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섬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서로의 손을 꼭 부여잡은 모습이 정겹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발걸음만 재촉한다. 제법 높은 지대에서 바라보이는 등대섬의 전경은 정말 아름답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이국적인 풍경이다. 실제로 모 제과 CF를 찍기도 했었다.
제법 넓은 초원에 이르니 ‘등대섬으로 가려면 이 계곡 길을 따라 가라’는 푯말이 나온다. 이제부터는 정말 만만치 않은 코스다. 조심조심 해서 계곡을 내려오니 해안이다. 발 아래에는 큼직하고 깨끗한 몽돌이 가득하다. 자세히 보면 거제 학동 같은 데에 널려있는 검은색 몽돌이 아닌 황톳빛을 띤 몽돌이다. 바닷물은 이보다 더 깨끗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시계를 보니 바닷길이 열리려면 아직도 1시간이나 남았다. ‘소매물도의 모세의 기적’을 얼마나 보고 싶었기에 이렇게도 빨리 내달려왔는지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난다. 이곳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에는 하루 두차례 썰물을 이용해 바닷길이 나는데 대략 5시간 정도 길이 난다. 정확히 10시 22분이 되니까 길이 열리는데, 그 전에 거센 물살을 헤치며 지나가는 사람도 간혹 있다. 양쪽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이색적이면서도 아름답다는 생각에만 젖어 무리하게 건너다가는 위험하다. 물살이 세기 때문에 그대로 휩쓸려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70~80m 되는 바닷길을 건너고 나면 등대섬에 도착한다. 위로 하얀 등대가 예쁘게 서 있다. 지금은 숙소를 새로 짓고 있는 중이어서 완벽한 모습은 아닌데 그 부분만 빼 버리면 정말 아름답다는 소리가 절로 난다.
비탈길을 오르는데 나무기둥으로 출입금지구역을 그어놓았다. 위험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놓았는데 몰래 억지로 뚫고 가보면 아찔하기 짝이 없다. 등대섬은 등대 바로 아래쪽, 그러니까 섬의 동남쪽이 특히 아름답다. 위험을 무릅쓰고 깎아지른 절벽의 비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출입금지구역을 벗어났는데 한걸음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른다. 얼른 카메라에 담고는 돌아선다.
길을 되돌려 다시 해안가로 나오니 물이 상당히 빠져있다. 그러고보니 양쪽으로 ‘몽돌해수욕장’이 열린 셈이다. 수영을 하거나 물장구를 치는 사람들로 넘실거린다. 옆쪽 갯바위에서는 낚시에 매료된 사람들로 가득하다. 맞은편 소매물도의 아찔아찔한 갯바위에서도 군데군데 낚시를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은 배를 빌려 타고 꼭 한번 둘러보아야 한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섬을 한 바퀴 둘러보아야만 볼 수 있는 바위며 절경이 많기 때문이다. 깎아지른 절벽과 저마다 울룩불룩한 육체미를 자랑하며 바위들이 줄줄이 늘어서있다. 슬픈 전설에 젖은 남매바위부터 용바위·부처바위·촛대바위 등 바위 입상이 바다를 바라보고 서있다. 특히 부처바위 옆에는 3개의 암벽 봉우리가 솟아 있고 그 아래에 높이 7m, 너비 5m 정도의 굴이 뚫려있다. 그 천장에 ‘서불과차(서불이 여기를 다녀갔소)’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해서 글씽이굴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암벽을 글씽이벽 혹은 세글씽이라고 부른다. 그러고보니 중국 진시황제가 서불이라는 사람을 보내 약초를 구해오게 했다는 ‘서불과차’ 전설은 제주도 서귀포에도, 거제 해금강에도, 이곳 통영 소매물도에도, 그리고 전남 여러곳에도 널려있는 것을 보면 이젠 별로 재미가 없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섬에서 뭘할까 고민을 할 수 있는데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름다운 등대섬과 소매물도의 절경을 벗삼아 밝은 대낮을 보냈다면 밤에는 민박집에서 혹은 선착장 주위에서 보내면 된다.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는 민박집 주인이나 같은 민박집에 있는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가져온 음식이나 만든 음식을 안주 삼아 소주잔 기울이며 소매물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매물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네. 박사학위 줘야겠다’는 모 CF 카피처럼 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소매물도에는 대략 120년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거제 등지에서 소매물도에는 풍부한 해산물이 있어 먹고 살기에 충분하다는 소문을 듣고 넘어와서 살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많이 정착하기 시작해 한때는 33가구 151명의 규모까지 됐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외지인 몇몇에게 땅과 건물이 팔리면서 지금은 대다수가 섬을 떠나고 15가구 41명만이 섬을 지키고 있다.
