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같은 초원과 바위서 펼쳐지는 수채화같은 한려해상수도 풍경

매주 취재를 다니면서 이번주처럼 가슴이 설레고 벅찬 적은 처음이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섬’ 소매물도. 언젠가는 꼭 가봐야지 하는 마음을 항상 먹고 있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루고 미뤘었다. 마침 여름특집으로 마련했던 ‘바닷가 투어’가 끝나 1박2일 일정으로 계획을 잡고 출발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자치행정부 김범기 기자가 휴가를 이용해 함께 동행할 수 있어서 심심하지 않은(?) 여행이 될 수 있었다.
통영항에서 소매물도로 가는 첫 배는 오전 7시에 있다. 아침이 어렴풋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여객선터미널과 선착장 주위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컵라면을 먹기도 하고, 때론 소줏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배가 뜨려면 아직 1시간 넘게 남았는데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은 배낭에서 먹을 거리를 꺼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뿐. 물론 벌써부터 통영항을 배경으로 카메라에 자신들의 모습을 담기에 바쁜 사람들도 있다.
드디어 7시. 통영에서는 무려 26km 가량 떨어져 있는 소매물도를 향해 배가 출발을 한다. 너댓개씩 울러메고 손에 든 짐들을 자리에 대충 던져놓고 배 뒷편으로 나가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멀어져가는 통영항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본다. ‘잘 갔다 올게. 보고싶어도 참아야 돼’하며 마치 이별을 하는 느낌이 든다.
배 양 옆으로는 큰 섬, 작은 섬들이 하나둘씩 지나간다. 욕지도행 여객선과 한산도행 여객선은 조금 먼저 출발했는데도 어느새 소매물도행 배보다 뒤쳐진다. 많은 섬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비진도 모래해변 등도 간간이 보여 전혀 심심하지가 않다. 배를 탄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도착했단다. 직행이라서 그런지 장사도와 대매물도 등을 거치지 않고 와서 1시간 밖에 걸리지 않은 모양이다. 여객선 선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거쳐서 오면 1시간 30분 조금 넘게 걸린다고 한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섬을 찾은 여행객들을 자신의 민박집으로 데리고 가려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잘생긴 총각’이니 ‘예쁜 처자’라는 말을 써가며 불러댄다. 한꺼번에 두서너 팀을 데리고 가려는 욕심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한 팀 정해지면 손을 이끌고 집으로 향한다. 정말 욕심없는 모습에 일단 첫인상이 좋게 느껴졌다.
미리 전화를 해놨던 이장님이 마중나와 있다. 강봉율 이장은 살고 있는 집 외에 두 채의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민박집에 도착하니 미리 민박하고 있던 사람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있다. 침이 넘어갈 정도로 맛있는 냄새에 짐을 팽개쳐놓고 달려들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낯이 설다. 짐도 풀지 않고 이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니 들을만한 이야기가 제법 많이 나온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소주 한 잔 하면서 듣기로 하고 등대섬에 대해 물어보니 오전 10시께 소매물도에서 등대섬으로 건너갈 수 있는 ‘바닷길’이 열린다고 한다. 출발전에 컵라면을 먹었었기에 배도 그렇게 고프지 않아 일단 ‘소매물도 탐사’에 들어갔다.
매물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매물도는 말꼬리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마미(馬尾)섬으로 불리다, 매미섬을 거쳐 매물도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흉년이 들 때마다 매물(이 지역에서는 메밀을 매물로 불렀다고 한다)만 먹고 살았기 때문에 매물도라는 이름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등에 업고 민박집을 나선다. 억지로 길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등대섬까지 가는 길은 오직 한 길이다. 3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면 된다. ‘소매물도에서 웬 등산?’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꽤 가파른 길을 30여분은 걸어야 반대편 해안까지 갈 수 있다. 그러니 슬리퍼나 굽 높은 신발을 신으면 큰 일 난다.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을 걷다가 엉덩방아를 찧기 십상이고 그나마 다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뒷산 중턱에 이르니 96년에 폐교된 매물초등학교 소매물분교가 보인다. 새단장을 해 지금은 ‘힐 하우스’라는 이름을 걸고 야영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자기 집 손님이 아니면 일체 출입을 할 수 없다는 냉정한 푯말이 보인다. 지난해 정준·홍경인·여현수가 주연하고 박희준 감독이 연출한 영화 ‘남자 태어나다’의 주 촬영지가 소매물도이고 이곳 폐교인데도 한번 들어가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 왠지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셔버린다. ‘남자 태어나다’는 촌놈 3인방의 대입 도전기를 다룬 영화인데, 아름다운 소매물도의 풍광을 배경으로 하고도 크게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길을 계속 따라들어가니 갈랫길이 나온다. 아래로 가면 해안가에 이르게 되고, 위쪽으로 올라가면 무너진 등대터에 닿게 된다. 예전에 세관으로 사용됐다고 하는데 어떤 목적으로 쓰였는지는 의문이다. 통영에서는 유인 등대가 있는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니 밀수나 밀항을 감시하지 않았냐는 이야기도 들린다. 세관에 들렸다가 가도 내려가는 길이 또 있으니 다시 돌아가야 된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가장 높은 곳에서 한눈에 주위를 둘러볼 수 있기 때문에 더 낫다.
바위와 넓은 초원이 군데군데 자리를 하고 있는데 넓은 시야에 들어오는 한려해상수도의 쪽빛 바다와 웅장하고 화려한 기암괴석 절벽이 시원하게 보인다. 마침 지나가는 작은 보트와 배들로 인해 한 폭의 수채화를 볼 수 있음은 이 아름다운 자연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흑염소들은 곳곳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기도 하고 낮잠을 청하기도 한다. 어떤 녀석은 아찔한 절벽 끝에 매달려 있는데 심장이 벌렁거린다.
넓게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틈새로 동백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그러고보니 이 곳 동백나무의 잎들은 윤기나고 두툼하다. 좋은 공기와 깨끗한 자연의 덕임이 분명하다. 이름모를 새들의 청명한 울음소리도 빠지지 않고 들린다. 게다가 곳곳에 노란색이며 보라색·파란색으로 피어있는 꽃들도 아름답다. 꽃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무지에 스스로 자책만 할 뿐이다.

