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은 신임하는 재상 이림보를 보자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어서 오시오, 이승상. 그렇지 않아도 그대와 의논할 일이 있었는데…….”

그만큼 나약해진 탓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런 현종도 집권 초기인 즉 개원(開元)의 치(治) 시절에는 명민한 군주로 불렸다. 명재상 한휴와 정치상의 문제를 놓고 한바탕 논쟁을 벌이고 그가 떠난 뒤 황제는 거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묵상에 잠긴 일이 있었다.

이를 본 환관이 한휴 때문에 피로해진 것이라 착각하고 이렇게 아뢰었다.

“한휴가 재상의 자리에 오른 후부터 폐하의 용체가 많이 야윈 듯합니다. 사사건건 폐하께 따지고 드는 그런 귀찮은 한휴를 파직시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현종은 이렇게 대답했다. “짐은 약간 야위었는지 모르겠지만, 천하의 백성들은 살찌고 있다. 소숭이라는 관리는 정사를 논할 때 사사건건 짐의 뜻에 따르지만 그가 돌아간 후에는 짐의 마음은 항상 상쾌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한휴는 다르다. 짐과 논쟁을 자주 벌이지만 마음은 언제나 상쾌했다. 일이 원만히 해결되었기 때문이었지. 재상의 일이란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이지 짐을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토록 사람을 잘 알아보던 명군이었다. 그러나 황후 무혜비가 죽고 나서는 너무나 멍청해진 현종이었다.

시중들던 환관 고역사(高力士)에게 현종은 어느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어차피 지금은 태평성대 아닌가. 국정은 이림보에게 모두 맡기고 짐은 좀 쉴까 싶은데…….”

깜짝 놀란 고역사가 급히 간했다.

“막중한 천하대사를 가벼이 신하에게 맡겨서는 안됩니다. 만일 이림보가 그로 인해 힘을 얻게 되는 날, 폐하께서는 그를 누르기 힘들 것입니다.”

현종의 얼굴에는 불쾌감과 화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 요즘의 현종이었다.

이림보는 예의 그 달콤한 미소를 입가에 가득 물고는 현종에게 아뢰었다.

“폐하, 절세의 미녀가 있는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삼천의 후궁이 있지만 마음에 드는 여인이 하나도 없소.”

현종 역시 가볍게 대답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일 잔치에 황궁으로 부르겠사오니 꼭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폐하께서 반드시 흡족해 하실 겁니다.”

“마음대로 하시구려.”

그 때만 해도 옥환이 현종의 며느리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것은 옥환과 비밀한 음모를 진행시키기 위한 밀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미래의 양귀비가 되는 옥환이 현종 황제 앞으로 불려왔다.

“오, 그대는 누구인가! 어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가! 그 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가! 짐이 연수 쉰 여섯이 되도록 그대 같은 절색은 아직 본 일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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