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첫눈도 눈곱만큼 왔는데 술 한잔 어때·” “좋죠. 첫눈 와봤자 전화할 사람도 없고, 전화도 한통 안오고. 기분도 그런데 오늘 코가 비틀어지게 취해보자구요.”

퇴근길 선후배간에 오고가는 대화는 술이라는 매개체가 없으면 왠지 무미건조하다. 회식이라도 있을라치면 술을 통한 유대는 물론 참석자 전원이 만취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정서요 술문화다.

서양의 절제된 음주문화와 달리 ‘필름이 끊어질 만큼’ 술을 마셔야 ‘한잔 했다’고 말하는 우리 주당들의 모습. IMF의 영향으로 술자리가 줄고 만취하는 이들이 적어질 것 같지만 웬걸, 경제가 어렵고 살기가 힘들수록 새벽공기를 마시며 몸을 허청대는 이들이 늘고 있고, ‘술 권하는 사회’의 분위기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 조사결과를 보면 20세 이상 성인의 한 해 음주량은 맥주 94.8병(500㎖), 위스키 반병(500㎖), 소주 74.4병(360㎖)이고 만 18세 이상 중 일주일에 3회 이상 술을 마시는 과음인구가 27.9%에 달한다. 49.5%는 일주일에 1~2회 마시며 나머지 22.6%는 한달에 2회 또는 그 이하로 나타났다. 또 일주일에 3회 이상 마시는 과음자 중 36.9%는 두주불사형, 14.3%는 폭음형, 46.3%는 반주로 먹는 와인형, 2.6%는 술을 안좋아해도 업무상 어쩔 수 없이 마시는 생계형으로 분류됐다.

마시는 방법도 80년대에 등장한 폭탄주를 비롯해 개인이 선호하는 ‘비정상적인’ 술들이 무작위로 창조돼 집단주의 술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창원지역에 ‘음주문화 바로세우기 시민모임’이 결성돼 술문화가 달라져야 한다는 의식이 조금씩 일면서 그에 수긍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창원지역 40여개 단체들이 만든 ‘음주문화 바로세우기 시민모임’(상임대표 박양동·소아과 전문의)에서 매월 첫째 금요일을 금주의 날로 정하고 술문화를 바로잡는 운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학 측면에서 볼 때 술은 음주운전·폭력·대학생 오리엔테이션 문화·청소년 음주 등 사회문제화되는 다양한 폐해를 촉발시킨다. 또 음주자 개인적으로 볼 때는 간암 등 건강을 해치는 1위 요소로 술이 꼽히기도 한다.

박양동 대표는 “음주문화를 바로 잡는다는 것은 성교육과 동일하다. 규제나 방법을 통해 문제를 풀려하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사회·문화·교육적으로 다방향에서 함께 연구해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술문화는 개인과 조직의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술문화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아우를 수 있는 대안을 개인과 조직이 스스로 터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박대표는 “사회적인 돌파구가 없으니까 불안해서 술을 마시는데 사회적 원인은 제거하지 않은 채 개인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체 사회가 큰 병을 앓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좋은 술 마시는 법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게 되고 사회지도층이나 직장의 경우 윗사람부터 술문화를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음주문화 바로세우기 시민모임은 인제대 보건대학원 음주연구소와 창원시보건소·창원YMCA가 주축이 되어 대학 오리엔테이션 술문화·원샷 문화·잔돌리기·폭탄주문화·음주운전 안하기 등에 대한 교육을 계속 해나갈 생각이다.

연말연시가 되면 ‘정말 나는 술을 먹고 싶지 않아’라고 부르짖어도 술 빼면 모임이 안되는 우리 술문화로 인해 ‘곤드레 만드레’ 상태로 새해를 맞기 쉽다. 창원의 한 30대 주부는 “술을 못하는 사람에겐 술을 권하지 않는 배려를 하고, 연말모임땐 가족동반 모임 쪽으로 유도해 술문화를 조금씩 바꿔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너무 많이 마시고, 마시는 방법도 무모한 우리의 음주행태도 ‘구조조정’을 해야 할 때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