▶ 여행정보

소매물도까지 들어가는 배는 주중에는 오전 7시와 오후 2시, 두차례 있다. 요금은 소매물도행은 1만3200원, 소매물도에서 나오는 배는 1만2000원이다. 이는 터미널료가 붙기 때문에 매물도로 들어가는 배가 더 비싼 것이다. 터미널 주차료는 그냥 하루 5000원, 이틀이면 1만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주말과 휴일에는 오전 11시에 한차례 배가 더 뜬다. 또한 휴가철(매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에는 모두 7차례 배가 뜬다. 휴가철을 이용해 소매물도를 찾는 여행객을 배려하기 위함이다. 여객선 좌석은 120석이 조금 넘는다.
숙박은 주민들이 사는 민박을 이용해도 되고 하얀산장(642-8515)이나 다솔산장(641-6734)을 이용해도 된다. 폐교에 야영장을 마련한 힐 하우스도 있는데 예약을 하지 않으면 사용이 어렵다. 민박은 2인 1실 기준으로 비수기에는 2만원, 휴가철에는 3만원이며, 산장은 여기에 1만원 더 든다고 보면 된다. 사람 추가시에도 5000~1만의 추가비용이 든다.
지금은 공사를 하고 있어서 이용할 수는 없는데 등대섬에서 공짜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다만 이메일(atonms@netian.com)이나 팩스((055)249-0389)로 미리 신청을 해야 사용할 수 있다. 공사가 끝나면 내년쯤에는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마산지방해양수산청 항로표지과((055)249-0383~4)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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