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환(玉環·후에 楊貴妃)은 나른한 젊은 남편 수왕 이모(李瑁)의 품으로부터 불평스럽게 벗어나와 저택의 난간쪽으로 걸어나갔다.

정원 수풀로 인해 주위는 완전한 어둠에 묻혀 있었다.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하늘의 별들만 영롱하게 빛났다.

옥환은 난간에 걸터 앉았다. 정적으로 인해 슬픔은 어둠 속에서 더욱 부풀어오르는 듯했다.

남편은 특히 잠자리에서 도무지 힘을 쓰지 못했다. 스물 두 살의 젊은 여인의 뜨거운 몸을 아직 한 번도 만족시켜주지 못할 만큼 왕은 젊은 나이 값을 못했다.

황제의 아들이라 명색만 수왕으로 봉해져 있었지만, 그나마도 열 여덟 번째 황자이니 태자가 될 리도 만무했다.

‘나는 다른 여인과 다르다. 인생을 이런 식으로 끝낼 수야 없지!’

고아 출신이지만, 본래가 영리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천하가 알아주는 절색의 미모를 지녔다.

어려서 양씨 가문의 양녀로 들어갔다. 그래서 옥환은 양씨가 되었고, 열 여섯이 되었을 때 건달인 양오빠 양쇠(楊釗·후에 楊國忠)를 닦달해 궁녀로 입궐할 수 있었다.

옥환의 미모는 즉시 황자 이모의 눈에 띄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모의 부인이 되어, 나와서 독립해 살았다.

‘내 계획은 이게 아니었어! 측천무후(則天武后)도 처음엔 궁녀로 보잘것없이 출발해 나중에 절대권력을 손에 쥐는 황후가 되지 않았는가! 내가 그녀 보다 못할 게 무어람!’

벌써 새벽별이 커다랗게 다가오고 있었다. 옥환은 잠을 자지 않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던 것이다.

‘그렇다. 별볼일 없는 황자의 아내로 만족할 게 아니라, 일을 크게 꾸며보자. 일단 재상 이림보(李林甫)를 만나 협상을 하는 게 옳을 것 같다.’

그렇게 결정한 옥환은 이튿날 재상 관저로 가서 이림보와 비밀리에 만났다.

이림보. 과거로 등용된 진사과의 거두에 장구령이 있었다면, 이림보는 문벌파의 거두였다. 즉 증조부가 당나라 고조 이연의 사촌이었으니 황족의 일원인 셈이었다.

그는 파벌싸움에서 이겨 장구령을 내쫓고 마침내 재상에 오른 인물이다. 감언이설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천재였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상대를 모함해 수백 명의 충신들을 죽인 음흉한 인물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입 속에는 꿀을 담고, 뱃속에는 칼을 지닌(口蜜腹劍)’ 인간이라고들 쑤군댔다.

옥환과 비밀협상을 끝낸 이림보는 즉시 황궁으로 향했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기발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당시의 현종은 실의의 나날 속에 있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젊은 무혜비(武惠妃)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후궁에는 삼천 명의 미녀가 있었지만 현종은 그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이림보는 황제의 그런 요즘 심기를 정확하게 읽고 입궁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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