너무 오래 이야기만 하고 소주잔만 기울이다보면 폭주를 하기 쉽다. 그럴 때는 낚시를 하면 된다. 소매물도에는 여러 가지 고기들이 많이 잡히기 때문에 낚싯대를 꼭 챙겨오는 것도 빼먹으면 안되는 것이다. 즐거운 마음과 긴장된 마음을 함께 갖고 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던지는데 금방 입질이 시작된다. 잘 하지 못하는 솜씨지만 이 정도의 입질이면 회도 쳐서 먹고 매운탕도 넉넉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섣불리 든다. 하지만 실력이 없어서인지 못먹는 고기만 몇 마리 잡힐 뿐이다. (사실 낚시는 아침에 잘 된다고 한다.)
밤이 꽤 깊은 시각인데도 여행을 온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 생각을 않는다. 대략 새벽 3~4시가 되니까 거의 잠자리에 든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운 모양이다. 하지만 내일을 위해서는 잠을 청해야 하니까 눈을 감기 시작한다.
소매물도를 떠나는 발걸음은 잘 떼어지지 않는다. 김범기 기자는 “태풍이라도 와서 한 일주일정도 섬에 고립되어 버리면 좋겠다”며 농담을 한다. 정말 그렇다. 누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소매물도의 낭만과 아름다움을 가득 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한결 같아 보인다.
마을 맞은편에 방풍림처럼 버티고 서있는 바위섬이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다. 삼여도라고도 하고 가래여라고도 하는데 가래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여는 바다위에 불룩 솟아있는 암초 같은 것인데 보는 각도에 따라서 바위가 2개에서 7개까지 차례로 변하는 게 정말 신기하다. 떠나려는 아쉬움에 대한 마지막 배려처럼 다가온다.
소매물도를 벗어난 배는 힘차게 나아간다. 1박2일간 소매물도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속으로 마지막 인사를 해본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다음에 꼭 다시 들를게요. 그 때도 고추장 좀 빌려주시고 반갑게 맞아주세요. 건강하세요.’ 혼잣말이기는 하나 아쉬움에 살며시 눈물마저 글썽여진다.

▶ 여행정보

지난주 교통편과 숙박편에 이어 꼭 알아두어야 할 정보들로는 음식과 낚시 준비 등이 있겠다. 소매물도에는 특별한 식당은 없다. 산장에서 한끼 5000원하는 음식을 팔기는 하는 데 그냥 해먹는 것이 더 운치있고 좋을 듯 하다. 상점은 마을 아래쪽에 하나가 있다. 섬이라는 특성 때문에 시중가보다 비싸지만 그렇다고 바가지라는 느낌은 안든다. 대략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소주 한병이 여기서는 2000원에 팔고 있다. 다른 것도 두배 가격이라고 보면 되는데 웬만한 것은 있기 때문에 급할 때 이용하면 유용할 듯 하다. 여기서 구입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미리 준비를 해와도 된다. 상점에서는 담배는 팔지 않는다. 상점에서 조금 오른쪽 위에 있는 집에서 할머니가 담배(THIS 한 종류)를 팔기는 한다.
그리고 낚시를 할 계획이면 출발전에 통영항 주위 낚시점에서 미끼와 기타 장비를 구입해와야 한다. 섬에는 낚시와 관련된 물품이 전혀 없다. 그래서 미끼가 떨어지거나 바늘과 추가 없어 낚시를 접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배는 6인승짜리를 3만원에 빌릴 수 있다. 같은 민박집에 있는 사람들끼리 인원을 맞춰 배를 타고 섬을 둘러보는 것도 빼놓으면 안되겠다. 또한 여벌의 옷을 준비하는 것은 필수다. 전기는 자가 발전이라 오후 11시면 끊긴다. 하지만 휴가철에는 조금 더 공급된다. 부정기적이지만 거제 와현 등지에서 소매물도로 오는 배도 있다. 또한 가끔 배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서둘지 말고 예약을 해둔 민박집에 전화를 하면 친절한 주민들이 뭍까지 데리러 오기도 한다. 물론 감사의 뜻으로 웃돈을 조금 올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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