했으나 우리가 이를 없앴다”는 요지로 발언했다.

외교관례상 민감한 정상회담의 교섭과정을 공개하는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특히 외교 총사령탑의 입에서 공개적으로 나왔다는 점이 주목된다.

외교부는 파문이 확산되자 “미국이 NMD 추진에 찬성해 줄 것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하면서 “백악관이 디브리핑(정상회담결과 사후설명)시에 `미국 정부가 NMD에 관해 한국 정부의 지지를 요청하지 않았고, 한국이 지지한 적도 없다'고 밝힌 것을 부연설명하는 과정에서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파문진화에 분주했다.

또 이 장관도 오후 기자간담회를 자청, 자신의 오전 강연내용 중 문제발언의 표현상 잘못을 시사하며 언론의 협조를 구하는 등 부심했다.

하지만 외교부의 이같은 공식부인에도 불구하고, 실제 미국은 우리측과의 한미정상회담 교섭과정에서 NMD에 대한 찬성을 강력히 요구했고, 미국이 우리측에 제시한 공동발표문 초안에도 관련 대목이 들어 있었으나, 막판교섭을 통해 우리가 내용을 수정시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쨌든 이 장관 발언의 사실여부를 떠나, 한 나라의 외교를 책임지는 수장이 10~20년 전의 일도 아니고, 바로 한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정상회담의 막후교섭 상황을 얘기한 것은 경솔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부시 행정부 출범 후 한미간 공조체제 확립이 시급한 상황에서, 자칫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내용이 공개된 데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우리의 국력이 높아진 상태에서 과거 일방적인 열강주도의 외교에서 벗어나 미·러 등 주변 열강들의 요구를 일정 정도 `차단'했다는 점에서 `외교적 독자성'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 사령탑이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편 내주 개각을 앞두고 교체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이 장관의 발언 배경도 관심이다.

`실언'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민감한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는데 우선 의문이 간다. 일각에서는 개각을 앞두고 외교안보팀의 교체가능성이 거론되자 지금까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성과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이 장관이 `큰 마음'을 먹고, 앞으로 주변 4강의 틈속에 있는 우리 외교가 나가야할 정책방향을 시사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무엇이 정확한 배경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이날 발언이 이번 개각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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