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호를 파던 병사들은 백색 점토질의 흙인 백고니를 발견했다. 신중하게 파내려가는데 원무처장이 성냥을 그어 담뱃불을 붙이려던 찰나 불똥이 시추구멍에서 솟구쳐나온 기체와 만나 한덩어리의 불꽃으로 변했다. 시추구멍의 화염은 뱀처럼 솟구쳤고 병사들은 거대한 폭발물이 있을지 모른다고 판단, 지뢰탐지기를 설치했으나 폭탄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시추구멍에선 쉭쉭 소리를 내며 기체가 솟구쳤나. 늙은 기술자가 말했다. “혹시 무덤을 만난 것은 아닐까요”라고.’

1971년의 중국은 문화대혁명을 거치는 격변기였다. 책은 중국 5000년 역사의 중대한 발굴을 다룬 것으로 방공호를 파다가 역사적 발굴을 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발굴기라고 하면 발굴담당자가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거나, 딱딱한 내용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되는 바가 없지 않지만 책은 마치 소설을 읽듯, 생생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효과까지 주면서 쓰인 고고학발굴 다큐멘터리다.

당시 후퇴도 전진도 할 수 없던 해방군 366병원은 피신할 방공호를 만들기 위해 마왕퇴(馬王堆)라고 불리는 구릉을 파내려가서 사람들이 만난 것은 전쟁의 폭발이 아닌 고고학의 발견이었다. 무덤은 총 3기가 발견됐다. 발굴을 막 시작할 땐 당나라 말기 오대십국시기 초나라 왕 마은과 그의 아들 마희범의 무덤일 것이다, 도굴꾼들이 이미 다 파헤쳐 내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등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덤의 주인은 서한시대 장사국의 대후(大侯·일종의 왕) 이창(利倉)이라는 사람의 가족무덤이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발굴된 1호묘는 이창의 부인으로 기원전 168년에 사망한 신추(辛追)라는 여인이, 2호묘엔 장사국의 초대왕이었던 이창이, 3호묘엔 그 아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2100년동안의 잠에서 깨어난 여주인의 모습은 이집트의 미라보다 더 완벽했다. 미라는 내장을 제거하고 시체를 방부처리했었지만 키 154㎝에 몸무게 34.5㎏으로 밝혀진 이 귀부인은 옅은 황갈색 피부에 탄력도 있었으며 관절도 움직였다. 치아도 19개나 있었고 장기 전부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해부결과 생전에 동맥경화증을 앓았고 사인은 심근경색증으로 추정되었다. 이 발굴은 역사의 공백을 메우고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아주며 지적쾌감을 주는 고고학의 매력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고 묘사해도 손색이 없었다.

출토유물만도 무려 3000점. 칠기가 500점, 무기 38점, 죽간과 목간 922점, 목용 266점, 죽기 100여점 등이었다. 이외에도 음식물과 약초, 청동으로 만든 솥과 거울, 거북모양의 술잔, 나무로 만든 빗, 뿔로 만든 빗과 칼, 반양전과 금병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유물이 쏟아졌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단에 그린 4점의 백화(帛畵)를 비롯해 3호묘에서 출토된 비단에 쓴 20여종 10여만자의 백서는 그 내용이 고대의 철학과 역사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중엔 실전(失傳)된 것으로 여겨졌던 <노자> <역경> <전국책> 등 현행본과 다른 귀중한 고전들이었다.

여하튼 1972년부터 3년간 이뤄진 발굴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성, 방공호를 파다 신기한 현상을 간과해버리거나 묻어버리지 않고 책임있게 일을 처리해가는 과정 등이 기자출신 저자의 살아있는 문체로 빛을 발해 더욱 생생하다. 중국의 역사에 별 흥미가 없는 독자라도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좇는 지적인 갈구의 현장을 따라가보는 재미가 있다. 웨난 지음. 이익희 옮김. 1권 392쪽·2권 421쪽. 일빛. 각권 1만2800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